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재선 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는 “담배는 서민들이 주로 홧김에 또는 담배를 못 끊어서 피우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서민 주머니를 털어 국고를 채우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담뱃세 인하를 약속했다. 홍준표호가 출항하자 친홍계로 분류되는 윤한홍 의원은 ‘담뱃세 인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현재 4500원인 담뱃값을 2500원으로 내리고, 2년마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박근혜 정부 때 담뱃값을 올려놓고 이제 와서 다시 인하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뱃값은 2015년 1월 1일부터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됐다. 당시 여권은 세수 증대를 위한 꼼수 아니냐는 비판에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그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들린다. 기획재정부의 ‘담뱃값 인상 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담배 판매량은 전년 대비 23.7% 감소했지만 그해 7월부터는 평균 수준을 회복했다.
반면, 담뱃값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는 예상치를 넘어섰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8조 9132억 원의 세수를 더 확보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증세액인 5조 5600억 원보다 3조 3532억 원이 더 많은 액수다.
한국당은 노무현 정부가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려고 하자 반발한 바 있다. 박근혜 당시 대표는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건강증진기금이 엉뚱하게 사용될 수 있다” “흡연층이 주로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서민 가계 부담이 늘어난다”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을 내리는 데 효과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했었다.
그런데 또 다시 한국당이 담뱃값 인하에 나서자 정치권에선 ‘말 바꾸기’를 꼬집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당의 한 보좌진은 “담뱃값 인상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내리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허성무 경남대 초빙 교수 또한 “법안 목적 자체가 국민 건강이나 나라 살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증세에 ‘맞불’을 놓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가 담겨있다는 얘기다.
한국당 내부에서조차 자조적 목소리가 나온다. 윤한홍 의원과 함께 법안을 발의한 김성태 의원은 7월 27일 “한국당이 담뱃값 인하를 추진하더라도 결자해지와 자기고백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국민건강증진을 내세우면서 결국은 서민 증세로 귀착된 잘못된 정책적 판단에 대해서는 지난 정권의 집권 당 일원으로서 진솔한 자성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담뱃값 인하 법안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법안에 공동발의 서명을 했던 홍문종 의원은 “착오가 있었다”며 발의를 취소하기도 했다.
담뱃값 인하를 두고 자유한국당 투톱인 홍준표 대표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논란이 확산되자 “당론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가 담뱃값 인하를 밀어붙일 뜻을 내비치면서 이 문제가 향후 내홍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추미애 대표는 7월 26일 “한국당이 자신들이 올렸던 담뱃세를 이제 와서 내리자는 발상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담뱃세 인상 명분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을 실토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민주당도 속사정은 복잡하다. 박근혜 정부 때 민주당은 “국민 건강을 핑계로 서민 주머니를 턴다”는 논리로 담뱃세 인상에 강하게 반발했었다. 자칫 서민 감세에 반대하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담뱃값 인하를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담뱃값 인하를 받아들일 여건도 못 된다. 그럴 경우 수조 원대 세수 급감이 불가피한 까닭에서다.
허성무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세수 확대 기조로 가는 정부다. 그런데 담뱃값을 인하하면 세수가 줄어들지 않냐. 한국당은 정부 여당에서 담뱃값을 인하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서민을 위해 담뱃값을 인하하는데 정부 여당은 서민들을 위해 감세를 안 한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당의 논리적 모순을 꼬집기도 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담배를 끊는 사람은 많지 않고 오히려 국가만 배불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 대표적으로 잘못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한국당에서 주도해서 담뱃값을 인상해놓고 다시 감세하자고 하니까 세금 정책이 굉장히 희화화됐다. 대통령이 내놓은 부자 증세 맞불로 담뱃값 인하를 추진하는 것이 겉으로 봐선 정책성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 같지만 실질적인 내용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책 실패한 것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게다가 국민들 금연을 높이자고 시행한 법안인데 가격을 내리면 국민들에게 담배를 권장하자는 것인가.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고 평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