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노건평 씨가 세종증권 매각 비리의혹과 관련해 구속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하지만 노 씨는 노 전 대통령의 비호와 자신의 결백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속되는 수모를 당했다. 검찰 수사 결과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구속)으로부터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대한 청탁을 받은 노 씨가 정화삼·광용 씨 형제(구속)와 공모해 치밀한 전략을 짜는 등 전면에 나서 집요한 로비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노 씨는 특히 목격자를 피하기 위해 봉하마을 저수지 인근 자신의 텃밭 자재창고에서 억대의 현금이 든 박스를 두 차례 받는 등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노 씨는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힘써 달라”고 청탁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울 시내 호텔에서 정 전 회장을 직접 만나 세종증권 인수를 청탁하는 적극성을 보였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자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탁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30억 원의 결정권자도 노 씨였던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2006년 1월 28일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정식 계약을 체결하자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은 다음 달 정 씨 형제에게 29억 6300만 원이 들어있는 홍 사장 명의의 통장을 건넸다. 검찰은 노 씨가 직접 통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정 씨 형제와 함께 이 돈을 공동 관리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06년 4월 말쯤 광용 씨는 돈 세탁 과정을 거쳐 봉하마을 자재창고에서 두 차례에 걸쳐 현금 3억 원을 노 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자금 추적결과 김해 소재 성인오락실에 10억 5000만 원, 부산에 있는 성인오락실에 수억 원이 들어간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세종캐피탈 측에서 받은 돈 중 3억~4억 원은 정 씨 형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나머지는 제3자 명의로 펀드 등에 투자한 사실도 확인했다. 노 씨의 주장과는 달리 이번 청탁 로비 사건의 ‘행동대장’은 노 씨이고, 정 씨 형제는 심부름 등 중간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노 씨가 지난 2004년 초 자신이 실소유주인 정원토건의 회사자금을 빼돌려 박연차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리얼아이디테크놀러지사의 주식 10억 원 어치를 차명으로 매집한 단서를 포착하고 노 씨를 상대로 주식을 매입한 경위 및 자금의 출처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실업 계열사인 정산개발은 2003년 말 공사비 32억 원이 투입된 정산골프장 진입로 공사를 정원토건에 맡긴 바 있다. 따라서 검찰은 박 회장이 노 씨를 지원하기 위해 사업을 밀어주거나 돈을 건넨 사실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검찰은 또 노 씨와 정 씨 형제가 홍 사장으로부터 받은 30억 원 외에 추가로 금품을 수수했는지와 세종증권과 농협 측이 증권선물거래소와 농림수산식품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과정에서 노 씨가 역할을 했는지 여부 등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씨가 구속되자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친노그룹과 민주당은 침통함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이 사건을 참여정부 게이트나 민주당 비리로 연결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2월 5일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방문객과 만나 노 씨 구속과 관련해 처음으로 심경을 토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형님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데 자신이 사과를 해 버리면 피의 사실을 인정해 버리는 일’이라면서 ‘모든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형님의 말을 앞지르는 판단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직 대통령의 도리도 있겠지만 형님 동생의 도리도 있다. 방문객과의 인사를 올해에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친노그룹의 백원우 의원은 “노건평 씨 사건 하나로 참여정부 전체의 도덕성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앞으로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지켜지길 희망했으나 영장이 발부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검찰이 노 씨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지만 노 씨가 주요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치열한 법정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노 씨는 세종증권 매각로비 사례금으로 받은 29억 6300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정 씨 형제는 관리만 했고 사례금은 실질적으로 노 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정 씨 형제가 사용한 돈이 더 많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정 씨 형제가 사례금으로 구입한 상가와 오락실의 실소유자 논란을 둘러싼 공방전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노 씨가 상가와 오락실을 공동소유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상가 명의는 정 씨의 사위이고 오락실도 정 씨의 어머니 명의로 돼 있다는 점에서 노 씨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락실 수익금이 노 씨에게 전달됐을 것이란 의혹도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노 씨에게 전달됐다는 4억 원도 모두 차명으로 받았거나 현금으로 전달됐다는 점에서 전달자의 진술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