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9일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6월 13일 박 전 대통령이 참석한 재판은 정치권에서 숱한 화제를 뿌렸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대리인 유영하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선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과 설전을 벌이자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고, 이를 참지 못하겠는지 곧 고개를 숙였다. 전혀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도 했지만 평소 박 전 대통령이 남다른 표정 관리로 익히 알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흘려보내기 힘든 장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가깝게 보좌했던 한 친박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재판과 같은 공식적 자리에서 웃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웃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표정 관리를 상황에 맞게 철저하게 하는 분이다. 어릴 때부터 청와대 영부인 역할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게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법정에서 공방이 오가고 있는데 웃었다는 것은 박 전 대통령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고밖엔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3월 31일 구속 수감된 이후 재판이 거듭될수록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행동들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도중 빈 종이에 연필로 정체불명의 그림을 그렸다 지우는 일을 20분간 반복했다. 지우개 가루를 손으로 모은 뒤, 물수건으로 손을 닦아내는 장면도 포착됐다. 법정에서 하품을 하거나 조는 모습도 목격됐다. 예전의 박 전 대통령이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법정뿐 아니라 구치소 내에서도 기이한 행동들로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측 및 교도당국 관계자들과 접촉해본 결과 실제 사례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친박 전직 의원도 “박 전 대통령의 재판 모습들을 보고 나름대로 수소문을 해봤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면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본다”고 귀띔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얼마 전 교도관에게 “왜 밥을 주지 않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식사 시간이 끝난 지 불과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 음식을 적게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하루 세 끼 제공되는 식사만을 먹었고, 그마저도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랬던 박 전 대통령이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식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들은 정신과 의사들은 “단순한 건망증이라고 보긴 어렵다”라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일화도 들린다. 박 전 대통령이 취침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벽을 향해 앉은 채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교도당국의 한 관계자는 “처음엔 기도 같은 것을 하는 줄 알았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한국말이나 영어도 아닌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독방 안에서 어느 정도 편의는 인정해주는 편이라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봤던 직원들이 조금 꺼림칙하다고 전했다”라고 귀띔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과의 대화에서 몇몇 참모들 이름이 거론되자 “XXX 비서관이 누구죠”라며 되물었다고도 한다.
한 정신과 의사는 “박 전 대통령과 직접 상담한 게 아니라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일련의 징후들을 살펴봤을 때 (정신적으로) 이상신호가 온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권력의 정점 자리에 있다가 순식간에 수감자로 전락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면서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과 치료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변호인들도 박 전 대통령 정신상태에 대해 면밀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서울구치소 측은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규칙적인 식사와 취침으로 입소 시와 비교해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상태”라면서 “향후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용 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종종 들리곤 했다. 박 전 대통령은 6월 30일 재판에선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피고인석에 엎드리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건강상의 문제로 재판 일정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7월 7일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 이상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기 전에 고령의 연약한 여자다. 매주 4차례 출석해 재판을 받는 자체를 체력 면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죽거나 쓰리지면 책임질 것이냐”라고 항의하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탄핵 정국 때도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확산되기도 했지만 이는 선거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특정 진영이 퍼트렸던 ‘가짜 뉴스’임이 밝혀졌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유세에서 “박 전 대통령 건강이 극도로 나쁘다고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집행정지 해 병원으로 이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은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식사와 취침을 규칙적으로 잘하고 있다. 체중에도 큰 변화가 없고 건강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 측이 건강문제를 계속 들고 나오는 것은 여러 노림수가 담겨져 있다. 우선 보수 진영으로선 박 전 대통령 건강 악화는 호재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와해된 보수층이 결집할 가능성 때문이다. 대선 때 홍 후보와 친박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건강을 언급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 전 대통령 개인 입장에선 재판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10월 중순경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 일단 석방을 노리거나 보석을 신청,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임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형의 선고 및 사면·복권 등에 있어서도 건강 상태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 정신 이상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의도적으로 ‘쇼’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 친문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 아니냐. 건강이 나빠졌다는 것을 핑계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지지층의 동정 여론을 자극하려는 꼼수일 수 있다. 친박계가 포진한 자유한국당이 이를 악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면서 “재판부가 일정을 서둘러서 빨리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권 핵심부 주변에선 경계심도 묻어나온다. 향후 정치 일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박 전 대통령 건강 악화가 보수층 여론을 자극, 보·혁 대결 전선으로 확장되면 문재인 정부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정치권 주변에선 “박 전 대통령 건강이 최악의 상태다. 7월 중 보석을 신청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박 전 대통령 건강 문제는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 순항 중인 문재인 정부의 유일한 골칫거리라는 말도 있다. 청와대에서도 잘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전문가들이 바라본 심리 상태…분노·부인 단계 지나 체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에서 한순간에 재판을 받는 수감자 신세로 전락했다. 첫 재판 때 의연한 모습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갈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박 전 대통령 심리 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일반적으로 어느 누구나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다양한 방어기제가 발동한다”고 말했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말한다. 주로 부정, 억압, 합리화, 투사, 승화 등으로 나타난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 본인의 의지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분노하고 부인하는 단계를 지나 체념하는 단계로 들어선 게 아닌가 싶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의 경우 장시간 긴장 속에 진행된다. 일반인들 입장에선 재판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증인의 증언이 이 상황에서 왜 문제가 되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처음엔 관심 있게 들었겠지만 한 번 놓치면 점점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누군가 떠받들어줬던 사람이기 때문에 ‘변호인이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본인이 힘든 걸 투쟁해가면서 얻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기변호를 하는 최순실 씨하고는 반대되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면서 “특히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여기서 유죄를 받든 무죄를 받든 특별히 상관이 없다. 가족도 없고 지켜야 할 게 없다. 유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사면을 기대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전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따라 일어나는 꼭두각시놀음이고 본인은 거기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정확하게 지금 어떤 이유로 이러는지 본인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 전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성인기 자폐증 성향을 가졌다. 본인이 믿고 싶거나 이해하고 싶은 것 이외엔 일종의 조작된 가상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다”고도 주장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