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A, 아이유 등 톱스타를 모델로 삼는 등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던 스베누. 스베누 유튜브 광고 캡처.
2000년대 후반 황효진 씨(29)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 아프리카TV 초창기부터 ‘소닉’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문제의 발단은 2012년 황 씨가 ‘신발팜’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차리면서부터다. 2013년 8월 황 씨는 아프리카TV에서 투자자를 모집한다고 광고를 하기 시작한다. 스베누 및 운동화 유통업체 ‘신발팜’에 투자하면 매월 투자이익금으로 투자금의 2%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금을 유치하는 동시에 황 씨는 2013년 10월 신발팜에서 스베누를 선보인다. 스베누는 초기부터 마케팅에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초기에는 페이스북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대박을 쳤다. 황 씨가 BJ로서 이름값도 있었고, 당시에는 페이스북을 통한 마케팅이 지금처럼 활발한 때가 아니어서 경쟁도 적었다. 운도 따라준 셈이다.
2014년이 되자 스베누의 마케팅 수준은 ‘공격적이다’에서 ‘황당하다’로 변모한다. 갓 나온 중소기업 신발 브랜드가 AOA에서 아이유까지 국내 톱 연예인들을 광고에 동원했다. 광고비만 2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스베누가 가장 잘나가던 시기인 2014년도 마케팅 덕분에 매출이 약 100억 원을 돌파했지만 반대로 마케팅 때문에 적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2014년 6월 황 씨는 본격적으로 스베누라는 새로운 법인을 만들게 된다.
이때부터 황 씨의 사치가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된다. 황 씨는 슈퍼카, 명품 시계 등을 사 모으고 고급아파트에서 생활했다. 황 씨는 “당시 돈이 많이 벌리던 시점이었다. 차량은 모두 리스였다. 법인리스도 아니였고 개인리스였다. 절세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흔히 황효진 씨의 사치생활 때문에 스베누가 문 닫게 됐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과는 약간 다르다고 한다. 황효진 씨에게 투자했다는 A 씨는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쓰고 호화로운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만으로 망한 것은 아니고 계속된 문제가 터지면서 망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A 씨가 말한 계속된 문제는 중간밴더인 하이키와의 다툼, 무계획적으로 끊임없이 들여온 투자금이었다.
투자자인 A 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스베누는 2015년 마케팅비를 ‘쏟아 부으면서’ 매장을 100개 이상으로 늘렸다. 그런데 신발 제작을 담당하는 부산 공장들에서 중간 밴더인 하이키가 취하는 금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 이를 바탕으로 스베누는 하이키와의 전면적인 계약 조정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미 다년 계약을 맺어 놓은 상태에서 계약을 파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베누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금액만 대금으로 지급했다. 이에 하이키는 물건을 주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제 막 팔리기 시작하는데 물건을 받을 수 없게 된 것. 매장이 100개가 넘어 물건을 줘야하는데 상품은 엄한 곳에 묶여 있었다. BJ로서는 성공했지만 사업은 초보였던 황 씨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물건이 돌지 못하자 급격하게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다. 2015년 여름 사실상 망하기 직전인 스베누가 마지막 총력전을 다짐하고 개발에 착수한다. 실탄도 더 모은다. ‘슈퍼홀릭’이란 곳에서 스베누 재고를 담보로 30억 원의 돈을 빌려 여름 아쿠아 슈즈를 제작한다.
스베누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때 이자는 월 2%. 복리로 계산하면 약 25%가 넘는 금액이다. 한 달 이자만 6000만 원, 연이자는 7억 2000만 원에 달한다. 또 다른 스베누 문건인 통장 거래내역을 보면 이 시기쯤 2013년부터 아프리카TV를 통해 모집한 개인투자자의 투자액이 약 2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30억 원까지 더 빌리면서 빚의 무덤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문건에서는 2015년 8월 기준 이자 지급 지체일이 60일, 지체 이자만 1억 2000만 원을 넘었다. 슈퍼홀릭에서는 스베누의 물건이 출고될 때마다 20% 금액을 떼서 가져갔다. 스베누가 돈을 벌어도 빚이 과도하게 많아 남길 수가 없는 구조로 변해갔다.
상황은 안 좋아졌지만 스베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2015년 할리우드 배우인 클로이 모레츠를 모델로 쓰면서 마케팅비를 쏟아 부었다. 세계적 축구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폰서 계약까지 맺었다. 브랜드 상관없이 돈만 주면 된다지만 금액은 반년에 10억 원에 달했다고 알려졌다. 지난 1월 황 씨를 고소한 한 개인투자자는 “맨유와의 스폰서십을 통해 투자자에게 아직 회사가 건실하다고 알렸고 투자금을 더 모집했다. 하지만 맨유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회사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도 맨유와의 제휴는 별 효과가 없었다. 사실상 날린 셈이다.
통장 거래 내역을 통해 이 당시 스베누가 마케팅비와 광고비를 물 쓰듯 한 내역을 더 볼 수 있다. 먼저 유명 커뮤니티인 J 카페에 한 달에 330만 원의 배너광고를 집행했다. 네이버 키워드 광고는 하루에 최소 100만 원 이상 충전해 사용했다. 유명 BJ인 양 아무개 씨에게는 약 1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 입금을 했는데 매번 50만 원이었다. 로 아무개 BJ에게는 600만 원씩 2015년 4월, 2015년 5월에 입금됐다고 적어뒀다. 그 외 중소규모 커뮤니티에도 1회 수십만 원 규모의 광고를 집행했고 신발사이트에서도 1회 수백만 원을 썼다. 스베누의 2015년도 광고집행 규모는 100억 원이 넘었다. 2015년 상반기 광고 시장에서 삼성화재,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반면 물 쓰듯 하는 광고비와 달리 정작 직원 월급은 월 160만 원 정도에 불과해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마케팅비에 돈을 아낌없이 썼지만 생각과 달리 아쿠아 슈즈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하필 메르스가 터지면서 온 나라의 지갑이 꽉 닫혔기 때문이다. 여름을 겨냥한 제품이기 때문에 여름이 지나자 재고로 전락했다. 땡처리 물량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갚을 돈이 없는 스베누였지만 물건을 담보로 잡고 있는 슈퍼홀릭에 돈은 줘야 했다. 대금 지급을 위한 본사와 대금 지급을 못 받은 공장, 양쪽에서 물량이 나온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베누(SBENU)는 소비뉴(SOBENU)라는 회사에서 상표권 소송까지 당한다. 소비뉴와 스베누가 이름이 비슷해 소비자들이 혼동할 수 있어 상표권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엄청난 마케팅비를 쏟아부었지만 소송에서 지면 그 이름을 쓸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또 다시 망할 위기에 처한 스베누. 스베누가 물건 값을 주지 못하자 부산 공장들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장 판매할 신발을 만들어야 했던 스베누는 부산 공장에 ‘신발을 팔면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그때 스베누에 수백억 원을 투자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김 아무개 회장이다. 스베누 전 직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스베누에 15억 원 정도를 현금으로 투자해줬다고 한다. 이때부터 대표직은 송현숙 오씨에너지 부회장이 맡고 황 씨는 대표직에서 사실상 물러나고 마케팅 임원 역할로 자리를 옮긴다.
15억 원이 거금이지만 이 돈으로는 대책 없이 많은 투자금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갚아야 할 부산 공장 어음을 막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2015년 12월 문제가 터졌다. 부산공장에서 신발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들이 돈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것. 이때도 스베누는 줄 돈이 없었다. 부산 공장에서는 재고라도 가져가 ‘땡처리’를 통해 제작 원가도 안 되는 돈이라도 챙길 수 있었다. 이때 땡처리 물량은 여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부산 공장 피해액이 약 300억 원에 달한 데다 피해 공장이 많아 부산시 공무원도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해보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스베누의 숨통이 사실상 끊긴 장면이었다. 첫 번째로는 돈으로 올렸던 약간의 이미지가 땡처리를 통해 끝장이 났다. 3만 원에 물건을 판매해 ‘싸구려 시장통’ 신발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 또 언론에 부산 공장의 처참한 상황이 보도되면서 이미지는 끝없이 추락했다.
김 회장을 주축으로 새롭게 꾸려진 스베누 내부에서도 갈등은 커지고 있었다. 투자금으로 인한 소송, 각 공장에서 돈을 받지 못해 제기된 소송, 상표권 갈등으로 황 씨는 회사 운영이 아닌 법원을 찾는 일이 잦았다. 이 시기가 되면 황 씨는 투자자, 채권자에게 항의전화 받는 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다고 한다.
2016년 3월을 기점으로 스베누는 스베누코리아라는 법인도 따로 만들었다. 스베누가 빚도 많았고 여러 문제가 얽혀 새로운 법인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다. 대표는 송현숙 부회장이 맡았다. 하지만 초기 500억 원의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말과 달리 더 이상의 투자는 없었다. 새로 온 경영진은 황 씨에게 사전에 이야기한 것보다 빚이 많고 상표권조차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스베누는 땡처리와 함께 사라진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캡처.
5월 다시 론칭한 스베누코리아는 협의 과정을 거치다 갈등이 커져 황 씨를 쫓아내게 된다. 재고 물량, 담보 설정 등 또 다시 빚 문제가 원인이었다. 얼마 뒤인 9월 스베누는 폐업을 선언하고 모든 물량을 오렌지팩토리에 추석 명절 땡처리로 넘기면서 2년이 넘는 파란만장한 사업도 막을 내리게 된다. 이때 물량은 앞서의 땡처리와 비교 불가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이미 대표가 바뀐 데다 실권이 없던 황 씨는 땡처리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스베누 전 직원은 “15억 원 정도를 투자한 새로운 경영진은 이때 넘긴 물량이 많아서 큰 손해는 보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또한 땡처리로 넘기면서 공장 측으로부터 스베누코리아가 사기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2016년 9월부터 황 씨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먼저 G 브랜드에서 준 명품 브랜드 D의 국내 마케팅 판권을 들여와 황 씨에게 운영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투자자이면서 당시 함께 일했던 이 아무개 씨는 “망하긴 했어도 없던 브랜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점에서 많은 회사가 황 씨를 높게 평가했다. 여러 회사에서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D 브랜드 사업도 큰 효과를 못 보면서 황 씨와 G 사의 관계도 얼마 못가 끝을 맺는다. 황 씨는 “프리랜서로 일했을 뿐 특정 회사에 고용이 돼서 일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이미 많았던 소송도 스베누 퇴직자들이 생기면서 더 많아졌다.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퇴직자들이 노동청에 진정을 넣기 시작하면서 황 씨는 경찰, 검찰, 법원에 이어 노동청에도 조사 받으러 다녀야 했다. 황 씨는 “1년 동안 조사만 받으러 다녔다. 형사소송만 27건이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투자자면서 경영에 참여했던 이 씨는 이 과정에서 환멸을 느껴 고소를 결심하게 된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얼마 되지 않는 직원들 퇴직금을 주지 않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6년 말 이미 다 끝난 일이지만 소비뉴와의 분쟁도 끝을 맺게 된다. 이 씨는 “재판부 합의로 소비뉴에게 스베누 지분 50%를 넘겨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차피 폐업한 마당에 의미 있는 판결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황 씨는 “세단은 이미 반납했고 SUV를 렌트해서 타고 다닌다. 재판이 전국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효진 스베누 전 대표. YTN 사이언스 방송 화면 캡처.
결국 지난 1월 황 씨는 2013년부터 아프리카TV를 통해 모집한 개인투자자에게 유사수신과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고소인들은 최소한 유사수신 혐의는 아프리카TV 방송과 거래내역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재판은 열리지 않고 있다. 황 씨는 현재 불구속 수사 중이라고 한다. 검찰 수사단계가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의 마음만 초조해지고 있다. 개인투자자 김 아무개 씨는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서 호화롭게 생활한다고 들었다. 황 씨에게 새로운 사업제안이 계속 들어와 돈이 지금도 유입된다고 한다. 추가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구속되고 재판이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베누에서 일하다 퇴직금이 체불된 C 아무개 씨는 “소액체당금(확정판결 등으로 고용노동부에서 최대 400만 원까지 지급해주는 제도) 제도를 통해 받았다. 황 씨에게 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접촉했던 퇴직자 다수는 C 씨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퇴직자 D 씨는 “(대부분 못 받았지만) 2명은 지급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해 사람에 따라 지급받은 사람이 있긴 한 것으로도 보였다.
황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특정 절차가 끝나면 주기로 약속한 직원들은 아직 못 준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직원은 책임감을 느껴 퇴직금을 주고 있다. 통장 거래내역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빚을 진 사람 모두에게는 최선을 다해 돈을 갚을 생각이다. 언론이나 온라인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돌아다닌다. 그동안 말 못했던 것도 있었고 오해도 많았다. 곧 수사단계가 끝나면 해명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