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의문도 적지 않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양의 문건을 박근혜 정부 청와대 사람들은 왜 정리하거나 폐기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문건들을 공개해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 역시 확산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은 문건 공개가 공무상 비밀누설 및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며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는 문건 파동이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 보수 진영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회복시킬 기회를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 꼬리를 물고 나오는 문건
박수현 대변인은 7월 20일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앞서 박 대변인은 14일 “박근혜 전 정부 문건이 민정수석실에서 300여 건이 나왔다”며 처음으로 브리핑을 한 이래 17일 “정무수석실에서 1361건이 또 나왔다“고 밝혔다. 20일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책조정수석실에서 나온 문건 504건의 발견 사실을 알린 뒤 대체적 내용을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박 대변인은 “국가안보실에서도 문건이 다량 발견됐다”고도 했다.
문건에 대한 청와대 입장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위법적 지시가 담긴 내용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와도 관계가 깊은 부분이다. 20일 브리핑이 있었던 박근혜 정부 정책조정수석실 문건엔 보수이념 확산을 주도하기 위해 보수단체에 대한 재정지원을 검토하고, 보수논객 육성 프로그램을 활성화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또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청와대 개입을 암시하는 문건과 카카오톡의 좌편향된 검색 기능을 개선하라는 주문 등이 포함됐다.
특히 관련 문건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승계를 위한 핵심 장치라는 의혹을 받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는 결코 유리할 수 없는 문건이다.
청와대는 문건 공개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발견된 것들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아니라 일반기록물이라 판단했고, 그 내용을 보면 위법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항의 개요 공개를 계속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며 이는 분명히 적법한 행위라고 밝혔다.
# 어떻게 이런 일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지난해 9월 문서 파쇄기를 26대나 추가 구입했을 정도로 보안 유지에 각별히 주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이끌던 민정수석실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태 이후 일반종이보다 10배나 비싼 특수종이까지 쓰면서 단 한 조각의 종이라도 외부 반출이 시도되면 바로 검색대에서 경보가 울리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모두가 의아해한다. 이렇게 많은 문건이 무더기로 청와대에 방치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급하게 청와대에 들어와서 일하다가 직원들 각자 쓸 책상만 정리했고 나중에 인력이 보충되고 사무실을 정리하다 보니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왜 이 많은 서류를 두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우선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된 문서에 대해 미처 챙기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장 많다. 주요 문건은 파쇄 혹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지만, 메모 형식의 문건은 탄핵 혼란기에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민정수석실 발견 문건 중) 2015년 5월 이후 작성된 것은 없었던 점으로 미뤄 그 이후에는 해당 캐비닛을 사용하거나 관리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라며 “이후엔 쓰지 않는 캐비닛이 돼서 사무실 뒤쪽으로 밀려나고 관심 대상에서 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자유한국당에 있는 청와대 근무 경험자들도 “손이 잘 가지 않는 캐비닛을 우연히 발견하고 열었다가 이전 정부 때 문서를 발견한 적이 있다. 청와대 사무실이 생각보다 넓어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런 곳에 이전 정부 서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음모론’도 나온다. 아무리 탄핵 정국 속에서 박근혜 정부가 황망하게 떠났더라도 직업 공무원들이 많이 근무하는 청와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으며 결국 누군가가 서류를 의도적으로 현 정부에 ‘헌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건이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이 분석은 적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뒤를 따른다.
# 설상가상 박근혜 전 대통령
청와대는 문건의 사본을 특검에 넘기고 있다. 특검 공소유지에 각종 증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검찰도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문건을 특검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17일 “특수1부에 배당해 작성·수집 경위를 확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수1부는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부서다. 청와대가 14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시기 생산된 문서라고 했던 만큼 우 전 수석에 대한 추가 수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서는 초대형 악재다. 지금 나오고 있는 문건의 제목들만 봐도 청와대가 과도한 권한 행사를 했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 업무 습관이 이러한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8조를 보면 ‘대통령기록물이 전자적으로 생산·관리되도록 하여야 하며 전자적 형태로 생산되지 아니한 기록물에 대하여도 전자적으로 관리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서면 보고를 받는 등 종이 문서에 많이 의존했다는 것이 청와대 근무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이러다보니 문서 생산이 많아졌고 관리되지 못하는 문서도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청와대 문건도 관리 못하는 능력으로 무슨 국정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 최순실의 농간도 우연은 아니다. 사방천지 문건 방치하고 나간 그 비서들도 그 대통령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강력 반발
자유한국당은 19일 청와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문건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공무상 비밀누설 및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며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은 관련 브리핑을 진행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과 성명 불상의 청와대 직원들이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의 ‘문건 찾기’가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정농단 의혹 관련 재판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자료에 비밀표기를 해놓지 않았다고 해서 공개하고 사본을 특검에 넘겼는데, 구분이 안 됐다면 당연히 전임 청와대 관계자에게 문의하거나 대통령 기록관리 전문위원회에 사전 협의를 해야 했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생중계 요청까지 하면서 자료를 공개한 것은 여론몰이식 공세를 통해 재판에 개입하려는 청와대의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대통령 기록물까지 넘겨주면서 노골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는 유례는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박찬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기록물이) 일부 유출됐거나 방치됐으면 즉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청와대가 자체 심사를 거쳐 (내용을) 발표하고 기록을 이관했는데 이는 대통령기록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