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독점기업이란 점에서 언젠가 다시 부활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옛 영광을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7월 20일 오후 방산비리 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서울 중림동 사무소에서 관계자들이 임시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날 오전 하성용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지금은 괜찮지만…불안해진 미래
1분기 말 기준 KAI의 부채비율 및 차입금 의존도는 각각 128.8%, 24.3%로 재무구조는 안정적이다. 1분기 말 수주잔액은 17조 7000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12조 원이 이번 비리 의혹으로 변수에 휩싸였다.
수리온의 군납용 1, 2차 양산물량 2조 5000억 원, 민간용 1조 6000억 원가량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커졌다. 특히 수리온 2차 양산사업은 아직 대부분 납품대금을 받지 못했다. KAI의 방위사업청 미청구공사 금액은 9013억 원에 달한다.
2015년 말 계약한 7조 9000억 원 규모의 차세대 한국형전투기사업(KF-X)도 방산비리 전반으로 사정 칼날이 향하는 상황에서 장담하기 어렵다.
KAI는 현재 17조 원 규모의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에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으로 입찰한 상황이다. 사실상 록히드마틴의 기술로 만들어진 KAI T-50의 완성도는 매우 높지만 이번 수리온 비리 의혹이 자칫 치명적인 결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KAI 관계자는 “제품 결함이 확인되면 상당한 재무적 비용을 치르지 않고는 고객에게 만족할 대안을 제공하기 쉽지 않다. 제품 결함 및 오작동 발생으로 인한 항의는 배상가액이 큰 소송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영업, 재무상태 및 경영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낙관론 VS 비관론 ‘팽팽’
유재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방산비리 이슈는 수리온 헬기 결함에도 불구하고 양산 진행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책임 추궁이 쟁점이다. KAI는 수리온 매출을 제외해도 연간 2000억 원 이상 당기순이익 창출이 가능하다”면서 “(KAI 주가는) 지금이 바닥”이라고 분석했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비리 의혹 조사를 반영해 실적 전망치도 목표주가도 낮아졌지만 주가가 기업가치 훼손 정도 이상 하락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매수 기회로 삼을 만하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헬기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으며, 이번 검찰 수사로 항공 군수사업에 대한 연구개발과 양산 및 전력화 과정이 더욱 선명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중한 접근을 권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홍균 동부증권 연구원은 “2016년 연말에 신규로 수리온 3차 양산 및 상륙기동헬기 등을 매출로 인식하면서 실적 성장에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당분간 매출 차질과 함께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관측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다책정된 개발원가 및 항공기 성능 개선에 따른 일회성 비용 발생, 국내 사업에 대한 일정 기간 입찰제한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 정도로는 펀더멘털이나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수리온 3차 양산(1조 5500억 원, 2017~2022년), 상륙기동헬기(6300억 원, 2017~2023년) 사업이 과연 정상 진행될지, 완제기 수출 프로젝트들에 대해 과연 정부가 어떤 스탠스를 보일지 등이 관건”이라며 “이에 대한 긍정적인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주가 회복도 당분간 지연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이미 F/A-50 이라크(91.5%), 필리핀(89.4%) 등 완제기 수출 관련 수주물량은 대부분 매출 인식이 종료 단계에 진입해 T-50/KF-X계열 매출의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2016년 기준 전사 매출의 21%를 차지하는 수리온 관련 국내 매출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향후 전사 매출 또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사태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던 KAI의 민영화는 상당 기간 연기되거나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KAI로서는 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재료 하나가 힘을 잃은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
KAI와 대우조선 ‘묘하게 닮았네’…양쪽에 다 엮인 수출입은행은 한숨 푹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비리 의혹이 대우조선해양과 닮은꼴이란 지적이 나온다. 우선 옛 대우그룹 계열이란 공통점이 있다. KAI는 1990년대 삼성, 현대, 대우가 합작해 만들었다. 지난 20일 사임한 하성용 전 사장은 대우중공업 출신이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점, 산업은행이 30%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였던 점도 닮았다. 외환위기 이후 KAI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8조 원에 달한다. 대우조선에 투입된 채권단 자금도 기준에 따라 최대 17조 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임에도 사실상 최고경영자(CEO) 인선은 청와대와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산업은행 CEO는 대통령 측근이 맡아왔다. 산업은행이 대주주로서 역할보다 정치권력의 뜻을 수행하는 실행기관 역할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KAI의 ‘최대 고객’인 방위사업청의 장명진 전 청장은 1952년생으로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학 동기동창이다. 공교롭게도 2014년 말 장 전 청장 취임 이후 각종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리온 추가 납품이 성사됐다. 비슷한 시기 지방자치단체 등 민간에서는 수리온을 꺼리는 곳이 많았다. CEO의 도덕적 해이도 닮았다. 대우조선에서 납품·연임 로비 등이 드러났듯 KAI도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사실로 확인된다면 KAI 역시 비리와 권력이 야합한 결과물이 되는 셈이다. 수출입은행(수은)이 애꿎은 멍에를 지게 된 점도 비슷하다. 수은이 대우조선에 제공한 선수금보증보험(RG)만 10조 원에 달한다. 대우조선에 가장 많은 여신을 제공한 금융기관이다. 이 때문에 수은의 자기자본비율은 국내은행 최저인 10% 초반까지 떨어졌다. 국책은행이 아니었다면 존립이 위태로울 뻔했다. 산업은행은 추락한 수은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유가증권을 현물출자했다. KAI 주식이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조 1000억 원 규모다. 이로써 수은은 KAI의 최대주주가 됐다. 비리 의혹이 불거져 향후 최대주주로서의 책임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자본 확충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한편 산은은 대우조선 경영감시 책임을 민관합동기구인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에 넘기면서 부담을 다소 덜었다. 산은은 KAI 대주주 역할도 수은에 넘겨 앞으로 위험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가 됐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