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재판에서 새로이 드러난 사실은 공범과 주범이 역할극을 통해 연애 관계로 발전한 것과 이를 통해 공범이 사건에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검찰은 연애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였던 공범이 주범에게 범행을 사주함으로써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다.
자신의 개인 SNS 계정으로 박 양과의 관계를 밝힌 김 양. 트위터 캡처
지난 12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허준서) 심리로 열린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주범 김 아무개 양(16)의 공판에는 공범 박 아무개 양(18·재수생, 구속기소)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검찰은 처음으로 박 양과 김 양이 함께 활동했던 이른바 ‘캐릭터 커뮤니티’의 존재를 정확히 알리고 이를 통한 이들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검찰은 특히 이들이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만난 뒤 사실상 연인 관계로 지냈을 가능성으로 박 양을 압박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3월 18일 박 양이 김 양을 만나 키스를 했고, 이후 연인사이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양이 같은 시기 이와 같은 일을 자신의 SNS 친구에게 알리며 “박 양과 계약 연애를 하게 됐다”라고 말한 사실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사건 이후 김 양이 박 양을 좋아하게 됐고, 박 양은 그런 감정을 이용해 구체적인 살인계획을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양이 남성 역할, 김 양이 여성 역할을 맡아 연인 이상의 종속 관계가 발생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다만 이에 대해 박 양은 “기습 키스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키스를 먼저 한 것은 김 양이며, 실제 연인관계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범행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이 박 양이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검찰 측에 따르면 박 양은 범행에 앞서 “CCTV 앞에서는 변장을 하라”고 김 양에게 조언했다. 김 양의 “우리 집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인다”는 말에 박 양이 “그럼 그 중 하나는 죽게 되겠네, 꺅”이라고 답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공범 박 양이 자신의 SNS 개인 계정을 통해 밝힌 자신의 캐릭터 설정. 트위터 캡처
박 양은 초반 경찰 조사에서는 “김 양이 건넨 봉투 안에 담긴 것이 시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굳이 화장실에서 봉투 안을 확인했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것이 위법한 물건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신이 요구한 시신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결심공판 전까지 박 양의 영향력이 범행에 이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양이 실제로 다중인격인지 여부를 떠나 ‘유사 연인 관계’이자 캐릭터 커뮤니티 상 ‘상사 역할’이었던 박 양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으로 범행에 이르게 됐다면, 박 양의 살인 교사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양은 캐릭터 커뮤니티 활동 이후에도 SNS에서 지속적으로 박 양의 애정을 갈구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는 등 사실상 이들 관계에서 열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던 바 있다.
공범 박 양의 범행 개입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주범 김 양의 심신미약 여부다. 김 양은 자신에게 조현병, 아스퍼거 증후군 등 정신장애가 있다는 점을 지속 주장해왔다. 사건 당시에는 자신의 인격 가운데 하나인 ‘난폭한 J’가 범행한 것이라며 다중인격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던 바 있다.
이에 대해 이날 함께 증인으로 섰던 대검 수사자문위원 김태경 우석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김 양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고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은 낮다”라고 일축했다. ‘환청을 듣는다’ ‘양극성 장애가 있다’는 김 양의 주장과는 달리 면담 과정에서는 그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중인격에 대해서도 “다중인격장애는 인격체들이 평생을 가도 다른 인격을 모를 수 있는데 김 양은 각 인격을 인지하고 바뀐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며 가능성을 부정했다. 아스퍼거와 관련해서는 “아스퍼거는 사이코패스와 달리 감정을 꾸며내는 것이 불가능한데 김 양은 가능했다. 더욱이 어린 시절부터 증상이 나타나는데 아스퍼거로 범행을 할 정도면 학교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김 양은 초등학생 때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양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장 강력한 감형 사유로 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또 다른 증인으로 출석한 김 양의 구치소 동기 이 씨는 “김 양이 정신감정을 받은 이후 자신이 아스퍼거일 수도 있다는 말을 했고, 자폐라고 주장했다. 이후 아스퍼거와 관련된 책을 김 양의 부모님이 넣어줘서 읽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의 일종으로 사회적 공감능력 결여, 의식상태 발달 장애 등 전반적인 정신 장애를 포함하며 종종 범죄에 있어서 심신미약 감형 사유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지난 2013년 경기도 화성에서 자신을 폭행한 남성을 평소 휴대하던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 2심 법원이 아스퍼거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실형과 치료감호를 선고하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