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류 위원장은 발제문에서 “대한민국 유일의 보수 정당임을 자처한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정작 입법 과정에서는 보수적 가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무정견과 무소신, 무이념의 인기 영합적 구태를 보였다”고 지적하고 총 52명의 실명을 나열했다. 류 위원장은 이들의 무소신 의정 활동이 20대 총선을 망친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류 위원장이 지목한 52명 중 20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의원은 26명이다. 현재 한국당에 18명, 바른정당에 7명이 있다. 김종태 전 의원은 임기 도중 배우자의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발제문이 공개되자 정치권이 술렁였다. 강력한 인적 쇄신을 예고한 류 위원장의 살생부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 때문이다.
류 위원장이 문제 의원으로 지목한 의원들 중에는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와 홍문표 사무총장, 김태흠 최고위원, 염동열 대표 비서실장 등이 포함됐다. 또 서청원 나경원 한선교 이군현 김성태 안상수 이우현 의원 등도 포함됐다. 바른정당 소속으로는 유승민 김세연 이학재 황영철 박인숙 오신환 홍철호 의원 등이 꼽혔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1년 전에 발표한 문제의원 명단.
류 위원장은 2016년 11월 5일 ‘단물 빨던 친박은 어디로 갔나’라는 칼럼을 통해서도 일부 의원들을 비판했다. 류 위원장은 칼럼에서 “친박의 대명사인 서청원 의원 그리고 대통령을 누님이라 부르던 윤상현 의원은 왜 이 시점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는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박근혜 지분으로 장관도 하고 지난 4월 선거까지만 해도 친박 공천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최경환 의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고 했다.
류 위원장이 꼽은 문제 의원들은 대부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유일하게 발제문과 칼럼에서 모두 비판 받은 서청원 의원 측 관계자는 “정치라는 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1년 전에 쓴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의원님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류 위원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비판할 마음도 없다”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자신이 포함된)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류 위원장이 학자일 때, 시민단체에 있으실 때 하신 활동이기 때문에 혁신위원장이 돼서 그것이 살생부냐 아니냐 너무 예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혁신위원장으로서의 기준은 달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은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우현 의원은 “(류 위원장은) 웃기는 사람”이라면서 “나같이 (우리 당을 위해) 많이 싸운 사람이 있나. 그 사람이 내용도 모르고 그런 걸 만들었다. 남의 이름을 막 그렇게 함부로 하면(명단에 넣으면)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의원은 “지난 총선 때 수도권에서 당선되기가 쉬웠나. 제가 지역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원내에서도 정부를 대변하며 야당하고 열심히 싸웠다. 이우현이가 무소신으로 의정활동을 했느냐고 지금 다른 동료 의원들에게 물어보라”면서 “야당하고 한 마디도 안 싸우고 가만히 있던 의원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런 의원들이 무소신인 거지 잘못된 기준으로 작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상수 의원도 “선정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법안 발의의 경우 나는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통합형으로 하려고 한다. 아주 극우적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럴지도(잘못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편향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류 위원장은 “당연히 명단에 오른 분들은 불쾌할 것”이라면서 “그래도 그 분들이 너무한 게 박근혜 대통령 때 꼭 필요하다고 한 법안들, 예컨대 노동 개혁에 관한 법안이나 노동 시장이 너무 경직되어 있으니까 대통령이 여당에 부탁도 하고 그런 법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야당이 추진하는 인권이나 민주화 법안에는 쪼르르 가서 해주는 그런 분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 분들을 정리한 명단”이라고 말했다.
인적쇄신 과정에서 자료를 참고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사실 저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기자들이 찾아줘서 다시 보게 됐다”면서 “내가 직접 쓴 것이다. 당연히 참고 사항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살생부라는 표현은 과하다면서 “그때랑 상황도 많이 바뀌었고 다른 자료들도 다 종합해서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우적인 시각에서 의원들을 평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나는 극우가 아니다. 무슨 극우가 기자들이 전화해서 질문하는데 저처럼 일일이 답변하고 그러냐”면서 “제가 우파임에는 틀림없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뭘 하자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다음 총선이 202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제재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공천권을 행사하면 제일 간단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하지만 따져보면 다 방법이 있다. 제 개인적인 아이디어는 몇 가지가 있는데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다. 혁신위원회가 구성되면 혁신위원들하고 정리를 해서 말씀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문제 의원으로 지목된 의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류 위원장은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위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개혁이 쉽지 않다. 같이 죽어야 한다. 같이 죽을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만큼 강력하게 인적쇄신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류 위원장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문제 의원 리스트는 사실상 살생부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아마 당직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출당이나 지방선거에서 문제 의원 측근들을 대거 공천 탈락시킬 가능성도 있다”면서 “다만 리스트 선정 이유에 대한 논란이 있고 정치를 전혀 해보지 않은 류 위원장이 거물급 정치인들을 상대로 인적쇄신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