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백화점 하면 뭐가 제일 먼저 생각나세요? 가장 화려한 곳. 쾌적한 곳. 돈 쓰기 딱! 좋은 곳. 대략 이런 곳이죠.
특히 요즘 같이 습하고 무더위가 계속되는 한여름에는 굳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들어가곤 합니다. 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기 때문이죠. 30도를 훌쩍 넘는 한여름에도 백화점에 들어가면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이 쾌적한 환경 탓에 우리 주머니는 술술 열리기도 하죠.
그런데...혹시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가보셨나요? 여기가 과연 같은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힙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로비와의 얇은 유리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지옥’이고, 또 다른 한 쪽은 ‘천국’이 펼쳐집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우리네 아들, 딸, 형, 동생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하 주차장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주차 요원들이죠. 흔히들 주차장 알바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박정훈 기자 =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한 주차요원이무더위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무엇보다 시급이 쏠쏠했습니다. 최저시급(6470원)보다 1530원 높은 시급 8000원은 물론 백화점 내 구내식당도 이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은 오후 4시부터 지하 대형마트가 마감하는 오후 10시까지.
출근 첫날부터 A씨는 지옥을 맛봤습니다.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로 공기는 다습했죠. 유니폼으로 지급된 긴바지는 거친 저가 천으로 만들어져 통풍은 전혀 안됐고, 같이 지급된 구두와 모자, 손 장갑은 숨을 턱 막히게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가끔 교대로 들어가는 주말 타임은 생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자동차 소음과 매연은 더더욱 A씨를 괴롭게 합니다. 게다가 알바생들은 안전을 위해 반복해서 “고객님 비상등 켜주십시오”를 외쳐야 합니다.
물론 50분 근무에 10분 휴식이 주어지긴 하지만, 알바를 마치고 나오면 온 몸은 녹초가 되고 목은 매연 탓에 타들어갑니다.
한 달째 주차장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A씨는 “이러다 병원비가 더 들겠다”라며 “후임자가 올 때까지만 일하고 곧 그만둘까 한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까...그래서 기자는 7월 13일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백화점 3곳을 찾았습니다. 백화점 매장 안과 지하주차장의 온도와 습도를 비교하기 위해 디지털 온·습도계를 가져갔습니다.
오후 12시경 서울시내의 S 백화점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서울 기온은 29도. 푹푹 찌는 날씨였습니다. 땀이 이마에 맺히고 온몸이 젖을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기자가 찾은 S 백화점 안 온도(좌) 지하 주차장 온도
하지만 S 백화점 1층 입구에 들어선 순간,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마다 에어컨이 내뿜는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찝찝했던 ‘겨땀’은 10분 만에 사라졌습니다. 매장 안에서 땀을 흘리는 직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마저도 냉랭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백화점 4층에서 온·습도계를 꺼냈습니다. 29도를 유지했던 온도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12시 50분 경 백화점 실내 온도는 25.4도, 습도는 54%였습니다. 습도를 표시한 부분 오른쪽에 아이콘이 보이시나요? 아이콘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아이콘은 표정 변화로 열중증(비정상적인 고온환경으로 인해 체온 조절이 흐트러져 일어나는 병)에 대한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능을 합니다. 백화점 안이 ‘적정 기온’이라는 뜻입니다.
S 백화점 지하 주차장 2층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마치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온도계 수치는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약 한 시간 뒤 지하주차장 온도는 34.3도, 습도는 55%를 기록했습니다. 백화점과 지하주차장의 온도차는 약 8도. 상하좌우가 꽉 막혀 더욱 더웠습니다. 아이콘이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열중증을 우려할 만한 ‘경계’ 수준입니다.
차량들이 기자의 앞을 지나칠 때마다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쇼핑카트를 옮기고 있었던 근무자 A 씨는 “여기는 엄청 덥다. 차들이 뿜는 매연 때문에 더 그렇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근무자들은 긴 바지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이지만 이곳은 ‘죽음의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주차요원 B 씨는 손으로 연신 땀을 훔치며 “햇볕이 위층 바닥에 모였다가 아래로 전달돼서 더운 것 같다. 차가 밀리면 더 심해지는데 그럴 때 더욱 덥고 힘들다”고 전했습니다.
기자는 지하주차장을 헐레벌떡 뛰쳐나왔습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열기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서울 시내의 또 다른 백화점인 H 백화점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3시경 백화점으로 들어간 순간 지하주차장에서 흘렸던 땀들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이곳이 과연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가 찾은 H 백화점 안 온도(좌) 지하주차장 온도
3시 35분, H 백화점 6층 온도는 25.7도, 습도는 68%를 기록했습니다. 온·습도계 아이콘은 점차 미소를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뿐. 백화점 지하주차장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H 백화점 지하주차장은 곳곳에 설치된 송풍기 때문에 조금은 시원했습니다. 하지만 송풍기가 없는 공간에서는 열기가 여전했습니다.
지하주차장 근무자들의 옷차림도 더워보였습니다. 이들은 벙거지 모자를 쓰고 긴 바지를 입은 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C 씨는 “많이 덥지만 이동식 에어컨이 있어서 때문에 좀 낫다”라고 밝혔습니다. C 씨 옆에 설치된 이동식 에어컨이 바람을 뿜고 있었지만 C 씨의 목덜미에는 땀이 가득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측정한 온도는 31.8도, 습도는 62%였습니다.
L백화점 매장 온도(좌), 지하주차장 1층 온도
수도권에 있는 L 백화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30도 이상으로 올라갔던 온도는 매장에 도착한 이후 계속 떨어졌습니다. 5층 스포츠 아동매장에서 다시 확인한 온도는 26.7도, 습도는 62%였습니다.
지하 1층 주차장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차들이 오가는 주차장 입구에 삼삼오오 모인 근무자들도 모자와 긴 바지 차림이었습니다. 트럭에 있는 옷들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이들의 등마다 넓은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흥건한 땀 때문입니다.
L백화점 지하주차장 벽면에 위치한 에어컨 실외기. 이곳에 일하는 주차요원들은 백화점 실내 냉방을 위해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열기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지하주차장 벽면 한곳엔 보기만해도 더울 정도로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백화점 실내의 냉방을 위해 지하주차장 주차요원들은 에어컨 실외기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한 시간 뒤 측정한 온도는 34.1도, 습도는 56%를 기록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백화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통과하는 얇은 유리문 하나를 두고 온도는 8도 가까이 차이났습니다. 얇은 유리문 하나가 ‘거대한 성벽’ 처럼 느껴졌습니다.
알바생들을 업체에 연결해주는 파견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하 주차장 알바는 시급이 높아도, 여름철 알바생들이 가장 꺼리는 업종”이라며 “고온다습한 공기에 매연이 있어도 안내 멘트 때문에 마스크조차 못 끼는 최악의 근무 환경 탓에 알바생들의 중도 포기율도 꽤 높다”고 설명합니다.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문제는 당장 느껴지는 무더위와 매연만이 아니라고. 지하 주차장 등 각종 지하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동차 매연서 유발되는 미세먼지, 포름알데히드, 벤젠 등 유독물질은 물론 1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라돈’ 등에도 노출돼 있답니다. 게다가 제대로 마감처리가 안된 곳에선 ‘석면’이 날라 다니기도 합니다. 잠시 주차장을 지나는 고객들에겐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장기간 이곳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치명타겠죠.
지하시설의 환기장치에 대한 규제와 보호 장치는 있지만, 실제 이곳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장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보건 및 노동 당국은 환기장치 규제 강화와 지하 노동자들을 위한 근무 환경 개선 등 보완책이 시급해 보입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