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일자리 추경 예산 편성 협력을 당부하며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DB
문 대통령은 6월 12일 추경안에 대해 “응급처방이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빠른 시일 내 통과돼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추경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문 대통령은 7월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추경이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다시 한 번 요청 드린다. 인사는 인사대로 추경은 추경대로 논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첨예한 공방을 벌이던 여야는 7월 22일 오전 10시경 추경안 의결을 위해 본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이날 민주당 소속 의원 120명 중 26명이 참석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표결 직전 퇴장했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정족수 150석을 가까스로 채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대통령이 반복해서 추경안 처리를 부탁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추경안은 찬성 140명, 반대 31명, 기권 8명으로 통과됐다.
야당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은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추경이 통과됐다. 여당의 참석률이 저조했다. 책임 있는 여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 역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26명이 휴가나 외유성 출장을 떠나 정족수 과반을 채우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여당에서조차 쓴소리가 들린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회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한 의원들도 문제, 예결위에서 진통 끝에 합의해 온 추경안 표결 참석을 거부하는 자들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일부 여권 지지자들은 불참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실엔 항의 전화까지 빗발쳤다고 한다.
‘정치개혁 준비된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모임’도 7월 22일 성명을 내고 “추경 예산 표결에 남다른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국민과 권리당원의 강한 공분을 사고 있다. 이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더불어 당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다”고 했다.
당 지도부도 이번 사태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7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본회의 표결이 지연되는 초유의 상황을 보여드린 점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여당 원내대표로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국민 여러분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불참 의원 26명에 대해 추미애 당 대표가 서면 경고하고 앞으로 의원들의 국외 활동을 엄격하게 관리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정기 국회를 앞두고 당 기강을 분명히 세워 나가는 반면교사로 삼겠다. 회기 중 국외 출장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나 기강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더욱 엄격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26명 의원들은 절박하게 추경안을 처리해야 된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더구나 이 상황을 당에서 수습하려고 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득실로 활용하니까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이번 사태는 청와대가 집권 여당을 국정 운영의 동업자가 아닌 조력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불참 이유가? 딸 졸업식, 아들 면회, 효도관광… 추경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은 강창일 강훈식 금태섭 기동민 김영호 박병석 박용진 서형수 송영길 신창현 심기준 안규백 안민석 우상호 위성곤 이석현 이용득 이원욱 이종걸 이철희 전해철 전현희 정춘숙 진영 홍의락 황희 의원 등 26명이다. 이 가운데 초선 의원은 13명이다. 당의 전수 조사를 참고하라며 사유를 비공개에 부친 강훈식 이종걸 박용진 의원을 제외하고 23명 가운데 21명이 해외 체류 중이었다. 이 중 16명이 공무상의 이유를 들었다. 강창일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서 현지 회의에 참석했다. 금태섭 정춘숙 의원은 미 국무부 초청으로 가정폭력 관련한 출장을 다녀왔다. 김영호 의원은 중국 통관 조율 차 현지를 방문했고, 서형수 의원은 환노위 관련 일정을 소화했다. 박병석 안규백 전해철 의원은 중남미포럼, 이철희 진영 의원은 국방위 현안과 연관된 출장을 다녀왔다. 심기준 위성곤 이원욱 의원은 신재생에너지 포럼을 다녀왔다. 이원욱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연구단체인 ‘신재생에너지’ 대표 의원을 맡고 있는데 포럼에 공식 초청 받아 갔다.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현 정부 기조 아니냐. 본회의가 애초 18일에 예정돼 있었고 19일 날 출국하기로 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비행시간만 20시간이 되기 때문에 돌아올 수도 없었다. 다음번엔 이상 없이 참석하겠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창현 의원은 환경부 등과 함께 미국·일본 등 국립공원 등을 시찰했고 이석현 의원은 싱가포르 국제회의 참석했다. 안민석 의원은 최순실 재산 추적을 위해 독일 출장을 갔다. 개인적인 용무로 해외에 나가 있었던 의원은 기동민 이용득 전현희 홍의락 황희 의원이다. 기 의원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개인 용무로 해외에 다녀왔다. 생각이 짧았다. 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장인·장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여행 한 번 해드리겠다고 다짐했었고 금년 대선이 잘되면 제가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7월 18일 모든 일정이 끝난다고 예상했고, 패키지 효도관광을 다녀왔다”고 전했다. 전 의원은 “외동딸이 이번에 졸업했다. 아빠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고 큰 상처를 지닌 채 타국에서 홀로 지내는 딸의 졸업식 참석 요청을 유일한 혈육인 엄마로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면서 당 지도부에 양해를 구한 뒤 출국했다고 전했다. 홍 의원은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공인의 자세는 아니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용서 바란다”고 했다. 황희 의원실 관계자는 “개인적 일정으로 유럽 쪽에 나가 있었다”고 했다. 송영길 의원은 “광주 강연이 있었는데, 취소 후 돌아오는 길에 본회의가 끝났다”고 해명했다. 우상호 의원은 본회의 초반 자리를 지키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군 복무 중인 아들 면회를 위해 국회를 떠났다. 정족수 미달 소식을 듣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본회의 의결이 끝난 뒤였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