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균의 어머니는 아들의 미국 진출을 강하게 반대했다. 왼쪽부터 황재균의 여동생, 어머니, 아버지.
# 아들의 도전에 걱정이 많았던 부모님
황재균의 부모(아버지 황정곤, 어머니 설민경 씨)는 모두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이다. 어머니 설민경 씨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였다. 황재균이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처음 황재균이 미국행을 발표했을 때 어머니 설 씨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었다고 한다. 황재균의 설명이다.
“어머니 입장에선 아들이 한국에 남으면 돈도 벌고 편하게 야구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사서 고생하러 가는 날 이해하시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스플릿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간다는 얘기에 굉장히 속상해 하셨다. 아버지는 내 결정을 지켜보시겠다는 입장이었고 어머니는 속상함이 큰 나머지 말씀도 안하셨다. 그때 내가 어머니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다. 모두가 미국 가서 실패할 거라고 얘기하는데 자존심 때문에라도 가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그 얘기에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황재균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집과 승용차를 처분해서 마련한 돈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떠나는 자신의 모습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스플릿 계약이라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그는 연봉 1억 원도 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도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남은 야구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애리조나 캠프를 방문했던 황재균의 어머니는 기자에게 “아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야구를 하는 게 대견스럽다”는 소감을 전한 바 있었다.
황재균은 시범경기 동안 타율 0.333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지만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마이너리그 초반 심적 갈등이 심했다.
# 수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황재균은 시범 경기 초반부터 수비 실책을 범했다. 선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언론에서 계속 수비 실책을 지적했고, 덕분에 그도 살짝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황재균은 현실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도 그렇겠지만 경기에 나가면 가급적 타석에 많이 서고 싶고, 나 있는 쪽으로 공이 자주 와서 수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난 지금 인정받은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걸 어필해야만 한다. 그래서 경기에 나갈 때마다 속으로 이런 주문을 한다. 상태 타자가 친 공이 제발 나한테 오게끔 해달라고. 뭐라도 하나 보여주려면 그 공이 나 있는 쪽으로 와야 한다고 말이다. 다이빙 캐치나 펜스에 부딪히면서 공을 잡는 건 전혀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건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벤치에만 머물게 되는 상황이다.” 황재균은 매일 테스트 받는 기분이 새롭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스트레스를 안겨줬다고 털어 놓았다. 자신도 누구처럼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내가 처한 현실을 즐기고 싶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엔 이 시간조차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자리가 고정돼 있었던 KBO리그에선 시범경기는 다양한 부분을 시도해 보고 수정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선 시범경기에 목숨을 걸 듯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그를 부대끼게 만들었다.
“한 번은 타석에 들어섰는데 변화구가 보이지 않더라. 속으로 ‘큰일났다’ 싶었다. 그 경기에서 삼진 2개를 먹었다. 그날 밤 복잡한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너무 메이저리그를 만만히 본 건가?’ 싶더라. 그 다음날인가? 보치 감독님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셨는데 우연히 그 내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황재균한테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란 감독님 말씀이 위로와 용기를 갖게 해주셨다. 내가 이 팀에서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감독님이 나란 선수를 인식하고 기대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얻기도 했었다.”
# 배움과 성장의 시간, 마이너리그
황재균은 시범경기 동안 타율 0.333 5홈런 15타점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지만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는 트리플 A팀으로 내려가 리버 캣츠 소속 선수로 활약했는데 마이너리그 시즌 초반에는 심적 갈등이 심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시범경기 마지막 3연전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인 AT&T파크에서 치렀다. AT&T파크는 한 마디로 천국이었다. 아름다운 야구장을 보며 그곳에서 야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그 천국은 3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환경이 예상보다 그리 좋지 않았다. AT&T파크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에 적응할 리 만무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갈 생각보다는 빅리그에서 날 안 불러주는 게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내 야구도 안 되고. 정말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황재균의 정신적인 갈등은 성적 하락으로 나타났다.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과정도 체력적인 부담을 안겼다. 대여섯 시간의 버스 이동은 물론 새벽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4시 공항으로 나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빅리그에 대한 마음의 끈을 조금씩 놓으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었던 거다. 그 후론 동료들과 잘 어울렸고 어느 때보다 열심히 야구를 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이 자리를 잡게 되니까 이번엔 타격폼이 흔들렸다. 내가 해왔던 타격폼에 수정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때마침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의 개인코치인 덕 래타 코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 즉시 에이전트에게 전화해서 래타 코치와 연결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황재균은 옵트아웃 행사 직전 극적으로 빅리그에 콜업돼 깜짝 놀랄 활약을 펼쳤다. 옵트아웃을 행사했더라면 한국 유턴 가능성도 있었다고.
# 황재균과 덕 래타 코치의 만남
황재균은 한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덕 래타 코치의 인터뷰를 보고 에이전트에게 연락해선 덕 래타의 코칭을 받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에이전트 이한길 대표는 즉시 래타 코치의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어렵게 연락이 닿은 후 황재균의 최근 상황과 경기 영상을 첨부해선 선수의 타격폼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묻게 된다. 이후 래타 코치는 황재균과 화상 전화로 코칭을 하다가 직접 새크라멘토를 방문하는데 LA에서 새크라멘토까진 차로 5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덕 래타 코치는 지난해 강정호를 직접 만나 타격폼 수정을 도운 적이 있었다. 이후 KBO리그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황재균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래타 코치는 황재균의 경기 영상을 유심히 살폈고, 수차례 반복해서 비디오를 보며 황재균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황재균은 래타 코치의 조언대로 연습 때는 물론 실전 경기에서도 중심 이동과 손의 위치, 레그킥 동작 등에 미세한 변화를 주며 수정 보완해 나갔다. 5월까지만 해도 황재균은 볼넷 5개, 삼진 38개였는데 6월 들어선 완전히 다른 면모를 나타냈다. 6월 동안에만 14개의 볼넷을 얻었고, 18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볼넷이 늘어나면서 출루율도 상승세를 탔다. 빅리그 콜업 전까지 황재균은 트리플A팀에서 타율 0.287 7홈런 44타점을 기록했다.
# 빅리그로 향하는 비행기
지난 6월 28일 황재균은 리버 캣츠 원정 경기를 위해 미국 텍사스주 엘 파소에 머물렀다. 경기장으로 출근하기 전 인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다 구단 관계자로부터 빅리그 콜업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틀이 지나면 옵트아웃을 행사하는 시점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극적으로 황재균을 불러들인 것이다.
당시 기자와 연락이 닿은 황재균은 “아직도 얼떨떨하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소식을 들으니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소감을 전한 바 있다. 황재균은 하루 뒤인 29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 5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해선 빅리그 데뷔 첫 날 첫 타석서 타점을 기록했고 이어 결승 홈런포까지 터뜨리며 깜짝 놀랄 만한 데뷔전을 치렀다.
만약 황재균이 빅리그 콜업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황재균 에이전트 이한길 대표는 “옵트아웃을 행사하고 미국 다른 팀이나 한국으로의 복귀를 알아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KBO리그 몇몇 팀에선 황재균에게 관심을 나타냈고, 실제 황재균 측과 접촉하려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KBO리그 복귀를 50 대 50으로 봤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황재균의 메이저리그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부상 선수들이 복귀할 경우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황재균은 현실을 인정하고 그 다음 단계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갈 것이다. 그에게 목표를 물었더니 “빅리그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이란 즉답이 돌아온다. 이쯤 되면 황재균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한국 유명 선수 몇 명도 덕 래타 코치 조언 받았다 황재균이 인터뷰를 통해 거론한 덕 래타 코치는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고등학교 코치로 활약했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의 외곽에 허름한 야구 연습장을 운영 중인 그가 유명해진 건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 때문이다. 저스틴 터너는 2013년까지 한 시즌 홈런 4개가 최고 기록이었던 땅볼 타자였다. 그러나 2013년 당시 뉴욕 메츠의 동료 말론 버드의 소개로 덕 래타의 지도를 받은 후 2014년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는 그 해 다저스의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3년 동안 홈런 50개를 생산해냈다. 저스틴 터너는 2016년 12월 LA 다저스와 4년 6400만 달러에 FA 계약을 맺은 후 인터뷰를 통해 덕 래타 코치에 대한 고마움을 털어놨었다. 소속팀 타격 코치가 있는 상황에서 재야의 개인코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덕 래타 코치는 다저스의 중심타자 저스틴 터너를 지도해 유명해졌다. 기자는 지난 5월, LA에 있는 덕 래타 코치의 허름한 야구 연습장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전에 인터뷰 약속을 잡고 그곳을 찾았다가 그 연습장 한편에 걸려 있는 선수들 방망이 중 강정호 사인이 들어 있는 야구 방망이가 눈에 띄었다. 래타 코치는 당시 기자에게 강정호가 자신의 연습장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2016 시즌 피츠버그가 LA로 원정 경기 차 방문했을 때 강정호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내용이었다. 래타 코치는 강정호의 스윙 동작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곤 조언을 해줬는데 이후 강정호의 성적이 상승세를 나타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당시 래타 코치와의 인터뷰는 황재균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선수들한테도 영향을 미쳤다. 그 인터뷰를 보고 여러 선수들이 래타 코치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유명 선수 A와 B도 래타 코치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 조언을 받았다. 한 선수는 화상 전화를 통해, 또 다른 선수는 자신의 경기 영상을 보내주고 메일로 조언을 받는 형식이었다. A와 B 선수 모두 이후 성적이 상승 곡선을 내달렸다. 래타 코치는 황재균에 대해 “내가 만나 본 선수들 중 야구에 대한 열정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이너리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것과 관련해선 “타석에서 생각이 많았고 너무 잘하려고 했던 게 오히려 단점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황재균은 빅리그 콜업 소식을 받고 가장 먼저 래타 코치에게 연락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