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선수가 많지 않았다. KBO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 부상으로 당시 인기 있던 승용차를 내걸자 그 차를 탐내는 선수들이 ‘미스터 올스타’로 뽑히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을 정도다.
요즘은 다르다. 갓 입단한 신인 선수도 프로 유니폼을 입자마자 차부터 구입하는 일이 많아졌다. 야구선수들의 얼굴이 매일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단 버스만 이용하자니 여러모로 이동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은 운전대를 잡게 되고, 동시에 좋은 차를 찾게 된다. 선수들은 “교통사고는 나 혼자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사고가 나도 최대한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튼튼하고 좋은 차를 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군에서 고정적으로 뛰는 베테랑 선수들은 벤츠(위)를 선호한다. 체격이 큰 야구선수들은 SUV도 즐겨탄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단연 랜드로버(아래)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2000년대 이후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은 수직상승했다. FA 100억 원 벽마저 허물어진 시대다. 야구만 잘하면 ‘청년 재벌’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돈을 거머쥘 수 있다. 게다가 외제 승용차에 대한 인식도 대중화됐다. 일부 부자들에게나 가능한 특권이라는 인식이 사라진 지 오래다. 몸값 비싸고 이름값 높은 야구선수들이 최신 고급차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대부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의 엔트리 모델부터 출발한다. 1군에서 고정적으로 뛰는 선수들이라면 충분히 장만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베테랑 선수들은 벤츠, 젊은 선수들은 BMW나 아우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다 1군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하는 억대 연봉 선수가 되면 희소가치에 더 눈을 돌린다. 포르셰와 페라리는 물론 벤틀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를 비롯한 ‘슈퍼카’에 관심을 갖게 된다. 혹은 유명 브랜드에서도 가장 사양이 높은 최고급 모델로 손을 뻗는다.
가격과 브랜드를 떠나 가장 인기가 있는 유형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다. 일반인보다 체격이 큰 야구선수들에게는 안전성이 뛰어난 SUV가 제격이다. 선수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는 랜드로버가 단연 1순위지만, 20대 젊은 선수들은 국산 SUV도 많이 탄다. 아예 큰 차를 좋아해 픽업트럭을 모는 선수도 드물게 보인다.
이뿐 아니다. 수십억 원대 FA 계약을 맺은 선수들은 늘 사용하는 세단을 기본으로 스포츠카나 SUV를 세컨드카로 두기도 한다. 아내와 자녀가 있는 선수라면 더 그렇다. 실제로 두 번이나 FA 대박을 친 A 선수는 고급차 4~5대를 리스해 바꿔 가면서 탄다. 차의 용도나 유형, 브랜드가 모두 다르다. 한 번은 수억 원대 슈퍼카를 장만하기 위해 아내와 시즌 성적을 두고 내기를 한 적도 있다.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라 결국 실패했지만, 남편의 노력이 가상했던 아내는 “차를 계약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자동차 애호가인 A 선수에게는 그 모든 게 취미 생활이자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 차에 대한 사랑도 지나치면 문제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야구선수들은 주로 리스 차량을 이용한다. 차를 그냥 구입해서 타는 것보다 세액 공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B 선수는 거액의 FA 계약을 맺은 직후 진짜 부자들이나 특급 연예인들만 탄다는 C 사 세단으로 차를 바꿨다. 주위에서 “안목 있다”는 감탄사가 쏟아지자 그는 “어차피 내 차도 아니고 리스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후 같은 팀에서도 FA 계약에 성공한 D 선수가 B 선수와 같은 브랜드의 차로 교체했다. B 선수가 타던 차를 평소 눈여겨봤던 것이다. 비록 계약 금액은 B 선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차에 대한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는 후문이다. B 선수와 D 선수뿐 아니라 한 팀 선수들끼리는 유독 같은 브랜드 차량을 모는 일이 많다. 친한 선수들끼리는 더 그렇다. 서로 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딜러를 통해 구입하면서 할인 혜택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에 대한 사랑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2011년에는 현직 프로야구 선수가 심야 도로에서 자동차 경주를 벌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적발된 146명의 폭주족 안에 E 선수가 끼어 있었다. 이들은 고가 외제차를 타고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와 남산 소월길, 인천 북항 등지에서 최고 시속 200km가 넘는 고속 질주로 ‘드래그 레이스’를 펼친 혐의를 받았다. E 선수의 성이 공개되는 바람에 같은 성을 가진 다른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부인해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E 선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도로에서 부인의 운전 연습을 도와주다 불법 유턴을 하면서 우연히 폭주족으로 오해 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F 투수가 자신이 선발 등판해 대량 실점을 한 당일 밤에 자동차 스피드 동호회 모임에 참석해 고속 질주를 즐기다 구단 자체 징계를 받았다. 그 동호회에 하필이면 그 팀 팬 한 명이 소속돼 있었던 탓이다. 결국 그 팬이 F 투수의 행적을 구단에 알렸고, 그 선수는 다음날 꼼짝없이 구단의 철퇴를 맞았다.
외제차를 주로 타는 선수들과는 달리, 감독들은 구단에서 제공하는 국산차를 탄다. 10개 구단 가운데 6개 팀 감독이 최신형 제네시스EQ900을 몬다.
# 10개 구단 감독은 어떤 차를 탈까
그렇다면 한국에 단 10명뿐인 프로야구 감독들은 어떤 차를 몰까. 특급 선수들과 달리 감독들은 대부분 국산 자동차를 탄다. 구단이 제공하는 세단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는 최신형 제네시스EQ900이 대세다. 10개 구단 가운데 6개 팀 감독이 이 차를 몬다. 지난해 출시된 1억 1000만 원 상당의 대형 세단으로 기존의 에쿠스를 넘어 국내 승용차 가운데 최고급으로 평가받는다.
팀마다 편차는 있지만, 아무래도 경력이 많은 감독이 더 좋은 차를 타기 마련이다. 구단이 포상 차원에서 감독의 차를 교체해주는 일도 생겨서다. 일례로 삼성은 2012년 한국시리즈 2연패 후 당시 류중일 감독의 차를 체어맨에서 에쿠스로 교체했다. 삼성그룹 정책상 체어맨은 전무급, 에쿠스는 사장급에게 제공되는 차량이었다. 취임 2년째인 류 감독에게 계열사 사장급 대우를 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 후 일부 구단도 감독들의 차량 수준을 사장급으로 업그레이드하며 ‘기 살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김기태 KIA 감독의 차는 당연히 기아자동차다. 구단은 자사 브랜드 중 최고급 세단인 K9을 김기태 감독에게 제공하고 있다. 2010년까지 KIA 감독들은 주로 오피러스를 탔지만, 2011년 K9이 출시된 뒤 감독에게 제공하는 차량이 바뀌었다. 당시 사령탑이던 선동열 감독부터 K9를 탔다. 김경문 NC 감독은 2012년 NC에 취임하면서 그랜저HG를 받았다. 이후 신생팀 NC를 내로라하는 강팀으로 이끈 공을 인정받아 차량도 제네시스EQ900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외국인 감독인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그랜저IG를 탄다. 다른 감독들보다 상대적으로 사양이 낮지만, 가장 최근 출시된 모델이다. 장정석 넥센 감독은 전임 감독이 타던 구단 명의의 제네시스EQ900을 그대로 몰고 있다. 구단이 2016시즌을 앞두고 염경엽 전 감독의 차를 에쿠스에서 최신형 제네시스EQ900으로 교체해줬고, 염 감독이 지난해 말 팀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후임 감독에게 그 차가 넘어갔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지난해까지 제네시스G380을 탔지만,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한 뒤 구단이 EQ900을 새로 제공했다. 양상문 LG 감독도 김 감독과 같은 차종을 몰고 있다. 조원우 롯데 감독은 그랜저HG를 운전한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은 2015시즌 취임하면서 받은 구단 명의 에쿠스를 올해까지 타다가 시즌 중반 팀을 떠났다. 그 후 지휘봉을 잡은 이상군 감독 대행은 구단의 차량 제공을 고사했다. 코치 시절과 다름없이 개인 차량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김한수 삼성 감독은 취임하면서 최근 대세인 제네시스EQ900을 받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한수 감독은 코치 시절 벤츠를 탔지만, 감독 자리에 오르면서 국산차를 타게 된 케이스다. 김진욱 kt 감독 역시 구단이 제공한 제네시스EQ900를 몬다. 차에 조예가 깊은 김진욱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 구단이 “원하는 차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자 최고급 SUV인 레인지로버를 선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감독은 직접 차를 운전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김성근 전 감독만 유일하게 구단이 고용한 전담 운전기사를 따로 뒀었다. 매일 치열한 긴장감 속에 시즌을 치르다 보면, 때로는 홀로 운전하는 시간이 가장 값진 휴식을 주기 때문이다. KBO 리그 역대 최다승 사령탑인 김응용 전 한화 감독도 7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까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한화 감독 시절에는 코치들과 선수들이 편하게 쉬라는 의미에서 구단 버스를 타지 않고 직접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당시 “나는 운전을 즐긴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운전하다 말고 여기저기 다른 길로 빠져서 머리를 식힌 적도 있다”며 웃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하늘이 내린 기회 스스로 차버린 ‘음주운전 선수들’ 야구선수들이 좋은 차를 모는 첫 번째 이유는 ‘몸이 재산’이라서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다면? 차라리 맨정신으로 소형차를 운전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 음주운전은 더 큰 잠재적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일이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마저 위협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 출신들은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 단속에 걸려도 일부 경찰이 얼굴을 알아보고 ‘정말 팬이다. 다음부턴 몸조심하라’며 사인만 받고 그냥 보내주곤 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위상도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높은 몸값을 받고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만큼 사회적으로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다. 그럼에도 여전히 프로야구 선수들은 연례행사처럼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유니폼을 벗어야 했던 과거 사례가 있는데도 그렇다. 뛰어난 콘택트 능력과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정수근은 2008년과 2009년 연이은 음주 사고로 무기한 실격 징계를 받고 은퇴했다. 이후 2010년 야구 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았지만 다시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 야구계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두산 소속이던 김명제는 2009년 음주운전을 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냈다. 앞날이 창창하던 특급 유망주가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 큰 사건이었다. 이뿐 아니다. kt 박기혁은 롯데 소속이던 2001년과 2003년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를 당한 데 이어 군복무를 앞둔 2010년에도 세 번째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돼 비난을 받았다. 두산 이용찬도 2010년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내 불구속 입건됐고, 2012년 롯데 고원준, 2013년 넥센 김민우와 신현철, 2014년 삼성 정형식이 연이어 음주사고에 연루돼 KBO와 구단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선수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했던 듯하다. 2015년엔 kt 오정복이 시범경기 도중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돼 1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꼽혔던 NC 에릭 테임즈 역시 시즌 막바지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가 정지됐다. 결국 테임즈는 한 시즌 농사를 좌우하는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테임즈 개인의 명예에 얼룩이 진 것은 물론, 팀으로서도 뼈아픈 사건이었다. 윤지웅 선수. 사진=LG트윈스 홈페이지 게다가 지난 7월 10일에는 주축 불펜 투수인 윤지웅이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신 뒤 오전 6시 30분 서울 잠실동 근처에서 접촉사고를 당했다. 사고 운전자가 만취한 윤지웅의 상태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농도가 0.151%에 달했다. 면허취소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전날 은퇴식을 한 선배 이병규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셨다”는 진술을 했다가 논란이 더 커졌다. 이병규가 “나는 가족 및 지인과 따로 만났고, 윤지웅은 잠시 인사한 뒤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마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음주운전은 무조건 잘못이다. LG는 윤지웅을 올 시즌 남은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했다. KBO도 음주운전 징계 역대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72경기 출전정지 제재를 내렸다. 포스트시즌 경기까지 포함된다. 그 정도로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음주운전 적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중징계가 떨어지고, KBO와 구단은 재발 방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또 다른 선수가 사고를 친다. 아직 선수들의 책임의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던 피츠버그 강정호는 세 번에 걸친 음주운전에 발목을 잡혀 올 시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도 못했다. 실형을 선고 받았고, 취업비자 발급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언제 다시 메이저리그 경기에 나설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갖춘 선수가 한창 전성기를 보낼 나이에 귀한 시간을 통째로 날리고 있다. 강정호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던 미국 언론과 구단의 시선도 이제는 차갑기만 하다. 음주운전은 이렇게 하늘이 내린 기회를 스스로 발로 걷어차 버리는 행위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