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개 금융협회(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중 올해 안에 임기가 끝나는 곳은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회장이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 회장이 오는 8월 가장 먼저 임기를 마치고,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도 각각 11월과 12월에 임기가 끝난다.
2015년 10월 2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험규제 개선 관련 보험사 CEO 간담회에 참석한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맨왼쪽),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보험업계 대표들. 연합뉴스
그간 금융협회장 자리는 경제·금융부처 고위 관료 출신이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자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척결’이 화두가 된 이후에는 민간 출신이 협회장을 맡는 경우가 늘었다. 실제로 장남식 손보협회장은 LIG손해보험 사장 출신이며, 하영구 회장은 씨티은행장, 이수창 회장은 삼성생명 사장 출신이다.
금융권은 문재인 정부가 관피아 중에서도 특히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관료)’ 출신의 기용을 꺼리고 있는 분위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민간 출신 인사가 협회장을 맡는 흐름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민간 출신인 기존 협회장들 중 일부가 정부를 상대로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데 한계를 노출했다는 불만도 상당한 만큼 관료 출신이 재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협회장들 중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회원사인 보험사 대표와 학계 전문가 등이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해 후보군을 추린 뒤 투표를 통해 과반 득표를 한 후보를 회장으로 선출한다. 은행연합회는 금융협회 중 유일하게 회추위가 없는데, 현재 정관 변경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올해는 회추위를 통한 투표방식 선택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추위는 통상 협회장 임기 만료 한두 달 전 구성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손보협회의 경우 이미 회추위가 가동돼야 하는 시점이지만, 올해는 새 정부 출범과 금융위원장 인선이 맞물리면서 늦어지고 있다. 하지만 차기 금융위원장 인사 청문회가 곧 실시되고 금융감독원장 후보군이 압축되는 등 금융당국의 인선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손보협회도 차기 협회장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차기 회장에 관한 하마평이 나오는 등 수장 선출 작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강영구 메리츠화재 사장(전 보험개발원장), 유관우 전 금감원 부원장보, 나명현 전 현대해상 상근감사(전 금감원 공보실 국장) 등이 장남식 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강영구 사장, 유관우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3년 전에도 손보협회장 후보로 꼽혔던 인물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이력에서 알 수 있듯 모두 금융당국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손보협회가 3년 만에 다시 관료 출신 회장 시대로 복귀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민간 출신이 손보협회장직을 맡은 것은 이석용 전 회장(1993년, 전 태평양생명 사장)과 박종익 전 회장(1999년, 전 메리츠화재 사장), 장남식 현 회장(2014년, 전 LIG손해보험 사장) 3명에 불과하다. 특히 장남식 회장을 선출할 당시에는 금융위원회에서 민간 출신을 선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던 만큼 사실상 순수 민간 출신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회추위에서는 특별한 지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민간 출신이 다시 선임될지 미지수다. 손보협회 측은 “현재는 백지 상태”라면서 “회추위에서 자격 요건을 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손보협회 회추위는 6개 손보사가 참여한 이사회와 외부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8월 초 꾸려질 전망이다. 이사회는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동부화재 등 대형사 위주로 구성돼 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금융권 일부에서는 하 회장이 연임을 위한 포석을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손보협회는 8월 구성될 새 이사회가 회추위에 참여한다. 여기에 금융위원장 교체와 후속 인사 등을 고려하면 차기 손보협회장 선출은 9월께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손보협회장 선출은 이어지는 생보협회장 선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새로 선임된 손보협회장이 관료 출신이냐 민간 출신이냐가 생보협회장 선출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험권에서는 민간 출신이 기용되기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굵직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보험사를 경영해 본 인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대형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발탁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대형 보험사 한 관계자는 “올해 보험업계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 도입이나 보험료 인하 논란 등 당면과제가 많다”면서 “보험사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의 경우 사정이 다소 복잡하다. 하영구 회장이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회추위 설치 카드를 꺼낸 점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는 회추위 설치를 검토하면서 이사회는 물론 회원사인 은행장들과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회 측은 회장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실무부서에서 검토하는 차원이었다고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하 회장이 연임 포석을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은행연합회장은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는데, 사실상 정부가 낙점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박근혜 인맥’으로 꼽히는 하 회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회추위를 설치해 투표로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낙하산을 차단할 수 있고, 은행권을 설득한다면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하영구 회장은 금융권의 최고 마당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라면서 “낙하산 차단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정치권과 협상력을 발휘한다면 은행장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