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후 6시 40분쯤 울산 동구의 한 방과 후 교육시설 5층 옥상에서 중학교 1학년생 이승민 군(13)은 스스로 몸을 던져 세상을 등졌다. 승민 군은 학기 초 같은 반 친구 3명의 주도로 같은 반 동급생들에게 전파된 집단 따돌림에 두 달간 힘겨워했다. 학교와 경찰 등에 따르면 가해학생들은 승민 군의 뒤통수를 때리거나 타 지역에서 전학 온 승민 군이 경상도 사투리를 안 쓴다는 이유로 놀려 왔다. 승민 군이 주번을 맡을 때면 반 학생 대부분은 이동수업을 일부러 늦게 갔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뒤 문을 잠가야 하는 승민 군은 이동수업에 늘 늦을 수밖에 없었다. 책가방을 숨기고 책도 강제로 빼앗았다고 전해졌다.
승민 군이 다녔던 울산 동구의 한 중학교.
승민 군은 극단적 선택에 앞서 한 차례 결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4월 28일 오전 10시쯤 승민 군은 가해학생들의 괴롭힘에 학교 3층 복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동급생과 교사의 만류로 뛰어내릴 수 없었던 승민 군은 이날부터 학교 가기를 거부했다. 승민 군의 아빠 이석근 씨(50)는 “왜 그랬냐고 물으니 승민이가 ‘학교 가기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학교에선 2주 동안의 학업중단숙려기간을 줬다. 이 씨는 아들이 학업을 중단하지 않도록 지난 5월 11일 울산의 한 위탁형 사립 대안학교를 찾았다. 위탁형 대안학교는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이 원래 다니던 학교에 소속을 유지한 채 위탁 수업을 받으며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승민 군은 이 학교에 곧잘 적응했다.
그 사이 학교는 학폭위를 준비했다. 학교폭력방지법은 학폭위 개최 기한을 사건 발생 14일 안으로 정했다. 자살 시도는 위급 사안으로 더욱 빨리 처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학교는 사건 발생 18일 뒤인 지난 5월 16일 학폭위를 가졌다. 학교 관계자는 “이 사건 뒤 가해학생을 포함 같은 반 학생들이 받은 트라우마도 신경 써야 했기에 학폭위를 뒤늦게 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학폭위에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없이 학교 관계자 2명과 학교전담경찰 1명, 학부모 2명 등 5명만 참가했다. 피해학생 쪽에서 참석 의사가 없었다는 게 학교의 주장이었다. 학교는 보통 학폭위에 앞서 ‘학폭위 참여안내문’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등에게 보낸다. 학교는 학폭위 참여안내문을 이 씨에게 보내지 않고 구두로만 안내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관계자는 “승민 군 아빠가 학폭위에 앞서 학교를 3회 방문했을 때 학폭위 참여 의사를 물었다. 학폭위 당일에도 통보했다. 이 씨는 ‘학교가 알아서 하시라’며 ‘학생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가해학생 학부모는 ‘피해학생 쪽이 안 오면 굳이 갈 필요 없다’고 해서 학폭위원끼리 학폭위를 진행했다”며 “말로 충분히 설명했기에 서면으로 된 통지서는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폭위는 피해학생의 진술 없이 진행됐다. 승민 군이 사건 뒤 학교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교는 딱 하루 시간을 내 승민 군 집을 방문했고 피해진술은 받지 못했다. 학교 관계자는 “승민 군이 등교하지 않아 피해진술을 받을 수 없었다. 사건 직후 주말이 지난 5월 1일 승민 군 집을 찾았으나 ‘학교 가기 싫다’는 말만 반복해서 정상적인 피해진술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빠 이 씨의 주장은 달랐다. 이 씨는 “한 번도 학폭위 개최 통지를 받은 적 없었다. 지난 5월 16일 학폭위 개최 시간쯤 난 학교에 있었다. 상식적으로 피해학생 아빠가 학교에 있었는데 곧 열릴 학폭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게다가 처벌을 원한다는 말도 여러 차례 말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2주 넘게 피해학생 진술을 받을 여유가 있었다. 하루 와놓고서 승민 군의 진술을 들을 수 없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학폭위 참가위원 5명은 가해학생들에게 받은 경위서 등을 가지고 승민 군 사건을 ‘학교폭력 아님’으로 결론 내렸다. 만장일치였다. 승민 군의 정신과 방문 이력과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돌발행동이 학교폭력 불인정 사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다. 학폭위 회의록 등에 따르면 학폭위는 “가해학생들을 포함 동급생들에게 받은 경위서를 보면 승민 군이 동급생의 장난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커가는 과정에서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승민 군이 초등학교 때 정신건강 문제를 겪은 바 있었다. 게다가 승민의 아빠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승민 군은 2010년 약 3개월간 정신과를 다닌 바 있었다. 승민 군이 정신과를 다녔던 이유는 5살 때 엄마의 사망 뒤 충격 때문이었다. 지난 2009년 승민 군의 엄마는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했다. 아내의 사망으로 방황한 아빠 이 씨의 주변환경에 따라 초등학교를 2회 옮겼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자주 옮기다 보니 자연스레 학기 초 적응을 쉬워하지 않았다.
학교는 사건의 원인을 학교폭력에서 찾기보다는 승민 군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데 집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학폭위에서 “승민 군과 사건 직후 이야기를 나눴다. 승민 군은 내게 ‘초등학교 때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 있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승민 군은 6학년 때인 지난해엔 학교에서 “죽고 싶다”고 소리 질러 학교폭력예방기관인 Wee센터에 방문해 상담을 받은 바 있었다.
승민 군의 초등학교 담임은 중학교 측의 확대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담임은 지난달 27일 아빠 이 씨와의 통화에서 “승민 군이 학기 초 적응할 때 심리적 불안함은 있었지만 행동 자체는 정상이었다. 학교에서 짜증난 나머지 ‘죽고 싶다’고 말한 걸 극단적 선택 시도였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학교는 사건 직후 승민 군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했다. 우선 승민 군의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승민 군의 행동 하나하나와 정신병원 방문 이력 등을 파악한 것. Wee센터에서 승민 군이 받은 상담 내역까지 파악했다. Wee센터 상담기록은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다. 지난 5월 24일에는 승민 군의 초등학교 의견서도 받았다.
익명을 원한 한 학폭위원은 “승민 군의 과거 행실은 생활기록부만 봐도 충분하다. 학교는 개인의 행동을 초등학교에 캐묻고 의견서까지 받았으며 Wee센터의 상담기록도 파악했다. 학교폭력 발생 그 자체를 두고 학교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피해학생의 개인 문제로 사건의 원인을 입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했다.
승민 군의 초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에 따르면 승민 군은 학기 초 약간의 적응 문제를 보이긴 했지만 곧잘 이겨내며 즐거운 생활을 했다. 생활기록부에는 “승민 군은 재치 있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즐겁게 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과 관계가 좋아져 호감을 받는 등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보인다. 학급 및 학교의 일에 친구들과 협동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생겨났다. 학교생활 전반에서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써 있었다.
입학 전까지 승민 군의 정신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2월 6일 울산의 한 정신건강기관에서 실시한 정신건강검사 결과에 따르면 승민 군은 정상이었다. 보통의 자존감에 우울함도 없었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정의 자녀 정신건강을 일정 기간마다 확인한다. 이 씨는 아내가 사망한 2010년 이래 방황하며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지내 왔다.
입학 전 승민 군이 받은 정신건강검사 결과.
2월까지 정상이던 승민 군의 정신건강은 입학 뒤 두 달도 안 돼 급격하게 나빠졌다. 지난 4월 3일 학교가 시행한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승민 군은 “대인관계를 매우 힘들어 하고 스스로 매우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결과를 받았다. 학교는 승민 군을 관심군으로 뒀다. 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았다. 지난 4월 28일 승민 군의 결정적 신호 뒤에야 학교는 승민 군의 방과 후 수업 담당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승민이는 어떤 아이였나요?”라고 물었다.
승민 군은 결정적 신호 직후 대안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안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특별활동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해 올 1학기에 내야 할 미납 수업료만 60만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아빠 이 씨가 1개월 기초생활보장으로 정부에서 받는 돈은 약 70만 원이었다. 이 씨는 이런 상황을 학교에 전했다.
학교는 공립 대안학교를 추천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극도로 나빠진 승민 군의 정신상태를 본 공립 대안학교는 “기숙사 학교로 승민 군의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승민 군의 입학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학교 측은 “가해학생 학부모에게 돈을 걷어서라도 승민 군의 대안학교 비용을 마련해 보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씨는 차마 가해학생 쪽 돈을 받을 수 없어서 거절했다. 학교는 지난 5월 23일 학업중단숙려기간 2주를 추가로 승민 군에게 줬다. 지난달 9일 승민 군은 경찰의 중재를 받아 일부 금액을 감액 받은 뒤 원래 다니던 사립 대안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승민 군의 결정적 신호와 극단적 선택 사이 학교전담경찰관은 승민 군을 딱히 돌보지 않았다. 학교전담경찰관 A 경사는 결정적 신호 뒤 승민 군을 딱 한 번 지나치며 만났다. 거듭된 아빠 이 씨의 상담 요청과 처벌 의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A 경사는 지난 12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아빠 이 씨의 승민 군 상담 요청에 응하지 않았던 건 극단적 선택 시도 학생 상담을 하지 말라는 경찰 내부 지침 때문이었다. 승민 군이 다니던 중학교를 힘들어 해 대안학교를 갈 수 있도록 5월 22일 내가 연결해 줬다. 안 열릴 것 같던 학폭위도 강력한 내 의지로 열릴 수 있었다. 지난달 2일에는 대안학교를 따로 찾아가 승민 군을 챙겼다. 학교전담경찰관의 역할을 넘어 노력했다”며 “이 씨가 가해학생의 처벌을 원하지 않아서 수사 접수를 따로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A 경사의 이런 해명을 바탕으로 한 보고자료는 경찰청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대안학교는 이 씨가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해 찾았다. 승민 군의 대안학교 입학은 5월 22일이 아닌 5월 11일이었다. A 경사는 대안학교 입학 뒤 여행 등 특수 교육과 교재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 씨 이야기를 듣고 대안학교 교장에게 “승민 군이 내야 할 비용을 조금 깎아 달라”고 요청한 게 전부였다.
경찰 내부에 “극단적 선택 시도 학생의 상담요청은 받지 말라”는 지침은 없었다. 경찰청 소속 학교폭력 관계자는 “상담 도중 학생이 자살을 시도하면 상담을 중단하고 담당 교사에게 인계하라는 내용만 나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A 경사는 승민 군의 결정적인 신호 뒤부터 지난달 2일까지 한 달 넘게 승민 군을 만나지 않았다. 지난달 2일 A 경사는 대안학교에서 승민 군을 만나긴 했다. 하지만 대안학교 관계자는 “A 경사가 지난달 2일 학교에 왔다. 하지만 동료 분과 함께 다른 일로 학교를 찾았다가 우연히 승민 군을 마주쳤다. 슬쩍 인사만 하고 갔다”고 말했다.
A 경사는 지난 4일 국민의당 소속 홍다희 학교폭력근절특별위원장과의 통화에서 “이 씨가 장례식장 비용으로 힘들어 하길래 대줬다”고 했다.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 장례비용은 승민 군이 다녔던 중학교와 방과 후 교육시설에서 반반씩 냈다. 학교 관계자는 “승민 군의 방과 후 교육시설에서 먼저 장례식장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학교와 A 경사, 울산 동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내내 “승민 군 아빠가 가해학생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이 씨가 울산지방경찰청에 지난 4일 신청한 통화내역 정보공개에 따르면 이는 모두 거짓이다. 울산지방청이 자신들의 답변 내용을 제거하고 공개한 이 씨와 경찰의 대화에 따르면 이 씨는 실제 지난 5월 20일 경찰에 전화를 걸어 “아들을 괴롭힌 학생을 제대로 처벌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경찰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이틀 뒤 이 씨는 다시 경찰에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A 경사는 그제야 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씨에 따르면 A 경사는 “형편이 어려운데 학교에서 치료비도 준다고 하지 않나. 좋은 게 좋은 거다. 처벌보다 가해학생을 용서하는 것이 우선이다. 넘어 가자”고 했다.
경찰청의 불성실한 민원 대응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청은 울산 동부경찰서와 울산지방경찰청의 무대응에 지친 이 씨의 연락을 수차례 받은 뒤 “곧 전화하겠다”고만 했다. 대응은 없었다. 이 씨 전화번호를 피했다는 의혹에 빠졌다. 이 씨가 전화 연결에 실패한 뒤 다른 전화기로 전화하자 경찰청 담당자는 곧 바로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이 씨에 따르면 결정적 신호 직후 승민 군은 이 씨에게 “학교전담경찰관이 왜 날 보러 왜 오지 않냐?”고 물었다. 이 씨는 “그날뿐만 아니다. 승민이가 죽기 얼마 전 문득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를 했다. ‘아빠,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 같아. 경찰도 안 오고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하더라. 마음이 참 아팠다”고 전했다
문영근 울산 동부경찰서장은 지난 5일 이 씨를 만나 “이게 학교폭력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학교폭력인가. 교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리 승민 군을 방치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교사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말 잘못했다”고 말했다. 문 서장은 12일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학교폭력전담경찰관의 잘못이 밝혀지면 응당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승민 군이 죽은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학교를 찾았다. 학교는 그제야 이 씨에게 학폭위 결과통지문을 넘겼다. 학교는 승민 군 사망 한 달 전인 5월 19일 학폭위 뒤 즉시 결과통지문을 이 씨에게 발송했지만 반송돼 오자 전달을 잊고 있었다. 승민 군의 아빠는 아들이 사망한 다음날 “아들의 사건은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는 결과통지문을 전달 받았다. 학교는 이마저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씨가 받아든 결과통지서에는 승민 군의 이름이 ‘가해학생’란에 써있었다. 학교는 “담당자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가해학생의 자리에 들어간 승민 군의 이름.
이 씨는 지난달 28일 재심을 신청했다. 오는 17일 울산광역시청에서 2차 학폭위가 열릴 예정이다. 이 씨는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돈 보고 이런다는 사람이 많은 것 안다. 그랬다면 가해학생 학부모 돈을 걷어서 준다던 교장의 제안을 거절했을 리 없다”며 “억울하게 제 엄마 곁으로 간 승민이가 억울하지 않게 하늘나라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맞서 싸우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