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씨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유족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5.23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는 머리를 삭발한 채로 등장했습니다. 노 씨는 “최근 좀 심하게 탈모 현상이 일어났는데 탈모반이 여러 군데여서 방법이 없었다“라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전국의 탈모인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와 동병상련의 정을 전한다. 저는 이미 다시 나고 있다.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누리꾼들은 그야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탈모갤러리에는 “노건호 머리 다시 난다는데…탈모인의 희망 아니냐” , “탈모갤 대표가 등장했다”라는 반응부터 “노건호를 탈갤 고문으로 모시자”, “대통령의 피도 탈모는 못 피하나”라는 내용이 담긴 게시물도 엿보였습니다.
여러분은 ‘대머리’ 공포에 시달려 보셨습니까. 대한민국은 ‘탈모’ 전성시대입니다. 대한민국 5000만 인구 중 탈모인들의 숫자는 무려 약 1000만입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과 청소년까지 범위가 광범위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탈모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엔 하루에도 20건의 넘는 탈모 인증글이 올라옵니다.
DC 탈모 갤러리에 올라온 탈모 문의글. 탈모 갤러리 캡처.
기자가 만난 탈모인들은 탈모로 인한 아픔을 토로했습니다. A 씨(29)는 담담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2년 전에 정수리 쪽이 좀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탈모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상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머리털이 날아가면 아무것도 못한다. 정수리가 가벼워 머리카락이 세워지지 않았고 이마에 있는 흉터와 이마라인이 점점 멀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머리털을 지켜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탈모인들의 유일한 구세주는 탈모약입니다.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탈모약은 미국 MSD사가 개발한 ‘프로페시아’입니다. 1997년 미국 FDA 승인을 얻은 프로페시아는 원래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입니다. 하지만 모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대표적인 탈모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프로페시아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탈모약으로 불립니다.
탈모약 프로페시아. 약학정보원 홈페이지 캡처.
프로페시아는 ‘피나스테리드’라는 성분으로 구성된 약입니다. 이윤수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원장은 “피나스테리드는 탈모약의 성분명이다. 원래 전립성 비대증 약이지만 탈모약으로 처방받는 환자들이 많다. 전립선 비대증 환자에겐 피나스테리드를 5mg를 쓴다. 피나스테리드 1mg은 모발약으로 쓴다. 피나스테리드 5mg으로 구성된 프로스카를 5분의 1로 쪼개 탈모 치료에 쓰는 방식이다”라고 밝혔습니다.
7월 4일 ‘프로페시아’가 대형 포털사이트 실검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탈모인들은 이날 하루종일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식품의약안전처가 우울증과 자살 생각 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피나스테리드가 성분인 약들에 삽입한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탈모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너도나도 포털사이트에서 ‘프로페시아’를 검색한 것입니다.
피나스테리드 성분 관련 식품의약안전처 발표
경고문구가 삽입되는 의약품은 프로페시아 등 142개 제품입니다. 식약처 의약품안전평가과에서는 6월 29일 “한국MSD의 피나스테리드 성분제제에 대하여 안전성 정보 보고에 대한 검토결과에 따라 허가사항 변경안을 마련했다”며 제약업계와 관련 협회에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외국과 우리나라에서도 피나스테리드에 관한 부작용 사례가 있었다. 우리도 국민들한테 알려야겠다고 해서 주의사항 안에 집어넣는 것“이라며 ”다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의견에 따라서 내용이 바뀔 수도 있고 공지한대로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식약처는 피나스테리드 성분의 탈모약을 복용한 환자의 우울증 사례가 해외에서는 508건, 국내에서는 5건 보고됐다고 덧붙였습니다.
DC 인사이드 탈모갤러리 ‘부작용’ 관련 글.
이번 식약처 발표는 탈모인들의 뇌관을 건드렸습니다. 탈모인들이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키워드는 ‘부작용’입니다. 실제로 DC인사이드 탈모갤러리 게시판에 ‘부작용’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탈모약을 복용하면 발기부전, 여유증, 브레인 포그(brain fog) 등이 찾아올 수 있다”는 소문이 팽배합니다.
게시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탈모약 부작용 따윈 없다” VS “탈모약 부작용 때문에 끊었다”로 의견이 갈립니다. 실제로 프로페시아의 사용자 주의사항에는 성욕감퇴, 발기부전, 사정장애 등 피나스테리드 성분에 대한 부작용이 명시돼있습니다. 안 그래도, 부작용 때문에 괴로움을 토로했던 탈모인들이 식약처의 발표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7월 5일 탈모갤러리의 한 회원은 “탈모 커뮤니티에 가끔 피나스테라이드 증후군이라면서 약 조심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들 XX놈 취급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니…”라는 반응을 드러냈습니다. 다른 회원 역시 “부작용이 드물긴 한데 걱정이 된다. 당뇨병도 치킨 먹고 흰밥 많이 먹으면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우울증은 이미 탈모 시작부터 왔지만 자살충동․발기부전 같은 부작용이 무섭다”고 전했습니다.
탈모 이미지. 일요신문 DB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요. 이윤수&조성완 비뇨기과 이윤수 원장은 “피나스테리드는 체내에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남성 호르몬이 떨어지면 우울 감정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전립선비대증에 쓰이는 피나스테리드 5mg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1mg은 극미량이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식약처 발표에 대한 탈모인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탈모로 더욱 우울해지느니 우울하더라도 탈모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반응과 “약을 먹야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딜레마에 빠졌다”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탈모인 B 씨는 “탈모약 부작용이 아니라 ‘탈모’ 그 자체로 우울증이 시작된다. 설사 부작용이 있더라도 계속 약을 먹겠다”고 전해왔습니다. 기자가 만난 탈모인들의 우울감들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취재 중에 기자 역시 수차례 머리를 만지고 정수리를 거울에 비춰볼 정도였습니다.
탈모인들의 ‘설움’을 완전히 날려버릴 ‘역대급’ 탈모약 개발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요?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