데얀과 김은하수양. 사진=FC 서울 제공
[일요신문] 최근 국내 축구계는 국가대표팀 감독 이야기로 들썩였습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난 공석에 신태용 감독이 선임되면서 새 대표팀에 대한 여러 말들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K리그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FC 서울 소속 데얀을 좋아한다는 초등학생이 나타나 뜨거운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죠. 시작은 TV 예능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난 6월 26일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는 “초등학생 딸이 축구를 매우(!) 사랑해서 고민”이라는 한 어머니의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사연의 주인공 김은하수 양은 데얀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녹화장에 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팬심 때문에 FC 서울의 모든 경기를 ‘직관(직접 관람)’해야 하는 게 힘이 든다”고 토로했지만 은하수 양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빠가 좋아, 데얀이 좋아”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머뭇거려 아버지가 서운해 하기도 했습니다. 갖가지 응원도구를 이용해 응원가를 부르는 앙증맞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웃음 짓게 했습니다.
방송에서 응원가를 부르는 김은하수 양. 사진=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방송화면
방송이 나간 후 축구팬들 사이에선 은하수 양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입을 통해 꼬마 축구팬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방송을 본 FC 서울 구단이 은하수 양을 경기장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초대가 없었더라도 은하수 양은 경기장에 갔겠지만…) 은하수 양은 지난 2일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18라운드 경기에서 시축자로 나서게 됐습니다.
경기가 열리기 전에는 은하수 양이 가장 좋아하는 데얀을 만나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에 입장하는 ‘에스코트 키즈’ 역할도 했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서서는 데얀을 향해 힘차게 슈팅을 날리는 시축도 했습니다. 은하수 양에겐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은하수 양의 행복한 하루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은하수 양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응원석에서 직접 메가폰을 들고 서포터들과 응원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골대 뒤에 모인 서포터들은 은하수 양의 선창에 따라 힘찬 응원을 이어갔습니다. 이 모습은 경기장 전광판에도 비치며 많은 관중이 미소 짓게 만들었습니다.
관중석에서 서포터 응원을 주도하는 김은하수 양. 사진=인스타그램 영상 캡처
FC 서울 선수들이 은하수 양의 목소리를 들었을까요. 이날 선수들은 리그 1위 전북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후반 추가시간에 박주영 선수의 결승골이 터진 극적인 승부였기에 더욱 많은 축구팬들을 흥분시켰습니다. 은하수 양의 방문과 극적 승리가 이어지자 축구팬 사이에서 은하수 양은 ‘승리의 여신’으로 등극했습니다.
이에 <일요신문i>에서는 지난 2주간 K리그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은하수 양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학교 수업이 가장 빨리 끝나는 수요일인 지난 7월 5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인근에서 은하수양과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경기장에 다녀온 지 3일이 지났지만 은하수 양은 여전히 경기를 떠올리면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했습니다. “강팀 전북을 이겨서 더 짜릿했어요. 비가 많이 오는데도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경기를 마쳐서 다행이에요.”
FC 서울 ‘승리의 여신‘으로 등극한 김은하수 양. 임준선 기자
이날은 은하수 양 만큼 어머니에게도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은하수를 데리고 많은 경기에 다녔지만 이번이 가장 마음을 졸인 경기였어요. 정말 승리를 간절히 빌었어요. 괜히 우리 아이가 와서 이것저것 행사를 많이 해서 경기를 망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경기도 잘 끝났고 모든 분들이 은하수를 너무 예뻐해 주셔서 감사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이날 자리에는 은하수 양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FC 서울 관계자도 함께 했는데요. 이 관계자도 “인터넷 댓글에 공격적인 내용이 많은데 은하수 양 관련 콘텐츠에는 온통 ‘예쁘다’, ‘귀엽다’는 내용뿐이었어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클린 댓글’에 힘써주신 네티즌, 축구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은하수 양은 매주 축구경기를 빼놓지 않고 챙기는 학생이지만 사실 어머니는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으셨는데요. 어머니가 축구에 대해 잘 몰라 벌어진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경기 중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취소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경기가 중단되기 전에 FC 서울이 먼저 골을 넣어서 그대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은하수가 ‘엄마 축구는 비와도 취소 안 돼’라고 설명해줘 마음을 놨어요.”
은하수 양은 행복했던 하루 중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데얀과 함께한 시축을 꼽기도 했습니다. 은하수 양은 “응원석에 있을 땐 관중들 목소리가 그렇게 큰지 몰랐어요”라면서 “운동장 중앙에 서보니 응원소리가 대단하다는 걸 알았어요.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습니다. 멋진 궤적으로 시축에 성공했지만 은하수 양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동네 오빠와 연습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잘 못 찼어요. 사실 많이 긴장했거든요.”
김은하수 양의 시축 장면. 사진=FC 서울 제공
은하수 양은 이 날이 “생에 가장 긴장했던 날”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대기실에서 데얀 선수와 대화를 나누면서는 극도의 긴장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원래 잘 긴장하지 않는 아이인데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시축 계획은 원래 골대에다 차고 싶어 했어요. 자기가 시축으로 골을 넣으면 ‘그럼 1-0으로 시작하는 거 아니야’라면서…”라며 웃으셨습니다.
은하수 양은 2학년이던 2013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처음 방문했는데요,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축구장 특유의 응원문화에 반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자는 생각에 경기장에 데려갔어요. 처음엔 야구장도 가고 농구장도 갈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축구장만 다닐 줄은 몰랐죠”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처음엔 저도 일이 바빠서 자주는 못 갔어요. 2년 전 쯤부터 시간이 생겨서 그동안 못 가줬으니 좀 더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올해는 FC 서울 모든 경기에 ‘개근’했어요”라고 설명하셨어요.
기다리던 데얀과의 만남. 사진=FC 서울 제공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부분은 다른 것보다도 은하수의 건강이었습니다. 은하수는 방송으로 보기보다 실제 만나니 체구가 작았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약한 은하수가 경기에 다녀오면 유난히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워 하셨습니다. 또한 “경기 중에는 자기가 선수가 된 것처럼 간식도 안 먹고 응원만해요. 물만 조금 먹는 정도죠. 그리고 90분 내내 서서 소리 지르고 노래를 하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방송에서 조금은 자제할 것을 약속한 은하수 양은 실제로도 약속을 지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이제는 주중에 열리는 경기는 참기로 했어요. 경기 중에 엄마가 주시는 간식도 먹고요. 지난번 경기에선 정말 간식도 먹었어요.” 어머니는 “방송 이후에도 그랬지만 경기장에 갔다 오고 분위기가 더 좋아져서 주변에선 ‘걱정도 아니다’라는 말씀을 많이들 하세요. 그 얘기를 은하수가 듣고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약해지려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은하수 양의 공부나 학교생활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공부는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초등학생이라 즐겁게 놀면서 생활하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도 중학교에 가면 좀 해야죠”라며 웃었습니다. 실제 은하수 양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따로 학원에 다니는 등 과외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인터뷰도 학교 수업이 끝나고 곧장 이뤄졌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주변에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없다보니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안녕하세요’를 촬영하면서 방송 작가님과 은하수 대화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학교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았어요. 방송 덕분에 은하수를 더 많이 알게 돼서 관계자분들께도 감사해요”라고 했습니다. 방송 출연과 경기장 초대 등 이번 일들은 은하수 양 가족에게 좋은 추억이 됐습니다.
은하수 양은 마지막으로 방송에서 하지 못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왜 K리그나 FC 서울을 좋아하냐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제 기사에도 그런 댓글이 있어서 좀 기분이 나빴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저는 그냥 경기장에서 사람들이랑 같이 응원하면서 보는 축구가 좋았어요. 그리고 경기장에 못가는 날은 인터넷을 찾아봐야 되는데 텔레비전으로도 가끔 경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텔레비전에는 축구경기가 너무 안나오거든요.”
김은하수 양. 임준선 기자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인저리 타임> 황선홍 감독 “데얀 결장, 미안하다” 사과에 김은하수 반응은? 은하수 양이 가장 좋아하는 데얀 선수는 이날 전북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격수 자리에는 박주영 선수가 선발로 나왔고 교체 명단에 있던 데얀 선수는 끝내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황선홍 FC서울 감독은 경기 시작 전 특별히 은하수 양에게 “꼬마 팬이 좋아하는 데얀을 선발로 쓰지 않아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은하수 양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어머니가 뒷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감독님이 미안하다고 하신 인터뷰도 아이와 같이 봤어요. 그렇게 이야기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사실 은하수는 처음엔 좀 아쉬워했지만 나중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차라리 데얀이 안 나오는 게 낫다. 괜히 뛰다가 다친다’고하더라고요. 데얀 선수는 은하수에게 그런 존재에요(웃음).”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