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당대표 초청 정상외교 성과설명회를 하기에 앞서 참석한 여야 4당 대표들과 함께 환담하고 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문 대통령,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사진=청와대
“현 상황에선 여당이 압승하지 않겠느냐”(자유한국당 관계자) vs “저쪽(보수진영)이 가만히 있겠느냐.”(더불어민주당 보좌관) 양측의 입장은 상반됐다.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확증편향은커녕,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지방선거 정계개편은 당보다는 ‘진영’, 진영보다는 ‘후보’ 중심으로 새판이 짜일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범 진보진영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호남파 통합 여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선택 ▲보수 야당인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이니셔티브(주도권) 다툼 ▲고립된 제3지대의 생존 여부 등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호남파의 통합은 안 전 대표의 고립과 직결한 문제다. 내년 지방선거 직전 호남 원심력이 폭발한다면, 정계개편 쓰나미는 여의도 정국을 덮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제3지대에 깃발을 꽂은 안 전 대표가 ‘허허벌판 혈혈단신’으로 마지막 장수로 나설지, 또 한 번의 빅이벤트를 통해 생존능력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앞서 안 전 대표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뒤 2012년 대선 도전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하고 2014년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호남파·독자파 간 전초전의 물꼬는 트였다. 국민의당 대선 제보 조작 게이트인 이른바 ‘이유미 사태’ 때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연일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를 압박,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해석은 여러 갈래로 갈리지만, 안 전 대표와 함께 최대 주주인 ‘박지원 죽이기’를 통해 호남 원심력을 자극하려는 노림수도 깔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추 대표와 국민의당 호남파가 손잡는 순간, 호남 정계개편은 물론 친문(친문재인)계 중심의 당내 권력구도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전망은 엇갈린다. 국민의당 호남 한 의원은 “지금 지역 정서는 결단해 달라는 것”이라며 양측의 결합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같은 당 호남의 다른 의원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된 민주당의 단독 체제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정서가 깊게 퍼져 있다”며 독자노선을 고수했다. 민주당 내부 정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국민의당과의 통합 여부를 물을 때마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다만 “오는 사람을 어떻게 막겠느냐”는 기류도 적지 않다.
이 지점이 포인트다. 시나리오 핵심은 국민의당 호남파 의원별 ‘백기투항’이다. 민주당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꾀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75∼85% 수준이다. 민주당 지지도 역시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권교체 시기에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를 능가하는 50%대다. 친문 지지자들은 국민의당 호남파를 사실상 ‘적폐세력’과 동급으로 규정한다. ‘이유미 사태’로 호남 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떠돌자, 친문 지지자들은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 “절대 합쳐선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당에서도 “예전 비문(비문재인)계가 당을 흔들었던 꼴이 나는 게 아니냐”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민주당이 호남 복원 차원에서 의원 일부를 받을 경우 지지층 이탈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민주당이 개별적으로 복당을 타진하는 국민의당 호남파 의원들을 거부할 명분도 실익도 마땅치 않다. 현재 여의도 정가에는 국민의당 일부 호남 의원 등 탈당이 유력한 의원들의 실명이 떠도는 상황이다. 올해 연말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 의원들의 탈당을 명분 삼아 이들이 대거 둥지를 새로 틀 가능성은 열려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국민의당과 합치거나 연대할 이유가 없다. 양당의 통합 시나리오는 가능성 낮은 얘기”라면서도 “의원 개개인들의 탈당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점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당 내부권력 구도다. 친문계가 최대 주주인 민주당에선 복당한 호남파 의원들이 권력 구도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친문계와 추 대표의 아슬아슬한 알력 다툼은 물론, 경우에 따라 비문계 의원들이 세 규합의 단초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국민의당에 소수 안철수계와 함께 남은 안 전 대표는 독자 노선 및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재기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국민의당 안철수계+바른정당’ 간 통합이다. 바른정당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롯해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잠재적 대권 잠룡들이 즐비하다. 안 전 대표가 이들과 연대를 꾀할 경우 ‘합리적 보수+성찰적 진보’ 모델이 정계개편의 변수로 태동할 수도 있다. 중도 노선 강화는 철 지난 카드지만, 안 전 대표와 ‘오세훈·남경필·원희룡’의 만남은 한 번도 검증받지 않은 카드다. 이 지점 역시 핵심은 ‘인물’이다.
변수는 검찰 수사(이유미 사태) 및 보수 적통 경쟁(한국당과 바른정당)이다. 국민의당 윗선에 칼날을 겨누는 검찰이 안철수·박지원 전 대표 등의 연루 의혹을 캐낸다면, 안 전 대표의 독자노선과 국민의당 독자파와 바른정당 간 통합은 물 건너간다. 이 경우 보수 야당은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권에서 민심 주도권 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순히 영남 발 정계개편 등 수적 경쟁(한국당 107석 vs 바른정당 20석)이 아닌 지지율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아닌 민심에 의한 ‘보수대연합’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주목할 부분은 영남권과 수도권의 ‘이원화’다. 보수 야당이 적통 경쟁을 벌이는 영남권과는 달리, 수도권에서는 보수 후보 연대를 통한 단일화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전 평론가는 “영남권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적통 경쟁을 벌이겠지만, 수도권에서는 격전지는 경쟁하고 열세지역은 단일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코드로 보수진영의 정계개편을 본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보수 야당 간의 통합은 없다”며 “구조적으로 어려울뿐더러, 한국당의 혁신 역량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도로 한국당’을 택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 대표는 한국당을 향해 “침몰하는 난파선이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바른정당은 지방선거 전 흡수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제3지대 출현 여부다. 총선과는 달리 지방선거에서는 제3지대가 판을 흔들 가능성은 적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타고 창당한 국민참여당이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틈새를 파고들었지만, 이는 범 야권 단일화가 전제된 제3지대였다. 당 대주주인 유시민 전 의원은 경기지사 선거에서 낙선했다. 이듬해 4·27 경남 김해을 재보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이봉수 당시 국민참여당 후보마저 패하면서 국민참여당은 소멸의 길을 걸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직전 제3의 길을 걸었던 안철수 전 대표는 민주당의 김한길 호와 손을 잡았다. 지방선거에서는 그만큼 인물 바람만으로 돌풍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제3지대 전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민주당 vs 반 민주당’ 전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제3지대는 맞서 싸울 수 있을 때나 나온다”며 “경쟁이 안 되는 상태에서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