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가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은숙 기자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와 검찰의 ‘악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해 특검을 실시했고, DJ 정부 때 문화관광부 장관과 정상회담 대북 특사를 지낸 박 전 대표는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듬해엔 SK그룹과 금호그룹으로부터 각각 7000만 원과 3000만 원 등 총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박 전 대표는 2006년 5월 25일 파기환송심을 거쳐 현대 비자금 150억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SK·금호그룹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는 대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 수사를 받던 박 전 대표는 건강 악화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지병인 녹내장이 악화돼 한때 실명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사정이 감안돼 2006년 11월 3일 치료 차 3개월간의 형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고, 2007년 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박 전 대표는 ‘사면소감’이란 성명을 통해 “대북송금 특검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었고 특검수사는 조작이었다”고 항변했다.
MB 정부 들어 박 전 대표는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수사를 받았다. 제18대 총선 직전인 2008년 3월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선거 자금 명목의 2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0년 6월엔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로부터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받았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2016년 6월 24일 파기환송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객관적인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오 전 대표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다. 증거와 당시 정황 등에 비춰 진술의 의심이 충분히 해소될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최종 무죄 판결 선고 직후 “이명박 정부 동안 검찰이 민주당 원내대표이자 야당 국회의원인 저를 제거하려고 해 6번이나 고초를 겪었다. 검찰과의 11년 악연을 오늘부로 끊고 싶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의 희망과 달리 검찰과의 악연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박 전 대표는 2014년 6월 “‘만만회’라는 비선실세가 국정을 움직이고 있다. 만만회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박지만 씨와 정윤회 씨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들었다”고 폭로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지금까지 재판 중이다.
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박지만 EG 회장은 최근 처벌불원서(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기재한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고소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표 공소장은 일부 바뀔 전망이다.
박 전 대표는 5월 18일 자신의 SNS에 “만만회는 2014년 6월에 제기했기에 만약 검찰이 저를 조사할 것이 아니라 만만회를 조사했다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박 전 대표와 검찰은 또 다시 맞붙을 전망이다. 검찰은 ‘문준용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박 전 대표를 상대로 서면조사를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박 전 대표는 제보 공개 사흘 전이었던 5월 1일 이 전 최고위원으로부터 조작된 카카오톡 캡처 내용을 전달받고 약 36초 동안 통화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전화기를 보좌진이 갖고 있어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으며 전화 통화에 대해선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해명했다.
검찰과의 질긴 인연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박 전 대표는 “역대 정권에서 저를 잡으려고 했지만 제가 지은 죄가 없기 때문에 사법부에 의해 무죄 판결났다. 제가 좀 싫은가보다. 자꾸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바른 말을 하니까 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이번만큼(제보 조작 사건)은 경우가 좀 다른 것 같다. 저와 무관한 사건이지만 우리 국민의당 문제다. 당 대표로서 제가 몰랐다고 해서 국민들로부터 용서 받는 것은 아니다. 국민 상식은 ‘당 대표가 지시까지는 아니지만 보고는 받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국민의당에서 제보 조작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당 대표이자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드린다. 오히려 검찰에서 사실이 밝혀지면 좋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 전 대표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또 문재인 정권까지 검찰과 악연을 갖는 것은 좋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제 소신껏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가 다른 정치인에 비해 넓고 깊기 때문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거기엔 불법적인 요소도 또 불법으로 오해 받는 행동도 있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했고 본인의 정치력으로 벗어나기도 했다. ‘박지원식 정치 교과서’를 만든 셈”이라고 평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