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유럽풍 그릇들과 찻잔들. 주인의 사랑을 받은 듯 정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 짐이 많은 친구입니다. 긴 여행이라고 무려 세 개의 가방이 있다면, 곁에 있는 사람이 들어주어야 합니다.
2. 자기 취향으로만 찾아가는 친구입니다. 미술관을 보고 싶지만 명품관만 찾아다니는 꼴입니다.
3. 모험심이 없는 친구입니다. 아무데도 가지 못합니다.
4. 먹던 음식만 고집하는 친구입니다. 싸가지고 온 고추장과 김치가 떨어지면 그의 입맛을 위해 매끼마다 먹는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5. 상대가 아플 때, 느린 여행을 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다음 코스를 위해 아파도 강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5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낯선 여행지에선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나라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친화력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서 여행은 자신을 성숙케 합니다. 직관력과 친화력으로 무장한.
얼마 전 미얀마에 살다 떠나는 교민이 한 분 있었습니다. 생활용품을 일부 팔고 간다기에 쓰던 냉장고를 보러 갔습니다. 거기서 참 기가 막힌 것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나라에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럽의 은그릇들과 찻잔들이 장식장에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 가까운 사람들 중엔 은제품과 예쁜 찻잔 세트, 오랜 전통의 시계를 모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제겐 낯선 취향들이었습니다. 이 집에는 수많은 찻잔, 와인잔, 은식기들과 도자기들이 주인의 사랑을 받은 듯 정결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요. 영국의 은제품 셰필드(Sheffield), 미국의 티파니(Tiffany), 프랑스 크리스토플(Christofle)과 이탈리아 은식기들입니다. 피렌체에 살던 한 작가가 쓴 ‘은그릇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찻잔들.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예쁜 그릇과 잔들에 담아내 먹는 즐거움. 그간 몰랐지만 고풍스런 그릇과 잔들을 보니 그것을 잊고 산 지가 오래 되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진열장에는 프랑스의 리모쥬(Limoges), 세브르(Sevres) 도자기, 덴마크의 로얄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의 세트들이 식탁을 기다리는 듯 느껴집니다. 말레이시아의 로얄 셀랭거(Royal Cell Lange)도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이 집의 그릇과 잔의 주인은 분명 프랑스 제품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프랑스 것이 많습니다.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도 한 번의 식사에 갖가지 잔들이 등장합니다. 요리사 바베트도 프랑스에서 일했었지요. 하지만 이 그릇과 잔의 소위 명품들을 이곳 미얀마까지 가져온 게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끔 파티를 여는 외교관의 집도 아니고.
소박한 그릇에 담아서 먹는 미얀마에서 이 낯선 그릇들과 잔들을 휴대폰에 담아봅니다. 이 많은 그릇과 잔들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갈까요.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마침 중고 냉장고를 사며 주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인은 몇 나라를 거쳐서 모았고 여기까지 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예쁜 그릇과 잔을 통해 즐겁게 먹는 것이 기뻤다고 합니다. 돌아오며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여행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취향이 극히 다른 사람과의 여행입니다. 가야 할 장소가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각자 다른 취향은 이해와 배려를 통해 통합되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