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0일 에릭 크랩튼 공연 관람을 위해 영국을 찾은 김정철. 옆에는 그를 보좌하는 태영호 전 공사도 눈에 띈다. JNN 캡처.
7월 중순 필자는 과거부터 김정철과 관계가 있던 북한의 한 내부관계자를 통해 김정철의 최근 동향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김정철이 동생 김정은의 지시하에 해외 통치자금 관리에 대한 상당한 권한을 위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해외 통치자금 관리는 신분을 세탁한 북한 정보요원들, 즉 ‘블랙’들에 의해 이뤄지는 음지의 불법적인 통치자금 관리에 한정한다. 정상적인 무역거래가 아니다. 이 부분은 지금 같은 국제적인 대북제재 속에서 당연히 (북한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대목이다.
이 자금관리의 권한을 김정철이 부여받았다는 것은 과거 큰형인 김정남(피살)의 역할을 이어받은 측면이 강하다.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 생존 당시 해외 통치자금을 관리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결과로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됐던 2009년경 이 비자금 여부를 두고 김정남과 김정은이 갈등 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김정철은 북한 국가보위성(전 국가안전보위부) 해외반탐조직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철은 이미 지난 2014년부터 국가보위성 산하 해외반탐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을 비공식적으로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즉 김정철은 ‘반탐’과 ‘통치자금’ 등 김정은 정권이 절실히 필요한 해외 업무를 주관하고 있고, 점차 그 권한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물론 김정철은 그동안 동생의 정권 세습 이후 한동안 주변부를 맴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동생 김여정이 수차례에 걸쳐 김정은 주변에서 직접 목격됐던 것과 달리 김정철은 공개석상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김정은과 동석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김정은이 주관하는 해외 주재원 초청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앞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김정은은 평양에서 개최한 이 행사에 김정철을 직접 소개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김여정도 없었고, 가족 중에선 김정철이 유일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행사의 기본 목적은 해외에 파견됐던 선대 공작원(블랙)들의 자식들이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였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매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기념일부터 소위 ‘전쟁승리’ 기념일인 7월 27일 사이에 ‘반미공동투쟁월간’을 운영한다. 이때를 빌미로 북한 당국은 해외 공작원들의 여러 행사를 조직한다. 바로 이 좌석에 김정철이 김정은과 동행했다는 것이다.
이 행사에 참가한 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철은 김정은과 아주 친밀해 보였고 충분히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로 보였다고 한다.
현재 김정철의 행적이 포착되고 있는 곳은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이란,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북한의 비공식적인 통치자금 획득 및 관리를 기존의 유럽지역과 중국지역에서 동남아시아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기류와 맞물려 있다.
특히 북한은 이 지역 내 급속화되는 인터넷 발달을 활용해 사이버 해킹을 통한 불법자금 획득 등을 확대시키는 중이다. 동남아는 사이버 보안이 상대적으로 유럽이나 중국보다 취약하다. 바로 이곳에서 김정철은 반탐과 통치자금 관련 블랙 공작원들의 활동을 직접 조율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지역은 모두 북한의 정탐 및 비합법적 조직들의 주요 거점으로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핵심 지역이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2015~2016년 사이 동남아를 중심으로 북한의 ‘블랙’들이 해외통치자금용으로 사이버해킹, 보이스피싱 같은 불법행위로 김정은에게 상납한 자금은 무려 1억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한 예로 2016년 말 즈음 캄보디아 지역에서 보이스피싱을 통한 불법자금 획득을 기획한 한 팀은 2800만 달러의 현금을 상납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고 김정남. 연합뉴스
앞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철은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공작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남 피살사건에도 깊게 연루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반탐조직을 관리하고 있다는 앞서의 역할이 사실이라면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다.
당시 김정철은 홍콩 총영사관에 머물렀다고 한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김정룡 북한 주중대사관 안전대표와 김정철은 상당히 가깝다는 후문이다. 김정룡은 국가보위성 해외반탐국 부국장 출신이다. 김정철이 김정남 피살 사건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해당 지역 반탐 조직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철은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장성택, 태영호 사건 등 내부 고위층의 동요, 김정남 사망 사건 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무섭게 찾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도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인사로 가까운 ‘가족’을 택한 측면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김정철의 급부상에 또 한 가지 지켜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 바로 한동안 부침에 시달렸던 ‘봉화조’의 움직임이다. 봉화조는 북한 빨치산 혁명 2~3세들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핵심 세력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전방위로 강도 높게 진행된 검열 탓에 각종 이권에 개입했던 봉화조 일부 인사들이 큰 타격을 받은 바 있다.
그렇게 부침에 시달리던 봉화조가 최근 김정철의 급부상으로 다시금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정철은 오래전부터 봉화조 인사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원홍 보위상의 아들 김철, 강석주 당 국제담당 비서의 아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조카, 리을설의 아들 등이 김정철과 자주 어울렸던 봉화조 인사들이다.
김정철의 향후 역할론과 더불어 봉화조 인사들의 움직임은 향후 면밀히 살펴볼 부분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