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시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메타프로방스 조성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사진=담양군
최근 대법원이 ‘이 사업의 시행계획 인가 취소와 토지수용재결 집행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미 80%가량 진행된 상태에서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라는 판결이어서 행정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고 공사 중지 사태는 지속되는 등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을 명목으로 토지를 헐값에 수용한 뒤 수익형 관광단지로 개발하는 ‘묻지마식’ 투자 관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향후 유사 사례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메타프로방스 조성 사업은
이 사업은 관광명소인 담양읍의 ‘메타세쿼이아 거리’ 인근에 민자를 끌어들여 유원지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담양군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일대 21만 3000㎡에 유원지를 조성하는 ‘메타세쿼이아 전통놀이마당 유원지 조성 사업’ 중 2단계 사업이다. 담양군이 직접 시행한 1단계 전통놀이마당 조성 사업은 82%, 3단계 농어촌테마공원 조성 사업은 100% 완공했다.
문제가 된 것은 2단계인 ‘메타프로방스 조성사업’이다. 민간자본 등 587억 원을 들여 담양읍 학동리 메타세쿼이아길 인접지 13만 5000㎡에 펜션·상가·호텔 등을 밀집시킨 유원지 시설이다. 2014년 펜션·상가가 개장해 영업 중이며 관광호텔 등을 짓던 중 소송으로 중단됐다. 현재 공정률은 80%이며 지금까지 총사업비 587억 원 중 430억여 원이 투자됐다. 이와 별개로 상가 등 분양금·등기비용 등은 127억 원, 영업 중인 49개 업체의 보증금·인테리어비용은 141억 원에 달한다.
# 첫 단추 잘못 끼웠다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은 민간자본을 유치해 이곳에 상가와 펜션, 호텔, 컨벤션센터 등 유원지를 짓겠다고 나선 담양군이 관련 규정을 무시한 채 사업을 인가해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강 아무개 씨 등 주민 2명이 담양군을 상대로 제기한 사업시행계획인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2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또 강 씨 등이 전남도지방토지수용위원회를 상대로 낸 토지수용재결 취소 소송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국토계획법령이 정한 도시계획시설사업의 대상 토지의 소유 요건(전체 3분의 2)과 동의 요건(50%)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사업시행자로 지정했다면 그 하자가 중대하다”고 밝혔다. 또 “사업시행 기간 중 사업 대상인 토지를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공공성을 현저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사업계획 인가 단계에서부터 잘못됐으니 원점으로 되돌아가라는 의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이번 소송은 지난 2007년 3월 확정한 소도읍 육성 사업계획에 따라 도시·군 관리계획 변경(2010년), 사업시행자(디자인프로방스) 지정(2012년), 실시계획 인가·고시(2013년)를 거쳐 신속한 사업추진을 위해 담양군이 개인 토지수용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당시 3.3㎡에 10만∼40만 원에 수용됐던 땅값은 현재 3.3㎡당 최소 100만 원에서 700만 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2013년 이 사업으로 토지 일부를 강제 수용당한 강 씨 등 주민 2명은 2013년 10월 광주지법에 실시계획 인가 효력 취소와 토지수용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8월 선고된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는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 사업 80% 진행 마무리 단계…영업 상인 피해 불가피
실시설계 인가가 난 지 4년 4개월, 토지수용 결정 3년 10개월 만에 내려진 이번 확정판결로 이미 80%가량 진척돼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메타프로방스 사업이 중단돼 상당한 파장이 우려된다. 관광호텔 건설은 한참 미뤄지게 됐고 영업 중인 주변 상가들의 피해는 불가피하게 됐다. 또한 인허가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담양군 행정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으며 상가를 분양받은 이들의 손해배상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상가와 펜션 104개 동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메타프로방스는 현재 56개 동만 준공됐다. 나머지는 소송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이번 판결로 공사 중단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소송에서 이긴 원고가 또 다른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토지반환 요구 소송과 건물 철거 요구 소송 등이다. 사업 시행자, 프로방스 입점 업체들을 비롯한 담양군과 군민들이 입게 될 피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토지를 수용당한 주민들이 재산권을 주장하며 토지 반환을 요구하게 되면 군은 사실상 재협상에 들어가야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소유주들은 철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입주 상인은 “전 재산을 투자했는데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담양군 재협상에 나설듯…험로 예상
담양군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피해가 적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메타프로방스 조성사업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담양군 관계자는 “사업 추진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다시 밟겠다”면서 “대법원의 판단대로 행정 절차를 다시 밟는다면 3개월 뒤 사업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자를 새로 지정하고 실시설계 재인가를 받은 후 새 사업자가 강 씨 등과 협상을 하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땅값 재협상 등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소송을 냈던 강 씨 등의 반발이 거세다. 강 씨는 ”군은 공익성이 있는 유원지를 개발한다고 했지만 현재 이곳은 상가와 펜션만 들어섰다“면서 ”수사를 통해 잘못된 행정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성토했다.
또한 메타프로방스 사업부지 13만 4000㎡의 원 소유주 82명 가운데 강제 수용당한 5명(강 씨 등 포함)이 높은 보상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군이 다시 토지수용 등으로 맞설 경우 이들은 건물 철거소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토지를 협의 매각한 77명 중 일부도 토지반환청구소송을 걸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시설을 이미 분양받은 상인들과 건축비를 결제받지 못한 건축업자 등의 피해가 엄청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윤중·배윤영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