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재벌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아진 상황에서 부영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부영 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사) 전경. 고성준 기자
부영은 10년 전부터 골프장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2008년 1월 제주도 서귀포에 제주부영 컨트리클럽(CC)을 개장한 부영은 2010년 라오스에 부영라오씨게임을 건설했다. 이듬해에는 무주덕유산리조트를 계열사로 편입했고, 2012~2013년엔 순천부영CC와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골프장을 조성했다. 지난해 나주부영CC를 개장한 부영은 오투리조트, 마에스트로, 더클래식 등 3곳의 골프장을 연이어 매입했다.
세부적으로 부영은 오투리조트 인수에 800억 원, 천원종합개발(마에스트로)에 682억 원, 호원(더클래식)에 384억 원 등 1866억 원을 썼다. 그러나 오투리조트의 지난해 매출은 47억 원에 불과했고, 당기순손실은 무려 2200억 원을 기록했다. 천원종합개발도 86억 원의 매출과 68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호원은 9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연매출은 11억 원에 그쳤다. 무주덕유산리조트는 지난 2015년 12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300%에 달했다. 제주 부영CC는 부채가 자산을 42억 원 초과한 자본잠식에 빠졌다.
해외 골프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라오스 골프장을 운영하는 ‘BOOYOUNG LAO’는 2016년 기준 자산 360억 원에 부채 500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 2년간 당기순손실은 21억~26억 원으로 나타났다. 2015년까지 이 회장은 BOOYOUNG LAO 지분 60%를 가진 대주주였다.
그런데 ㈜부영주택은 BOOYOUNG LAO 유상증자에 참여해 보유 지분율을 65.7%까지 높였다. 자연스레 이 회장 개인 지분율은 낮아졌다. 오너가 책임져야 할 리스크를 ㈜부영주택이 떠안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영주택은 지난해 캄보디아 골프장 운영사인 ‘BOOYOUNG KHMER2’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39.2%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 회장은 2015년 말까지 BOOYOUNG KHMER2(KHMER2) 지분 90%를 가진 대주주였다.
캄보디아 부동산 개발 등을 명목으로 설립된 KHMER2는 역외탈세 의혹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국세청은 부영이 ㈜부영주택을 통해 약 2300억 원을 캄보디아 법인 BOOYOUNG KHMER1(KHMER1)에 송금하고, 다시 KHMER1이 KHMER2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국내 자금을 반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영이 캄보디아에 설립한 은행인 BOOYOUNG KHMER BANK는 이 과정에서 두 법인의 자금 중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KHMER1이 땅을 매입하고, 캄보디아 은행을 통해 대출을 일으켜 KHMER2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담보 대출은 자산 가치 평가 등 증빙이 어려워 국내 제1금융권에선 쉽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KHMER2는 지난해 기준 자산(4950억 원)보다 부채(5150억 원)가 더 많은 자본잠식 상태다. 매출은 68억 원에 불과하지만 당기순손실은 193억 원으로 매년 누적 적자가 늘고 있다. 그런데 ㈜부영주택은 지난해 이 회사에 대한 대여금을 546억 원으로 늘렸다. ㈜부영주택이 공급한 돈은 KHMER2를 통해 다시 KHMER1로 흘러갔다. KHMER1의 지난해 매출은 0원이지만 당기순이익은 135억 원에 달했다. 별도 영업활동 없이 대여 이자 등으로만 올린 수입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사진)이 지난해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고발당한 데 이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영이 제출한 계열사 지분 현황이 허위 신고된 정황을 포착해 고발하면서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이종현 기자
이 같은 자금 흐름은 국내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부영 골프장 운영사이자 자본잠식에 빠진 부영CC는 지난 2년간 이 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남광건설산업으로부터 279억 원을 빌리고, 그 이자로 9억 원을 냈다. 무주덕유산리조트도 2015년 남광건설산업으로부터 360억 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남광건설산업의 지난 2년간 매출은 6억 원인 데 반해 영업 외 이자수익은 20억 원에 육박했다.
특히 남광건설산업은 이 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개인회사임에도 2013년까지 이 회장 친인척 및 임직원이 주요 주주로 등록돼 ‘위장 계열사’란 의혹을 받았다. 공정위는 2016년 10월 부영CC가 ㈜부영주택을 비롯한 계열사와 모두 160여 차례 자금 거래를 했지만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즉 부영CC에서 만들어진 돈이 대여 등을 이유로 남광건설산업을 비롯한 계열사에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 부영CC는 동광주택으로부터 1250억 원을 대여했는데 동광주택은 이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가진 동광주택산업을 대주주(지분 100%)로 두고 있다. 동광주택은 2015년 말 기준 4400억 원을 부영CC 등에 대여했고, 지난 2년간 489억 원의 이자수익을 거뒀다. 이들 수익 대부분은 현금배당(배당율 100%)을 통해 동광주택산업에 넘어갔는데 동광주택산업은 다시 100억 원대 현금배당을 실시해 지분 100%를 가진 이 회장 일가에 수익을 몰아줬다. 동광주택산업의 2015년 매출은 0원이다. 즉 부영CC 등이 자금난을 겪으면 계열사간 자금 대여가 늘고, 그에 따른 이자를 배당 등의 형태로 이 회장이 챙겨간 셈이다.
결과적으로 부영의 잇단 골프장 투자는 총수 일가의 사익과 연관이 있으며, 일부 골프장에선 이미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배임 소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사정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캄보디아 부동산을 위주로 국세청 등에서 의혹이 제기됐지만 자료 확보가 쉽지 않아 제주 골프장 등까지 살펴봤으며 일부 문제가 발견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부영 측은 7월 19일까지 답변을 주지 않았다.
강현석 angeli@ilyo.co.kr
대형 게이트 줄줄이…부영 조세포탈 수사는 후순위로 지난해 4월 국세청 고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된 부영 역외탈세 수사는 ‘롯데 오너 일가 수사’와 ‘정운호 게이트’, ‘최순실 게이트’가 연이어 터지면서 후순위로 밀렸다. 재계 안팎에선 부동산 임대사업으로 시작해 재계 서열 10위권까지 급부상한 부영에 대해 정권 차원의 ‘손보기’가 있을 것이란 뒷말이 무성했다. 그러나 부영 수사는 동력을 잃은 채 재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정당국 관계자는 “국세청이 확실한 혐의를 잡고 고발했는데 추가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검찰에)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검찰 상부의 지시 등으로 수사가 지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부영은 2016년 2월 최순실이 소유한 K스포츠재단을 상대로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은 다르다. 서울중앙지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부영 수사를 준비하면서 캄보디아 부동산 매입 등 해외 자금 거래에 대한 자료 제출을 원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국세청의 보충이 부족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부영 측도 방어 논리를 만들고 일부 증거가 파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세정당국 관계자는 “(검찰이) 입증 책임을 다른 기관에 떠넘기는 꼴”이라며 “의지가 있다면 (수사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수1부 인력은 검사와 수사관, 파견 인력 등을 포함해 30명이 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최순실 씨에 대한 공소유지, 신동빈 롯데 회장에 대한 공판 준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특수1부는 ‘청와대 캐비닛 문건’ 수사까지 맡게 되면서 준비했던 대기업 수사를 미루고 있다. 연내 수사 재개 가능성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다른 사건도 많아) 확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