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 연합뉴스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등이 통합돼 설립된 KAI는 항공기 제조와 개발 등으로 지난해에만 3조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6월까지 산업은행은 KAI 지분 19.02%를 가진 최대주주였지만 보유 주식을 대부분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면서 현재는 수출입은행이 지분 26.41%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국민연금도 KAI 지분 8.04%를 들고 있고, 박근혜 정부 당시 KAI 인수를 시도한 한화테크윈이 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주주 구성에서 보듯 KAI는 전형적으로 오너가 없는 회사다.
지난 20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은 KAI의 원가 조작, 납품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KAI 원년 멤버로 재무팀장, 경영지원본부장 등 회사 핵심 요직을 거친 하 전 사장은 성동조선해양 총괄사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5월 KAI 사장에 임명됐다.
당시 KAI 안팎에선 하 전 사장이 v 재직 시절 수십억 원대 횡령 의혹 등을 받았음에도 사장에 임명된 것은 친박계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말이 나왔다. 하 전 사장은 2012년 8월 2일 박근혜 대선 캠프에 1000만 원을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고,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고위직에 임명된 ㅊ 씨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ㅊ 씨를 만나러 하 전 사장이 청와대에 드나들었고, ㅊ 씨를 통해 정부 최고위직을 소개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 전 사장과 ‘문고리 3인방’의 친분설이 나온 이유다.
정치권에선 하 전 사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6촌 형부라는 설이 파다했다. KAI 내부 관계자는 “하 전 사장 본인이 직접 자신이 대통령(박근혜)의 먼 친척이라는 말을 주변에 떠들고 다녔다”고 전했다. 이 때문인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3년 4월 하 전 사장의 횡령 의혹 등에 대한 내사를 중단했고, 결과적으로 하 전 사장은 KAI 사장에 임명될 수 있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하 전 사장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현재까지 드러난 검찰 수사의 얼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하 전 사장의 인선과 연임 과정에 정치권 로비가 있었는지 규명, 둘째는 개발비를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하청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다. 마지막으로는 KAI와 방위사업청이 추진한 KF-X(한국형 전투기) 사업, 수리온(한국형 기동헬기) 사업 등에서 권력형 비리가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다. 서울중앙지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KAI를 시작으로 방산 비리 전반에 대한 수사를 벌이겠다는 수뇌부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KAI에 대한 2015년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등을 보면 하 전 사장과 경영진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뭉칫돈’을 만들고 이를 유용한 것으로 의심된다. 검찰은 2013~2014년 KAI가 직원 선물용으로 구입한 52억 원의 상품권 중 17억 원의 용처가 불분명한 것에 대해 ‘정치권 로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국내 최대 방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문재인 정부 첫 대형 수사의 타깃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지난 14일 경남 KAI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또 하 전 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손 아무개 KAI 차장의 신병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손 차장은 처남이 대표로 있는 용역회사 A 사의 실소유주로서 KAI로부터 일감을 받아 용역비로만 247억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손 차장은 용역 직원들이 받는 급여를 부풀려 이 중 일부를 자신의 차명 계좌를 통해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다.
KAI와 함께 압수수색을 받은 협력업체 5곳은 하 전 사장 취임 후 일감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업체는 하 전 사장과 함께 일했거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가 대표를 맡고 있다. 2013년 12월 설립된 타아스 대표 조 아무개 씨는 하 전 사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며 생애 대부분을 하 전 사장과 일했다. 2014년 39억 원이었던 타아스 매출은 2016년 92억 원까지 급증했다. 또 이 회사는 2017년 1월 총 사업비 1조 9071억 원에 달하는 ‘수리온 3차 양산’ 납품업체로 지정됐다. 앞서 KAI와 방위사업청은 수리온의 감항인증기준 101개 항목 가운데 29개 항목이 미달한 것을 확인했음에도 2016년 12월 ‘수리온 3차 양산’ 계약을 강행했다.
타아스의 대주주로 알려진 Y 사는 KAI 출신인 위 아무개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2016년 기준 매출액은 493억 원이며, 지난 4월에는 국내에 제3공장을 증설할 정도로 사세가 확장했다. 검찰은 하 전 사장이 기존 협력업체의 일감을 빼앗아 Y 사에 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당초 배관 공급 사업을 하다 2014년부터 KAI에서 일감을 받아 항공 사업을 전개한 협력업체 P 사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P 사 매출의 50% 이상은 KAI 납품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P 사 대표 신 아무개 씨는 부산 기독교 단체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하 전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또 다른 P 사는 KAI로부터 수백억 원대 통합개발센터 공사 등을 몰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언제든 수사를 받을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들 협력업체 가운데 지난 정권 실세가 지분을 가진 회사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초반 2만 5000원대였던 주가가 불과 2년 만에 10만 원대까지 급등한 것을 이유로 정권 실세가 KAI 지분을 인수해 매각 차익을 챙겼다는 말이 무성하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선 2015년을 전후로 KAI 수사가 ‘윗선’ 의지로 무마됐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외압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