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정의 목표는 박근혜 정부를 넘어 지난 9년간 보수 정권 방산 분야에서 이뤄진 비리들을 파헤치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조성된 천문학적 비자금도 그 대상이다. 사실상 지난 정권을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군대 내 일부 라인과 특정 무기업체의 결탁, 그리고 여기에 얽히고설킨 로비스트들과 정치권 실세들 간 커넥션이 핵심 타깃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군 지휘부를 격려하기 위한 오찬에 앞서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7월 14일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KAI는 한국형 헬기 ‘수리온’을 개발한 국내 최대 방산업체다. 검찰은 KAI의 연구비 횡령 및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내사를 벌여왔다. 동시에 검찰은 방위사업청도 겨누고 나섰다. 감사원은 6월 21일 수리온 개발 사업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장명진 전 방위사업청장 등에 대해 수사를 요청한 바 있다. 방산비리 수사의 출발선상에 수리온을 세운 것이다.
공교롭게도 KAI의 하성용 전 사장과 방위사업청 장 전 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관이 깊은 인물이다. 하 전 사장의 경우 부인이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 전 청장은 박 전 대통령 대학 동기(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70학번)다. 임명 때부터 특혜 논란이 있었던 하 전 사장과 장 전 청장은 검찰 수사 착수 후 직에서 물러났다. 사정당국 안팎에서 수리온 수사의 칼끝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이미 검찰은 KAI가 조성한 비자금 일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 핵심 인사에게로 전달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핵심부는 지난 정권이 수리온을 둘러싼 비리들을 포착하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감사원은 2015년 수리온에 대해 감사를 진행했고, 이 내용을 통보받은 검찰은 내사를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검찰 수사는 중단됐다. 당시 검찰 내부에선 “윗선(청와대)이 수사를 막았다”는 게 정설처럼 퍼졌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18일 “과거 KAI의 자금비리를 포착하고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영향으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하 전 사장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 하 전 사장은 ‘숨어있는 실세’로 통했다. 하 전 사장이 박 전 대통령 최측근 라인인 참모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은 물론 비선 등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정권 출범 초기 KAI 임원이던 하 전 대표와 관련된 비위 제보가 쏟아져 민정수석실과 경찰이 내사에 나섰지만 흐지부지됐고, 하 전 대표는 KAI 대표로 취임했다. 2015년 감사원과 검찰이 하 전 대표를 겨눴다가 무산된 것까지 치면 거의 대부분 사정기관이 나서고도 그를 잡지 못한 셈이다.
한 친문 의원은 “적어도 수리온은 진작 환부를 도려냈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금까지 미뤄진 것이다. 누가 수리온 비리를 은폐하려했는지 밝혀내는 게 수사의 핵심이고,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라면서 “박 전 대통령 참모 3인방 중 한 명, 그리고 일부 친박 실세들이 하 전 사장을 비호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그 대가로 돈이 건네졌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 역시 “검찰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청와대 지시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2015년 왜 수사가 멈췄는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여권 및 사정당국 핵심 관계자 등에 따르면 수리온 사건은 방산비리 수사의 신호탄 성격을 띤다. 로비스트와 손잡은 정권 실세들이 무기 입찰에 개입한 대가로 부적절한 돈을 받는, 방산업계의 뿌리 깊은 관행을 파헤치기 위한 전초전이라는 얘기다. 친문 진영에선 문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이뤄진 대형 무기 계약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이 강조됐었다. 한 친문 의원은 “캠프 때 보수 정권과 무기업체 간 커넥션과 관련된 구체적인 제보를 확보했었다. 방산비리 수사 초점도 그 부분에 맞춰져 있다”고 귀띔했다.
무기 계약은 사업 특성상 진입 장벽이 높다. 소수 업체들이 좌지우지하고, 로비스트 역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하다. 한 전직 무기 로비스트는 “무기 사업은 ‘그들만의 리그’다. 진입하기가 어렵다. 대신 한번 인맥을 형성하면 상상하기 힘든 부가 보장된다. 사업 한 건을 성사시켜 받는 커미션이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이다. 정권 실세들이 무기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정치권이 먼저 로비스트를 찾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그 반대가 대부분이다. (로비스트들이) 실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줄을 대 ‘라인’을 만들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로비스트들 활동은 불법이지만 실제로는 이들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업계에서 소위 ‘잘나가는’ 로비스트들은 극소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그 면면이 바뀐다. 권력 실세들을 등에 업은 새로운 로비스트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앞서의 전직 로비스트는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권과 가까운 로비스트들을 고용한다. 그래서 진입 장벽이 높긴 하지만 정권 초 ‘뉴페이스’들이 등장한다. 정권 실세들과 가깝다고 소문이 났던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지난 9년간 정권에서 한 다국적 무기업체는 대형 계약들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이 업체를 위해 거물급 로비스트 2~3명이 일한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던 2007년경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당시 한 친이계 실세가 배후로 거론됐다. MB 정부는 2020년까지 국방산업 및 무기 부문 세계 7대 수출국이 된다는 목표 아래 4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예산을 방위력 개선사업에 책정했고, 정권 말인 2012년에만 14조 원을 해외 무기 도입에 쏟아 부었다. 그 최대 수혜를 입은 곳이 바로 이 업체였다.
박근혜 정부 초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업체와 여기에 고용된 앞서의 로비스트들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2014년경부터 로비스트들 간에 치열한 생존게임이 벌어졌다고 한다. 친박 및 군 실세와 가깝다고 알려진 로비스트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다. 권력 동향에 민감한 방산업체들은 바로 이 ‘라인’으로 갈아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손이 바뀌었다’라는 표현을 썼다. 무기 계약을 따내기 위한 ‘루트’가 새롭게 형성됐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2014년 11월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을 설치하며 대대적인 방산비리 수사에 나서자 업계에선 “특정 로비스트들을 제거하고 자기 쪽 사람을 심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박근혜 정부 때의 방산비리 수사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됐다. 정치적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한 로비스트는 “박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사가 MB 정부에서 잘나갔던 업체의 임원과 친분이 있었다. 그 최측근 인사가 무명의 로비스트를 이 업체에 소개해줬다고 한다. 이후 그 로비스트는 업계에서 일약 ‘슈퍼스타’가 됐다. 이 업체 역시 MB 정부에 이어 또 굵직굵직한 계약을 따냈다. 또 다른 친박 핵심 정치인 친인척과 가깝다는 한 로비스트도 유명세를 탔다. 결국 방산업계는 친박계 로비스트들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군 최고위급 인사들과의 친분도 과시했다”라고 했다.
한 유력 방산업체 임원은 이 로비스트들 정체에 대해 “정권 실세들과 가깝다는 정도만 알지 구체적인 배경은 모른다. 우리도 나름대로 파악을 해보지 않았겠느냐. 박 전 대통령과 가장 자주 만난다는 인사가 뒤에 있더라. 한번은 식사 자리에 군 고위급 인사를 데리고 나왔다. 이 분야는 인맥 싸움 아니냐. 사실상 우리가 (로비스트로) 고용했다.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떤 도움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세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무기 입찰과 관련된 청탁이었다. 물론 대가를 챙겨주긴 했다”고 답했다.
여권 핵심부는 친박 실세들이 무기 계약에 도움을 주고 막대한 돈을 챙겼을 것이란 의심을 하고 있다. 친박-군-방산업체의 이른바 ‘삼각 커넥션’ 수사를 치밀하게 준비했고, 또 첫 적폐 청산 대상으로 삼은 목적이다. 물론 여기엔 친박 실세와 친분이 두터운 일부 로비스트들이 끼어 있다. 현 정권 사정당국의 고위 인사는 “무기 계약 과정에서 조성된 천문학적인 비자금이 친박계 실세들에게로 흘러들어갔는지를 규명하는 수사가 이뤄질 것이다. 그 액수나 수사 대상들을 감안하면 ‘역대급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