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전각들이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돼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양의 다섯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역병, 화재, 재해 등 특별한 경우에 임금이 머무는 궁)으로 북악산 응봉 자락에 세워진 궁궐이다. 이웃한 창경궁과 함께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동궐’로도 불렸다. 종로구 율곡로에 우뚝 선 돈화문이 바로 창덕궁의 정문이다.
태종은 조선시대의 법궁(임금이 머물며 정사를 돌보던 공식 궁궐)인 경복궁이 세워진 지 불과 10년 만에 창덕궁을 짓기 시작했다. 그에게 또 하나의 궁궐이 필요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경복궁이 자리한 형세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아버지에 맞서고 골육이 상잔한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태종 11년(1411년) 10월 4일의 기록을 보자.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어찌 경복궁(景福宮)을 허기(虛器)로 만들어서 쓰지 않는 것이냐? (중략) 술자(術者)가 말하기를, ‘경복궁은 음양(陰陽)의 형세에 합하지 않는다’하니, 내가 듣고 의심이 없을 수 없으며, 또 무인년 규문(閨門)의 일은 내가 경들과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 차마 이곳에 거처할 수 있겠는가? (후략)’”
창덕궁 ‘후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무인년 규문의 일’이란 바로 태조 7년(1398년)에 벌어진 제1차 왕자의 난을 의미한다. 실제로 태종은 개경에서 한양으로 환도한 뒤에도 오랫동안 경복궁에서 지내지 않았다. 그 대신, 한성부 연화방(당시 지명으로 현재의 종로구 원남동 등 9개 동의 일부에 해당됨)에 있는 영의정 조준의 집에 머물렀다. ‘태종실록’ 태종 5년 10월 11일 기록에 따르면 심지어 조준이 사망한 뒤에도 “이궁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종의 ‘연화방 체류’는 이어졌다.
이궁으로 출발해 태종 시절 사실상의 법궁으로 쓰였던 창덕궁과 ‘원조 법궁’ 경복궁의 운명은 임진왜란(1592년) 이후 극단적으로 엇갈리게 된다. 당시 한양의 궁궐들이 소실되었는데, 그후 선조와 광해군 시절을 거치며 복구된 궁궐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왜란 후 규모가 큰 경복궁을 중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데다 경복궁 터가 길(吉)하지 못하다는 견해도 이런 선택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광해군 때 중건된 창덕궁은 인조반정(1623년) 때 다시 한 번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1868년 고종 시절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258년 동안 조선의 ‘법궁’으로 자리매김한다.
창덕궁은 여러모로 경복궁과 대비되는 궁궐이다. 경복궁이 정문으로부터 정전(왕이 조회를 하고 국가 의식을 치르는 전각), 편전(왕이 평상시 거처하는 전각), 침전(왕의 침방이 있는 전각) 등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해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강조했던 데 반해, 창덕궁은 전각들을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해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두 궁궐의 정전만 비교해봐도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창덕궁의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돌난간과 동물상 등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해 차분하고 소박한 느낌을 전해준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특히 창덕궁 면적의 60%를 차지하는 후원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깎거나 다듬기보다는 마치 건축물과 자연이 서로를 품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공존의 미를 선사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로 ‘비원’이라 불렸던 이 아름다운 후원에는 울창한 수림 속에 지형에 따라 연못, 정자, 전각 등이 자리 잡아, 힐링과 학문을 병행하는 쉼터로서 역대 왕과 왕비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았다.
창덕궁은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로서,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꼽힌다. 주변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창의적인 건물 배치, 궁 안에 깃들어 있는 조선의 유교적 세계관은 이 궁궐의 품격과 독창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창덕궁이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한양의 5대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참고=한국고전번역원 <조선왕조실록> 국문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