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시간이 멈춘 곳에서는 ‘추억’이 흐릅니다. 정든 추억들이 모이면서 역사가 쌓였습니다. 역사가 묻힌 장소는 ‘미래유산’이란 이름으로 서울시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곳에 다녀온 어르신들은 자녀들에게 추억을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추억 속에서 역사를 배웠습니다. 미래유산은 역사와 추억이 깃든 장소입니다.
지난주, <일요신문i>는 ‘서울멋쟁이’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때 그 시절, 서울멋쟁이가 다녔던 목욕탕, 이발소, 양복점으로 시간여행을 떠났습니다. 머릿카락과 수염을 말끔히 깎고 양복을 맞춘 기자는 ‘서울멋쟁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울멋쟁이뿐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맛집’에 사람들이 붐비는 까닭입니다.
<일요신문i>는 ‘서울미식가’들의 맛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옛날 그 시절, ‘서울 미식가’들은 과연 어디서 배를 든든하게 채웠을까요. 무엇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을까요.
라칸티나로 들어가는 본지 기자. 고성준 기자
기자가 처음 방문한 장소는 ‘라칸티나’(LA CANTINA)입니다. 1967년 개업한 라칸티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입니다. 벽돌과 문에 있는 문양이 보이시나요? 입구 디자인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럭셔리’한 느낌이 물씬 풍겨나오는 곳입니다.
라칸티나 내부 전경.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선 순간 ’테이블 세팅’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은은한 조명이 부채 모양의 냅킨과 함께 어울어지면서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태훈 라칸티나 대표는 “인테리어는 초창기 때와 똑같아요. 80년도에 손을 봤고 2013년도에 천장하고 바닥 공사만 다시 했습니다. 의자들은 전부 30년이 넘었어요. 당시 노동자들 평균 월급이 20만~25만 원이었습니다. 굉장히 고가의 의자였어요”라고 전했습니다.
냅킨을 까는 본지 기자(좌)와, 메뉴판
라칸티나가 문을 열었을 당시 파스타와 스파케티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기자는 ’서울 미식가’들이 즐겨 음미했던 봉골레 스파케티와 랍스터 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랍스터 스테이크는 바닷가재 요리입니다.
원유 스프(좌)와 원유 스프를 먹는 본지 기자.
’원유스프’는 에피타이저입니다. 원유스프의 역사도 50년이 넘습니다. 양파로 우려낸 육수에 후추를 넣고 식빵과 치즈를 넣은 스프입니다. 스프를 떠먹는 순간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입안을 가득메웠습니다.
쫀득쫀득한 식감을 주는 치즈는 입 안에서 떠날 줄 몰랐습니다. 글로 표현한 수 없는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기자는 라칸티나의 맛과 분위기에 흠뻑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랍스터 스테이크(좌), 봉골레 스파게티
드디어 랍스터 스테이크와 봉골레 스파게티가 등장했습니다. 랍스터의 커다란 집게발이 보시이시나요? 집게발, 랍스터 튀김, 구운 감자, 브로콜리의 고소한 향이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봉골레 스파게티는 접시 바닥에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중합 조개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일단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었습니다.
본지 기자가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
탱탱하고 부드러운 면발이 ’호로록’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중합조개는 혀끝에서 신맛이 느껴졌지만 혀 뒤쪽으로 넘어갈 때는 달짝지근 맛이 감돌았습니다. 알알히 씹히는 조갯살도 일품이었습니다. 콩나물국 향이 나는 국물은 해장에 좋을 만큼 시원했습니다.
본지 기자가 랍스터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
이제 다음은 랍스터 스테이크입니다! 랍스터 집게발 속엔 야들야들한 속살이 느껴졌습니다. 부드럽고 달콤했습니다. 포크로 랍스터 튀김 속을 파고든 순간 내장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내장을 먹는 순간 그윽하고 아늑한 바다 내음이 밀려왔습니다.
봉골레 스파게티와 랍스터 스테이크에 파묻힌 기자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한동안 정신없이 서울미식가의 맛집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이제 ’간식’을 먹어야지요! 태극당으로 향했습니다.
태극당으로 들어가는 본지 기자(좌) 빵 사진. 고성준 기자
윤기가 좔좔 흐르는 빵들이 보이시나요? 1946년 서울 명동에서 처음 문을 연 태극당은 73년도에 지금의 장충동으로 본점을 옮겼습니다.
신혜명 태극당 실장은 “3대가 이어 경영중입니다. 2015년 11월에 태극당 건물을 리모델링을 했지만 내부 장식은 그대로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태극당엔 단팥빵, 맘모스빵, 고방 카스텔라, 야채사라다 등 옛날 빵들이 가득했습니다.
태극당 카운터 전경(좌), 빵을 고르는 본지 기자.
태극당은 서울시 미래유산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래된 역사 탓에 실내 풍경은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카운타’는 계산대의 영어식 표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카운터’로 씁니다. 그만큼 태극당이 오래됐다는 증거입니다.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 계산을 정확히 합시다”라는 문구에선 역사가 보였습니다. 태극당은 빵과 함께 60~70년대 추억을 함께 팔고 있었습니다.
태극당 생크림 케이크.
생크림 케이크입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이렇게 옛날식 케이크를 파는 곳이 있을까요? 태극당의 전매 특허인 야채 사라다도 수십 년째 팔리고 있습니다.
기자는 당장 야채 사라다와 슈크림빵, 버터식빵 그리고 우유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슈크림빵과, 소보로빵, 야채 사라다(좌)와 우유
빵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기자는 종로양복점을 다시 찾았습니다. ’[백 투 더 서울] 1탄: 서울 멋쟁이 따라잡기’ 시리즈를 기억하시나요? 종로양복점에서 맞춘 셔츠를 입어봤습니다. 이제 진정한 멋쟁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종로양복점에서 셔츠를 입고 나오는 본지 기자(우). 고성준 기자
자, 이제 옷을 새롭게 갈아입었으니 다음 장소로 향해야지요.
강남 한복판, 거대한 버스가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의문의 버스는 수십년째 이곳에 주차된 상태입니다. 기자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곧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영동스낵카 전경과 스낵카 안으로 들어가는 본지 기자. 고성준 기자
세상에 이런 일이! 버스는 식당이었습니다. 버스 뒷문에 연결된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양철로 이루어진 천장과 벽면이 온통 은색이었습니다. 메뉴판엔 돼지불백, 콩비지, 북어찜 등 콩국수 등 먹을거리가 가득했습니다.
영동 스낵카에서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와 본지 기자.
영동스낵카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식 식당입니다. 1972년경 국가에서 박윤규 대표의 삼촌인 이재형 씨를 포함한 국가유공자 13명에게 스낵카 영업을 허락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푸드트럭’인 셈입니다.
박운규 대표는 “1972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동분식점으로 허가를 내줬어요. 학여울역 주변에서 폐차를 가져다가 시작했는데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새차로 바꿨어요. 서울시가 아시아 자동차회사에 의뢰한 다음 일본과 미국 카스낵 설계도면을 구해서 13대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는 영동스낵카의 대표상품! 콩국수와 돼지불백을 주문했습니다.
콩국수(좌)와 돼지불백 백반
차가운 얼음을 동동 띄운 콩국수와 돼지불백 백반입니다. 더위에 지쳤던 기자는 돼지불백을 일단 먹고!
돼지불백을 먹는 본지 기자.
또 먹고!
또 먹었습니다.
결국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쫄깃한 면발이 입 안에서 솟구쳤습니다. 콩의 고소한 향은 입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콩국수 때문에 배가 불렀지만 푸짐한 돼지불백을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젓가락으로 팽이버섯과 표고버섯 사이를 뚫고 불고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밥에 불고기와 잡채를 올리고!
불고기와 잡채를 정갈하게 다듬고!
또 먹었습니다. 영동스낵카는 1970~80년대 서울미식가들의 안식처였습니다. 특히 택시기사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택시기사들은 밤낮없이 이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식가들의 성지는 락칸티나, 영동스낵카 외에도 서울 골목 구석구석 남아 있습니다. 점점 해가 저물었지만 기자는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서울 미식가들의 추억과 역사를 씹고, 뜯고, 맛보면서 ’혼밥’을 먹었습니다. 먹고 또 먹었습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