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카 리베라
하지만 그녀는 2007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간질 발작이 사인이었다. 다음 해인 2008년 멕시코주 주지사 재선 선거에 나선 페냐는 당시 TV 톱스타 중 한 명이었던 안젤리카 리베라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후 그녀는 페냐 진영의 얼굴마담이 돼 선거 유세를 누볐고, 타블로이드는 그녀와 페냐의 염문설로 타올랐으며, 재선에 성공한 후인 2011년에 11월에 두 사람은 결혼했고, 2012년 페냐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페냐보다 세 살 연하(1969년생)인 리베라는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로 진출했다. 틴에이저 시절, 집 근처에서 TV 드라마 촬영이 있어서 구경을 갔는데, 그곳엔 당대 최고 배우 중 한 명인 베로니카 카스트로가 있었다. 그녀는 리베라에게 미인 콘테스트를 권유했고, 리베라는 1987년 18세의 나이에 우승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뮤직비디오도 출연하고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던 그녀는 1989년부터 단역 배우 생활을 한다. 1990년대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던 그녀는 2007년 TV 시리즈 <정제된 사랑>으로 극중 캐릭터 이름을 따 ‘라 가비오타’(La Gaviota)라는 닉네임으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남편인 호세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자신을 배우의 길로 이끌었던 베로니카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프로듀서였지만 2008년에 이혼한다.
페냐와 리베라의 관계에 대해선 많은 구설수가 있었다. 매끈한 외모의 40대 페냐와 섹시한 30대 여배우의 만남. 사람들은 그들의 만남이 기막힌, 혹은 기묘한 타이밍에 이뤄졌다고 쑥덕였다. 아내와 사별한 지 1년 후 리베라를 선거 캠프로 끌어들인 페냐, 페냐의 선거를 돕는 와중에 남편과 이혼한 리베라. 부담 없는 싱글이 된 상태에서 그들은 결혼 전부터 한 쌍의 커플로 떠올랐고, 예상대로(?) 결혼했으며, 사람들은 프랑스의 카를라 브루니를 떠올리며 리베라를 ‘남미의 브루니’로 부르기도 했다.
안젤리카 리베라와 페냐 대통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14년 여름, 라틴 아메리카 버전 <마리 클레르> 7월호 표지에 안젤리카 리베라가 등장했다. 문제는 화보의 콘셉트였다. 퍼스트레이디의 기품 있는 모습보다는 섹슈얼한 이미지를 연출한 사진에, 보수층의 비난이 이어졌다. 함께 사진을 찍은 딸 소피아 카스트로도 비슷한 섹시 콘셉트였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여성의 힘을 드러내려는 과감한 포즈였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붙어 있는 ‘선전용 퍼스트레이디’ 이미지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혼란스럽고 경제 불평등으로 인해 가난한 민중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배우 출신 퍼스트레이디를 볼거리로 내세우는 건 우민화 정책일 뿐이라는 비판이었다.
결정타는 ‘하우스 스캔들’이었다. 화보 촬영으로 화제를 모은 지 얼마 되지 않은 2014년 11월, 멕시코시티의 ‘로마스 데 채풀테펙’ 지역에 있는 700만 달러짜리 저택의 소유주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집의 실소유주는 바로 영부인인 안젤리카 리베라.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정부의 고속 철도 사업권을 따낸 센트로 엔지니어링 소유로 되어 있었고, 따라서 재산 신고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일을 파헤친 저널리스트 카르멘 아리스테구이는 퇴임 후 사저로 쓰려고, 국책 사업을 이용해 대가로 받은 것이라고 폭로했다. 사업 규모는 37억 5000만 달러. 이 과정에 개입한 영부인이 700만 달러의 커미션을 챙긴 셈이다. 이에 안젤리카 리베라는 자신이 배우 시절부터 모은 돈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대학생들이 갱단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정부의 무능이 비판 받던 시점이기에, ‘하우스 스캔들’의 파장은 더욱 컸다.
내년이면 끝나는 대통령의 임기. 과연 퇴임 후 페냐와 리베라는 재임 시절의 부정에 대한 사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까? 2015년엔 페냐 대통령이 1000평방미터의 땅을 구입해놓고 신고하지 않았으며, 5곳의 부동산을 선물이나 무상 증여 방식으로 취득한 사실이 밝혀졌으니…. 수사를 면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