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1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학교폭력 은폐 의혹 사건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2월 나온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 학교는 지난해 3월 성추행 사건을 포함 학교폭력 4건을 은폐했다. 4건 가운데 1건은 지난해 5월부터 6개월여에 걸쳐 특정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학급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15건을 합한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작은 학교폭력이라도 24시간 안에 교육청에 보고토록 정하고 있다.
서초구 한 중학교 전경
한 피해학생의 엄마는 지난해 5월부터 지속된 집단 따돌림에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 못 나가는 지경에 이르자 그해 11월 학교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개최를 요청했다. 교육청 감사 결과 등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 일부는 피해 대상을 옮겨가며 ‘3000대 매맞기 계약서’를 작성토록 강요하거나 ‘특정인 따돌림 불참 시 20만 원 벌금’ 등의 방법으로 동급생 여러 명에게 학교폭력을 가했다.
피해학생 엄마는 지난해 5월부터 학교폭력 사실을 일부 파악했다. 여러 차례 담임에게 훈육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임이 서류상 가해학생을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번지자 피해학생 엄마는 학폭위를 열어야겠다고 판단했다. 가해학생은 “내가 20만 원을 요구했다고 담임에게 말했는데 담임은 다른 사람이 그랬다고 쓰라고 했다“는 자필확인서를 피해학생 엄마에게 준 적 있었다.
학교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 관계자와 선발된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폭위를 열고 학교폭력 여부를 심의한 뒤 연루 학생의 처분 수위를 판단한다. 하지만 학교는 지난해 11월 21일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학폭위를 진행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양쪽은 학폭위에 앞서 편파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학폭위원을 제외해 달라고 학교에 요청할 권리가 있다. 이 절차가 생략됐다. 학폭위 관계자는 ”학폭위에 참여한 학부모가 서로 아는 사이여서 별도로 안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피해학생 엄마는 이 학교 학생의 엄마이자 학폭위원인 이 아무개 씨가 학폭위에 참석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앞서 몇 차례 열린 학폭위에서 이 씨가 학교폭력의 원인을 피해학생 쪽으로 돌리는 발언을 자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학폭위에서는 피해자가 제출한 상해진단서를 본 뒤 “악의적이다. 피해학생 엄마가 시킨 것”이라고 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도 했었다고 전해졌다. “우리 아이는 성적이 좋다. 피해학생도 전교 10% 안에 들게 해 봐라. 공부 잘하면 면죄부를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가해학생 학부모와 돈독한 사이로 알려져 가해학생 쪽 입장을 대변할 게 예상됐다. 실제 이 씨는 학폭위에서 ”피해학생이 따돌림당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피해학생의 문제점을 잘 생각해 보라”며 학교폭력의 원인을 피해학생 책임으로 돌렸다. 교육청은 학폭위 때 이 씨의 이런 발언에 대해 “공정성 위배 논란 가능성이 있는 발언인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다. 학폭위는 가해학생들에게 가장 낮은 조치인 ‘서면사과’를 통지했다.
이 씨는 이 학교 학폭위원으로 학교 관계자와 자주 만나며 교내 영향력을 키워 왔다고 알려졌다. 피해학생 엄마에게 자신이 경찰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본 뒤 변호사가 돼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학교에서 시행한 부모직업 진로체험시간 때 학생들을 데리고 대법원에서 진로교육을 인솔한 적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딸의 중학교 입학을 앞둔 지난해 2월 말 이 씨는 지역 파출소장과 동장을 대동해 이 학교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과 식사자리를 가졌다.
철쭉나무가 사라진 학교 입구
이 씨는 전직 경찰인 자신의 남편도 사건에 개입시켰다. 지난 17일 오후 7시쯤 변호사 사칭 등의 혐의로 서울 방배경찰서의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씨는 자신의 남편을 대동했다. 이 씨의 남편은 이 경찰서 청문감사관으로 지난해 은퇴한 전직 경찰 김 아무개 씨다. 이들은 경찰서 지능팀에서 수사 도중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김 씨는 “아내 때문에 간 게 아니다. 다른 사건 때문에 갔다”고 밝혔지만 무슨 사건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말해줄 수 없다”고 일렀다.
이 씨의 정체는 곧 탄로났다. 이 씨는 자신이 운영한다고 말했던 법무법인의 일반직원이었다. <일요신문>이 20일 그 법무법인을 직접 찾자 그곳 관계자는 “이 씨는 변호사가 아니다. 외근이 잦은 우리 법인 직원”이라고 말했다. 경찰 출신도 아니었다.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이 씨가 경찰 출신이란 건 처음 듣는다. 남편이 경찰 출신”이라며 “방배경찰서 소속 경찰을 만날 때면 말을 서슴없이 놓는 등 쉽게 대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 씨의 남편 김 씨는 “아내는 경찰 출신이 아니다. 그 외 입장은 아내가 돌아오면 내놓겠다”고 했지만 연락은 없었다.
교육청은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학교에 “이 씨를 학폭위원 자리에서 내릴 것을 검토하라”고 일렀다. 학교는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일부 개인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라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렸다. 곧 해촉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학교의 부적절한 대응은 더 있었다. 가해학생들의 서면사과조차 형식적으로 처리하려 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지난해 11월부터 학교를 가지 않던 피해학생은 지난해 12월 5일 오전 8시 30분쯤 서면사과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 가해학생들은 교실에 없었다. 이날 일찍 등교했던 가해학생들은 피해학생이 학교에 도착하기 앞서 조퇴를 신청했다. 학교는 이를 허락했다.
가해학생들의 사과문은 교사를 거쳐 피해학생 엄마 손에 쥐어졌다. 생활지도부장은 가해학생들이 없는 교실에서 학교폭력 경위를 설명하고 학생들을 훈육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공개사과를 다시 추진할 것을 학교에 권고했다. 피해학생 엄마는 이를 거부했다. “근본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며 추가 가해학생을 포함한 학폭위를 요구하고 나섰다.
학교는 학교폭력 관련 공문서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학교는 지난해 6월 15일과 11월 28일 학폭위원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정기학교폭력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책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학교는 학폭위원에게 서명을 받은 뒤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서류만 꾸며 교육청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관계자는 “학폭위가 자주 열려 학폭위원끼리 만날 자리가 많았다. 굳이 대책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학폭위 때 보고용 서류를 돌려 대책회의를 갈음했다”고 말했다.
학교의 부적절한 행정과 적절치 못한 훈육은 끊임없는 학교폭력으로 이어졌다. 최근 두 달 새 이 학교에서 학폭위만 3번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에는 학생 7명이 장애학생 1명을 괴롭힌 사건으로 또 다시 학폭위가 개최됐다.
학교 관계자는 “상세한 내용은 경찰조사를 받고 있어서 말해주기 힘들다. 일정 부분 빠뜨린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학부모가 학교 일에 너무 깊이 관여해 정상적인 행정업무 진행이 힘든 처지다. 교육청은 손 놓고 학교폭력 해결을 학교에만 맡겨 뒀다. 우리는 일상 업무도 제대로 처리할 시간이 없는데 학교폭력 보고하느라 진이 빠진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 사건과 관련 교장과 교감, 생활지도부장 등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최근 이 사건 관련 학교 관계자 등의 범법 행위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4월 입건된 이 사건은 지난 3개월간 방치됐다. 이 씨의 남편인 전직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경찰서를 찾는 등으로 서울 방배경찰서는 전관예우와 늑장수사 의혹에 휘말렸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20일 학교폭력예방법 위반과 허위공문서 작성,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서초구의 한 중학교 교장 및 교감, 교사 등 4명을 지난 4월 21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한 변호사를 사칭하고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이 학교 학부모 이 씨도 불구속 입건됐다. 이 외에도 학부모 3명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학교 관계자들은 지난해 발생한 학교폭력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의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 개입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김영란법 이전이라 문제없다? 서울시 교육청 ‘물감사’ 논란 서울시 교육청의 ‘물감사’ 지적도 제기됐다. 교장과 교감, 생활지도부장은 주의를 받았고 담임은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다. 교육청은 담임의 가해학생 조작에 대해 “가해학생이 ‘담임선생님이 가해자를 바꾸라고 했다’는 진술서를 작성했지만 가해학생의 보호자와 학교가 ‘미성년자가 민원인의 승용차 안에 갇혀 협박을 받은 뒤 작성한 진술서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의혹이 있지만 추가적인 증거가 없어 진위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담임은 혐의를 부인했다. 담임은 “가해자를 바꿔서 진술서를 쓰라고 한 적이 전혀 없다. 교육청이 감사 결과에 ‘의혹이 있다’고 한 부분도 이해되지 않는다. 혐의 없음으로 나와 만족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가해학생은 진술서를 담임에게 제출하고 얼마 뒤 피해학생에게 직접 20만 원을 요구했다. 지난해 9월 28일 오후 4시 45분쯤 피해학생과 20만 원을 건네줄 시간을 정하며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 거다. 누구 귀에 들어가면 우린 망한다. 대화창을 나가서 증거를 소멸하자”는 대화를 나눴다. 이 자료는 감사 증거 자료로 제출된 바 있었다. 교장이 이 씨에게 화분 기증을 요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교육청은 사실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교육청은 “교장이 화분 기증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 씨 역시 ‘학교와 일체 상의 없이 자발적으로 입학식 당일 철쭉나무 2그루를 익명으로 학교 단상에 가져다 놨다’는 확인서를 썼다”고 했다. 감사 때 증거 자료로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교장은 이 씨에게 화분을 원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취록에서 이 씨는 “입학 전 교장과 점심을 함께 했다. 양쪽으로 화분 2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놨다”며 “교장이 나한테 ‘나무를 화분에 두면 죽으니 정문 근처에 나무 2그루를 옮겨 심었다’고 말해줬다. 그 나무는 5월이면 예쁘게 꽃이 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육청은 “교장이 학부모의 선물을 수수한 것에 대해 특혜를 주었거나 불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했다는 근거가 없다. 공무원행동강령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부정청탁·금품수수금지법은 지난해 9월 시행됐다. 화분 수취는 지난해 2월이라 적용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교육청 관계자는 “감사 내용은 감사 결과로 이야기한다. 따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
「‘학폭위도 못 믿겠다’…서초구 중학교 ‘학폭 은폐’ 풀스토리」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7년 7월 30일자 「‘학폭위도 못 믿겠다’…서초구 중학교 ‘학폭 은폐’ 풀스토리」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해당 학교가 학교 폭력을 은폐했고 관련 공문서를 조작했으며 학교 담임 교사가 학생의 자필확인서를 조작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한 위 학교는 이 씨가 교내 영향력을 키워왔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