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는 동네로 통하는 종로구 익선동.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며 일부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은 무분별한 개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합뉴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심 속 낙후지역이었던 익선동은 지난 2014년 매장기획·인테리어·운영 등을 하는 ‘익선다다’ 팀이 들어오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됐다. 익선다다는 갤러리 겸 카페 ‘익동다방’을 시작으로 레스토랑 ‘열두달’, ‘경양식 1920’ 등 한옥의 개성을 살린 공간을 운영하며 익선동을 인기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현재 익선동의 독특한 가게들 가운데 익선다다가 운영하거나 이들의 컨설팅을 받아 운영되는 곳은 10여 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한옥을 개조한 한옥 라운지 바까지 생겨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일부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은 무분별한 개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9일 익선동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송 아무개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장문의 사과문을 올렸다. 이 글은 작성되자마자 수많은 리트윗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익선다다를 비난하는 내용의 댓글도 잇따랐다. 송 씨는 사과문 첫 문단에서 “익선다다의 공동 사장 중 한 명인 박한아 사장의 거듭된 게재 요청에 의한 것”이라며 본인이 익선다다에 저지른 무례와 그 까닭을 밝히고 사과하는 글이라고 설명했다.
송 씨의 공방은 익선다다가 지난 4월 문을 연 한옥 라운지 바 ‘별천지’가 위치해 있다. 송 씨는 지난해부터 익선다다가 별천지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한다는 내용의 트위터 글을 올렸다. 특히 3월에는 천장에서 작은 돌과 먼지가 떨어지는 영상을 올리며 “사무실에 있는 모두가 미쳐간다. 땅을 저렇게까지 부숴 댈 수도 있는 건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을 지킨답시고 민폐는 다 떨면서 껍데기까지 파괴해버리고 브랜드 표딱지 하나 붙인다”고 토로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송 씨를 비롯한 인근 주민들이 상당한 피해를 봤다는 얘기도 있다. 송 씨는 “공사 시작할 때 주민 동의나 양해를 구하는 것도 전혀 없었다”며 “여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방음시설도 제대로 안 된 쪽방촌이다. 디스코텍이 옆집에 생긴 게 아니라 옆방에 생긴 거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별천지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건물들 사이에 벽돌 하나만 쌓여 있으니 벽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했다. (공사 내내) 여기저기 무너질 판이었다”고 말했다. 별천지가 완공된 후에도 송 씨는 소음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불법증축 논란도 일었다. 송 씨와 인근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별천지는 한옥건물 2층을 불법으로 증축하는 공사를 진행해 인근 주민들이 소음·공해 등 피해를 겪었다. 공방 건물 주인은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가 날로 심해지자 데리고 있던 손녀를 집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서울 종로구청에 따르면 현재 익선동은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있는 상태로 신축이나 증축은 불가능하다. 익선다다 측도 이 같은 불법 증축 논란에 대해선 잘못을 시인했다. 현재 별천지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 신고로 서울시와 종로구청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아 현재 2층 구조물을 철거한 상태다.
익선다다 측은 송 씨의 무분별한 거짓 정보로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한아 익선다다 대표는 “송 씨가 트위터에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우리가 공사 인부들에 물도 안 줬느니 집주인에 돈을 주고 원세입자를 내쫓게 했다느니 허위 사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사과문은 송 씨에게 오해를 풀어준 뒤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정정글을 올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소음 문제에 대해서도 익선다다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는 “(별천지) 오픈파티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시끄럽게 한 점에 대해선 인정한다”며 “주민들에게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그 이후론 스피커도 바꾸고 소음측정기도 사서 하루 3번 체크해 대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씨도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해놓고 올린 글이 오히려 우리를 비꼬는 글이 됐다”고 토로했다. 현재 익선다다 측은 송 씨에 대해 모욕 및 명예훼손죄로 소장을 접수한 상태다.
이처럼 익선동은 현재 크고 작은 내부 갈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개발로 인한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의 갈등부터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 문제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사진은 종로세무서 8층에서 내려다본 익선동 한옥마을 전경.
2000년대 초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익선동에 익선다다를 비롯한 법인 명의의 가게들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2014년 2개에 불과했던 상가 수가 3년 사이 50여 개로 급증했다. 상권이 형성되고 관광객이 몰리자 땅주인들은 재개발의 대안으로 가게 임대를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익선동을 지키던 많은 주민들이 떠났다. 익선동 전출자 현황을 보면 2014년 112명, 2015년 166명, 2016년 99명 등 모두 3년 사이 377명이 이곳을 떠났다. 대부분 원주민들이었다. 이곳에 쪽방 월세를 사는 노인층 대부분은 20만 원선인 월세를 국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으로 충당한다. 익선동 골목에서 만난 한 주민은 “무허가 건물에서 살던 사람들은 물론, 멀쩡히 공장일 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다 떠나고 없다. (익선동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송 씨도 트위터에 이 같은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송 씨는 “여기도 익선다다를 비롯한 주식회사들이 가게 차리고 영업 중이다. 꼭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들어와야 젠트리피케이션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오히려 그들이 미래의 피해자라며 서울시가 비용을 들여 자기들을 보호해달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익선동은 아직 재개발구역에서 해제되지 않은 채 서울시에서 새로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 중이어서 본격적 신축·증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면 임대료가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세입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익선다다는 앞으로 있을 거대 자본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직접 한옥을 매입하기로 결정, 펀드 조성에 나섰다. 그 결과 부티크 호텔 ‘낙원장’과 한옥 라운지 바 ‘별천지’가 탄생한 것이다.
수년간 서울 내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익선동의 경우 서촌, 경리단길에서 몇 년 전 일어났던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어쩌다 보니 국내에선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진입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기준이 돼 버렸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며 “이 경우 ‘익선다다’는 잠재적 피해자면서 동시에 ‘개발업체’ 역할을 수행하는 게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이 밀려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익선동의 경우 대규모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보존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