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우린 기차역. 동부로 가는 길목이다.
[일요신문] 삔우린(Pyin Oo Lwin) 기차역 플랫폼입니다. 북동부의 관문인 삔우린은 영국 통치시절엔 여름철 행정수도였던 곳입니다. 연중 온도가 15도에서 25도를 유지하는 선선한 도시입니다. 미얀마에선 주요 커피산지입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는 이곳과 가까운 따웅지이고, 외국인은 단연 삔우린입니다. 저도 자주 찾는 도시입니다. 삔우린역은 ‘역사’를 실어나른 유서 깊은 역입니다. 중국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중국으로 가는 교통 중심지라 모든 트레일러는 이 도시를 통과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갓진 기차역. 대합실 벤치에는 시골 아낙네들 몇몇이 농산물을 이고 드나들 뿐입니다. 오고가는 기차도 하루에 왕복 한 번뿐입니다. 텅 빈 대합실에서 이름 모를 두 할머니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눕니다. 도착할 기차는 몇 시간이 남았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두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며. 오른쪽은 기차역 안 벤치에서.
결코 65세라고 믿기지 않는 이 할머니는 언니와 함께 기차를 기다립니다. 만달레이행입니다. 차비는 우리 돈 500원쯤 됩니다. 이 할머니는 언니와 달리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왔습니다. 오빠네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역사 안에는 외국인 전용휴게실 팻말이 있지만 오랫동안 비워진 듯합니다. 기차역에 오면 늘 멀리 떠나고 싶어집니다. 기차는 이별과 만남을 실어 나르고 우리 삶을 옮겨 놓았습니다. 기차역에서 시인 안도현의 시 ‘기차’를 생각합니다.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뿡뿡, 하고 운다, 우는 것은 기차인데/울음을 멀리까지 번지게 하는 것은 철길이다, 늙은 철길이다
저 늙은 것의 등뼈를 타고 사과궤짝과 포탄을 실어 나른 적 있다/허나, 벌겋게 달아오른 기관실을 남쪽 바닷물에 처박고 식혀보지 못했다(중략)
그 어떤 바깥의 혁명도 기차를 구하지 못했다/철길을 끌고 다니는 동안 서글픈 적재량이 늘었을 뿐
그리하여 끌고 다닌 모든 길이 기차의 감옥이었다고/독방이었다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저도 녹슬었다고
기차는 검은 눈을 끔벅끔벅하면서 기어이/철길에 아랫배를 바짝 대고 녹물을 울컥, 쏟아낸다
기차노선 안내. 중국 국경과 가까운 라쇼까지 왕복 한 번씩 운행한다.
휴대폰 무료충전대 앞에서.
니어링 부부처럼 물과 주스와 허브 차만 마시고 생과일과 채소와 견과류 등만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 숨 막히는 이 시대엔 스트레스만이라도 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삔우린 간이역으로 낡은 기차가 덜컹거리며 들어옵니다. 65세의 싱글 할머니는 몇 꾸러미의 짐을 이고 들고 기차에 오릅니다. 언니가 배웅을 합니다. 제겐 다시는 못 볼 얼굴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기차역을 보러 온 저는 이제 어디로 갈지를 잠시 망설입니다. 그런데 참, 할머니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이름을.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