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의혹과 음모론을 낳은 케네디 암살은 의문투성이였다. 수많은 세력과 사람들이 배후로 지목되었지만, 공식적으론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행동으로 결론지어졌다. 올리버 스톤은 <JFK>(1991)에서 그 모든 음모론을 종합하며 정보기관과 군산 복합체의 합작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케네디의 죽음에 대해선 아직 수많은 ‘설’들이 있을 뿐이다.
재클린 케네디.
그 중 하나가 재클린이 남편을 죽였다는 음모론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론이 생겨난 건, <JFK>에서도 제기된 ‘마술 탄환’ 이론 때문이다. 검시 결과에 의하면 암살범 오스왈드가 쏜 총알은 곡선 운동을 통해 케네디를 관통하고 앞자리에 앉았던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에게도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대한 공식 기록엔 오스왈드가 총 세 발을 쏜 것으로 되어 있다. 첫 발은 빗나갔다. 두 번째 총알은 케네디의 목을 관통했고 이 총알은 앞자리에 앉은 코널리에게도 맞았다. 바로 ‘마술 탄환’이다. 세 번째 총알이 결정타였다.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과정이 매우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 과연 오스왈드 한 명만 총을 쏜 것일까? 케네디가 입은 총상은 각도 상 과연 한 곳에서 쏜 총알에 의한 것일까? 이후 이 현장을 우연히 기록한 ‘재프루더 필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커져갔고 급기야 재클린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이 필름엔 매우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총알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왼쪽에 앉아 있던 재클린은 왼손으로 남편의 턱 부분을 받치고 있었는데, 팔을 약간은 어색하게 뒤튼 동작 때문에 그녀의 오른손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때 앞자리의 코널리는 고개를 돌려 재클린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세 번째 총알이 발사된다. 그런데 이때 차 안에선 흰 연기가 잠깐 피어오른다.
이 부분을 수백 번 돌려 보고 암살에 관련된 검시 자료와 총상의 위치를 검토하던 음모론자들의 결론은 명확했다. 절대로 오스왈드 단독 범행은 아니라는 것. 케네디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총격이 있었다는 것. 그 가까운 곳에서 발사된 총알은 케네디의 왼쪽 귀 부분을 명중해 위쪽으로 발사되었다는 것. 그 총은 차 안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그 위치는 바로 재클린이 앉은 자리이며, 재클린의 오른손엔 권총이 쥐어져 있었을 것이며, 오스왈드의 세 번째 사격과 재클린의 발사는 거의 동시에 이뤄졌을 거라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차 안의 흰 연기는 재클린이 총을 쏘면서 생긴 것이며, 이미 아내에 의해 치명타를 입은 케네디의 머리 부분에 오스왈드의 세 번째 총알이 맞았다는 것. 그리고 차 뒤에 따라오던 경호요원 클린트 힐도 사실은 암살에 가담한 상태였고, 혼란 중에 그가 쏜 총알은 케네디의 등을 관통한 후 앞자리의 코널리 주지사에게 맞았다는 것.
케네디 암살 당시 우연히 현장을 기록한 ‘재프루더 필름’.
증언들은 많았다. 사람들이 들었던 총성의 숫자는 모두 달랐다. 인근에서 사진을 찍었던 휴 베츠너는 차 안에서 폭죽 비슷하게 생긴 걸 봤다고도 했다. 오스틴 밀러라는 목격자는 차 안에서 총격이 이뤄졌다고 했고, 뒤차로 따라가던 상원의원 랠프 야보로는 차 근처에서 화약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로버트 모닝스타라는 저널리스트는 검시 결과를 분석한 후, 오스왈드가 쏜 총알은 이미 머리에 총격을 당해 죽어 있는 케네디를 다시 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가인 데이비드 리프튼은 세 명의 암살자가 있다는 이론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한 명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쏘았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정말로 재클린 케네디가 존 F 케네디를 죽인 거라면, 그 모티브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의외로 많은 이유를 찾아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는 섹스 중독자였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문란한 여성 관계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재클린은 재선 선거만 끝나면 이혼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이때 우연히 암살 계획을 듣게 되었고, 자원해서 참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 부부의 관계는, 암살 전날 텍사스의 호텔에 묵었을 때도 각방을 쓸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암살 주도 세력은 아이들을 볼모로 재클린을 협박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가장 놀라운 건, 재클린이 CIA 요원이라는 이론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바사르 대학을 다니다 프랑스의 소르본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미국으로 돌아온 후 조지 워싱턴 대학에 들어가 1951년에 졸업했다. 이후 그녀는 1952년에 CIA에서 일했고 1953년에 상원의원 케네디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CIA 요원이었던 조지 드모렌쉴트는 재클린 가문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인물로 케네디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즉 정보기관의 주도로 암살이 이뤄졌는데, 그 연결고리로 전직 CIA 요원이었던 재클린이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재클린은 남편의 죽음에 관련되었던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존 F 케네디의 죽음 이후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진 못했다. 오나시스 역시 유명한 바람둥이였던 것. 그는 1975년에 세상을 떠났고, 다시 홀로 된 재클린은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