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용 전 KAI 대표의 비리 의혹은 박근혜 정부 때도 논란이 됐지만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좌)박근혜 전 대통령 (우)하성용 전 KAI 대표 /사진= 2016.3.17 ⓒ연합뉴스
2013년 4월경 청와대 민정수석실엔 깜짝 놀랄만한 진정서 한 통이 접수됐다. 하 전 사장이 KAI 경영관리본부장 시절 환전장부를 조작하고 노사활동비를 빼돌리는 방법으로 횡령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민정수석실에 진정서를 넣은 장본인은 KAI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전직 직원 A 씨였다.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진정서에서 A 씨는 “KAI를 아끼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으로서 하성용 같은 사람이 결코 KAI 사장으로 와서는 안 된다. 하 전 부사장은 협력업체와 하청업체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라고 주장했다.
하 전 사장의 갖가지 비위에 관한 정황도 곳곳에 담겨 있다. A 씨는 “2007년 3월~2008년 9월 하 전 부사장이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자금팀을 통해 환전 장부를 조작해 10억 5000만 원을 회사에 등록하지 않은 통장에 입금하고 인출하는 수법으로 회사자금을 횡령했다”며 통장입출금 내역까지 첨부했다.
하 전 사장이 항공기 부품을 수출하면서 실제로 적용된 달러당 1150원이 아닌 1100원으로 허위 전표를 기재하고 차액인 50원을 미등록 계좌에 입금한 뒤 빼가는 방식으로 자금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A 씨는 또 “2011년, 하 전 부사장이 연간 4억 원씩 합계 16억 원을 사장 결재 없이 노사활동비 명목으로 조성해서 임원들과 나눠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하 전 사장이 KAI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민정수석실은 A 씨의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민정팀 소속 특별감찰반 차원에서 내사에 돌입했다. 진정서가 접수된 직후 민정수석실 특감반의 감찰관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A 씨를 만났다. A 씨는 “제보 이후 민정수석실에서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인근 중식당에서 특감반 소속 감찰관들을 만났다. 김 아무개 감찰관이 비리자료의 입수 경위와 환전계산서에 대해 물어서 답변을 했다. 김 감찰관이 ‘철저히 조사 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라고 주장했다.
1차 만남 이후 A 씨와 감찰관은 경남 지역 인근에서 또 한 차례 만난 것으로 적시돼 있다. A 씨는 “감찰관들이 ‘비리 내용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 사장 자격이 없다. 참고할 내용이 있으면 협조해달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정수석실 측은 A 씨에게 수차례 전화해 하 전 사장과 관련된 방산 비리 척결 의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 뒤 박근혜 정부는 하 전 사장에게 한국한공우주산업(KAI)을 맡겼다. 하 전 사장의 횡령·비자금 조성 관련 의혹을 묵인하고 임명을 강행한 셈이다. 당시 하 전 사장은 친박계 유력 정치인과 친분이 두텁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A 씨는 “민정수석실 조사 과정에서 누군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 전 부사장과 관련된 비호세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배후가 권력 중심에 있는 자라는 사실까지 거론됐다. 그런데도 민정수석실은 어떠한 해명도 없이 묻어버렸다”라고 밝혔다.
하성용 전 KAI 사장이 횡령,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휘말렸다. ⓒ연합뉴스
하 전 사장이 임명된 뒤에도 사정기관의 내사는 계속됐다. 2014년경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하 전 사장 관련 비리 수사에 총동원됐지만 ‘용두사미’ 수사로 마무리됐다.
경찰청이 먼저 움직였다. 경찰청은 2014년 9월 하 전 사장 관련 비리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한 달 뒤인 10월경 경찰청 수사국 소속 육 아무개 팀장은 서울과 경남 진주에서 A 씨를 두 차례 만났다고 한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A 씨의 경찰 진술서엔 “하 전 사장이 2006년경부터 2007년경 당시 자금팀에서 매월 500만 원 규모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도록 하고, 이를 다시 재판매하여 현금을 확보하는 수법으로 현금을 횡령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 전 사장이 상품권을 재판매한 현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또 다른 의혹이었다.
사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실에 제보된 진정서 사본.
감사원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1월경 감사원이 방산비리특별감사단을 만들고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 관련 감사에 착수했을 때도 A 씨는 하 전 사장 관련 비리를 제보했다. A 씨 증언에 따르면 감사원 특감단 관계자는 “KAI 비리 관련 감사를 진행 중이다. 협조해달라”며 2015년 1월 21일 A 씨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A 씨는 감사원 특감단 관계자를 만나 “하 전 사장이 환전 차익 등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독립된 사정기관인 감사원마저도 외압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A 씨와 특감단 관계자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와 통화내용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가 감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정황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감사원 특감단 관계자는 A 씨에게 수시로 “예상대로 저항이 심하다”, “외압이 심하다”라는 등 고충을 토로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오늘 합수부가 자체적으로 발표를 못했다”, “또 다시 합수부 발표가 보류됐다”, “KAI 측에서 로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2015년 10월 12일 KAI가 원가계산서를 조작해 547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발표했다. 인사팀 차장 손 아무개 씨가 처남 명의로 대구에 용역업체를 설립한 뒤 KAI로부터 247억 원어치를 수주해 이 중 118억 원을 빼돌렸다는 감사 결과도 덧붙였다. 하지만 하 전 사장 관련 비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A 씨는 “검찰과 경찰의 윗선이 수개월간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실에 접수된 진정서 및 경찰 진술서 골자는 A 씨는 하성용 전 KAI 대표의 비리를 경찰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보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하 전 사장은 외화 환전시 환전금액 중 10억 원 상당을 회사에 등록되지 않은 통장에 입금하고, 이를 다시 인출하는 수법으로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 또, 환율 1 달러당 1200원에 항공기 부품을 수출했음에도 전표에는 1100원으로 허위 작성해 자금을 횡령했다. 회사의 환전금액 전체를 회사의 계좌로 입금시켜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하 전 사장은 은행의 환전영수증을 폐기했고 실제 환율보다 낮은 환율로 환전한 것처럼 조작해 환전금액 일부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하 전 사장은 KAI 노사활동비 명목으로 총 16억 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관련자들과 나눠 챙겼지만, 당시 김홍경 사장은 이를 알면서도 파장을 염려해 묵인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매월 500만 원 규모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고, 이를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해 횡령했다는 내용도 진술서에 담겨 있다. A 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도 제보를 위해 진정서를 작성한 바 있는데, 하 전 사장이 ‘자금 환전시 10억 원을 횡령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진정서에 통장내역서를 첨부하기도 했다. 통장 내역에 입금된 약 1억 원은 6차례에 걸쳐 전액 인출됐고 이렇게 이용된 통장은 인출 직후 해지됐다. A 씨는 진정서를 통해 “당시 (KAI 재무팀에) 가불(가지급금)이 많았고, 이 통장을 통해 자금을 축적하고 가불정리를 위해 회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
조직적 은폐 정황 담긴 제보자-사정기관 관계자 녹취록 살펴보니 A 씨가 공개한 감사원 관계자와의 녹취록에 따르면 감사원과 검찰은 수사 도중 외압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는 A 씨와의 만남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만남을 제의하며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만남 자리에 KAI 현직 부장 등을 불러 함께 자리를 가졌고, 감사 인원 규모가 보강되는 것에 대해서도 A 씨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A 씨가 공개한 전화통화 녹취록과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1월에 조사를 시작했다던 감사원은 2월 문자메시지를 통해 “(KAI의) 저항이 심하다. 검찰에 (조사를) 넘겼고 검찰에서 은밀하게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3·4월, A 씨가 ‘조사가 더딘 것 아니냐’고 묻자 관계자는 “조사가 마무리 중이다. 검찰에 곧 넘길 예정이다.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5월에도 A 씨가 ‘감사원 감사에 협조를 한 KAI 직원들이 곤경에 처했다’고 말하자 관계자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도출해 피해에 대해 상응한 보상을 주도록 하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멀지 않았다”고 안심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계자는 6월 24일 “빠르면 금주 중 (합동수사본부) 조사결과가 발표될 수 있다”면서도 29일에는 “발표하려다 못했다”고 밝혔다. 7월 3일에도 “오늘 또 합수부에서 발표하려다 보류됐다. 이왕 늦어진 것 감사원과 합수부 동시에 발표하면 안 되느냐”라고 약속을 번복했다. A 씨는 “감사원은 감사를 완료했고, 방사청은 KAI 사업 의혹을 처리할 것이고, 검찰은 비리 부정 관련 의혹 수사를 완료했는데, (상부층의 외압인지) 어떤 사유로 인해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관계자는 5월 21일 전화통화에서 “(감사원에) 외압이 심하다. 하지만 감사중단은 있을 수 없다. 우리 팀이 존재하는 한 조사를 끝까지 할 것”이라며 “검찰에서도 (외압 등에) 힘들어 하지만, (수사를 도중에) 말아먹지는 못 할 것이다. 타이밍을 보고 있다. 감사원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또한, 7월 8일 전화통화에서는 “합수부에서 움직이질 않는다”며 “내 손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압에 의해 수사가 중단된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