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자료 뭉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과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방안 관련 문건을 포함 박근혜 정부 때 ‘민감한 이야기’가 담겼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했던 ‘국정농단’ 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란 예측이 파다하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로 배당됐다. 17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청와대가 발표한 민정수석실 문건 일부를 오늘 중에 특검에게 이관 받은 뒤 특수1부가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수1부는 감사원이 지난 11일 수사를 의뢰한 관세청의 면세점 선정 비리 사건도 수사 중인데 또 다른 ‘대물’을 맡게 됐다.
특수1부는 쾌속순항하고 있다. 특수1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국정농단 사태 특별수사팀에 투입됐다. 정유라 씨 관련 삼성의 특혜 지원 의혹도 담당해 왔다. 이 정도면 특수1부가 검찰의 선봉에 선 셈이다.
윤석열 지검장. 일요신문 DB
주요 사건이 특수1부를 향하는 표면적 이유는 지난해 촉발된 국정농단 사태 수사의 연속성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최근의 이례적 지원이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검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특수1부 이원석 부장검사에 대한 윤석열 지검장의 신임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은’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윤석열 지검장은 지난 2014년 1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 받았다. 좌천성 인사였다. 요직이라는 대검 중수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거친 사람이 지방검찰청 평검사로 발령되는 건 검찰계에서 “집으로 가라”는 신호로 여겨진다. 그의 화려한 이력이 멈춘 건 다름 아닌 강직함 때문이었다.
지난 2013년 4월 18일 윤석열 지검장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됐다.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박근혜 정권의 척추를 흔들었다. 자연스레 정치색 짙은 압박이 이어졌다. 그는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윤석열 지검장은 굽히지 않았다. 그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부당한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폭로하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또 한 번 알렸다.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나와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심했다. 현 검사장 밑에서 수사를 계속 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윤석열 지검장은 동기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할 때 짐을 싸지 않았다. 대전고검 등 지방을 전전하며 재기의 칼날을 갈았다.
윤석열 지검장의 화려한 귀환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수사의 특별검사로 임명된 박영수 특검이 그를 부르면서부터다. 윤 지검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결국 끌어내리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 덕에 문재인 정권의 선택을 받았다.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국정농단 사태는 국가에겐 비극이었지만 윤석열 지검장에겐 재기의 장이었다. 그런 장을 펼쳐준 게 바로 특수1부 이원석 부장검사의 집요함이었다. 이 부장검사의 끈질긴 수사는 전관예우로 자칫 묻힐 수 있었던 국정농단의 민낯을 온 천하에 드러냈다.
국정농단 사태는 2015년 7월 30일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던 범서방파 잔당 및 학동파 계열 조직폭력배가 무더기로 구속되며 뿌리를 살짝 내보였다. 범서방파는 김태촌이 살아 있을 때 이끌었던 조직으로 유명하다. 수사가 진행되던 가운데 정운호 옛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도 도박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원석 부장검사는 이 사건에 주목했다. 정운호 옛 대표에 대한 처벌 수위가 몰상식한 수준이라는 소문이 법조계에 파다했다. 그는 지난 2015년 12월부터 정운호 옛 대표 쪽 브로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이원석 부장검사는 이듬해인 2016년 5월 네이처리퍼블릭 본사까지 압수수색했다. 곧 ‘정운호 게이트’의 실체를 모습을 드러냈다.
이원석 부장검사는 정운호 옛 대표가 작성한 구명 로비스트 명단에서 홍만표 변호사를 건져 올렸다. 홍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 ‘에이스’이자 이 부장검사의 선배였다. 게다가 지난 2000년 대전지검 서산지청 근무 시절 홍만표 변호사는 이원석 부장검사의 선임이었다. 칼 끝을 선배이자 옛 선임에게 겨눈 셈이었다.
전관예우는 없었다. 계속된 수사에 새로운 거물이 걸려 들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었다. 정운호 옛 대표가 자신을 찾아온 변호사에게 “홍만표 변호사가 민정수석을 잡아놨다고 말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 말을 이 부장검사는 물고 늘어졌다. 하나씩 올라왔다.
윤석열 지검장과 이원석 부장검사의 첫 인연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검사 시절 부산지검에서 함께 근무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10년 뒤 대검찰청에서 재회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