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한국과 가까운 일본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일본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KBO리그에 대해선 별다른 이슈도 움직임도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바로 ‘제2의 추신수’ ‘제2의 류현진’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한국인 스카우트로 활약 중인 3명의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본다.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한 팀에서 아시아 지역 담당 스카우트로 활약 중인 A 씨는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이어 2017년 WBC에서도 한국이 1라운드에 탈락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WBC대회 4강 진출과 준우승의 성적을 올렸던 이전에 비해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데에는 국제 대회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강력한 투수의 부재 때문이었다. 불펜의 오승환 외에는 선발로 내세울 만한 선수가 없었다. 장원준, 우규민, 양현종 등이 선발로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도 “김광현과 류현진을 이을 새 얼굴이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김 감독 의견에 공감한다. 내가 속한 메이저리그 팀에선 일본은 새로운 유망주들이 계속 발굴되는데 한국은 류현진을 능가할 만한 뉴 페이스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은 양키스의 다나카 마사히로, 텍사스의 다르빗슈 유에 이어 오타니 쇼헤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발투수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 않나. 투수 자원 육성 부문에서 한국의 야구 인프라가 일본에 비해 뒤떨어지는 면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역 메이저리거인 오승환과 추신수
지난해 KBO 리그에서는 무려 40명의 3할 타자가 배출됐다. 그만큼 KBO 리그 타자들의 파워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뛰어난 투수가 많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메이저리그 동부권 팀에서 일하는 한국인 스카우트 B 씨는 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릴 때마다 목동구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의 목적은 한 가지. 유망주 투수를 찾기 위함이다.
“스카우트 업무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한 일이 유망주 발굴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도 돌아다니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을 더 많이 챙겨봤다. 현재 고등학교 2, 3학년들 중에선 시속 145~150km의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꽤 있다. 어떤 선수는 구속과 제구도 뛰어나다. 제대로 성장하면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선수라 조심스레 접근해보면 학교 측에서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보다는 KBO리그 입단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도 메이저리그 진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한국에서 먼저 실력을 쌓은 후 일본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더 이상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고생하며 빅리그에 올라가는 과정을 밟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B 씨는 박병호, 김현수 등 KBO리그를 거쳐 빅리그와 계약을 맺은 선수들의 활약이 후배들한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요즘 고등학교 야구선수들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의 성공 신화를 꿈꾸는 선수들이 거의 없다. KBO리그에서 보다 안정적인 프로 생활의 기반을 다진 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옮겨가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아마추어 대형 유망주들의 해외 유출이 감소했다. KBO리그 입장에선 유망주들의 유출을 막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아메리칸리그에 속한 스카우트 C 씨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한국 유망주들이 미국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케이스가 후배들한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동안 숱한 선수들이 마이너리그를 마다하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두 고생을 각오하고 가장 낮은 레벨에서부터 야구를 시작했지만 빅리그에 올라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비현실적인 얘기인지를 느끼게 된 것이다. 한국 고교 야구 선수들과 가장 많이 인연을 맺은 팀이 아마도 시카고 컵스일 것이다. 시카고 컵스엔 최희섭, 류제국부터 이대은, 하재훈, 이학주, 정수민, 이시몬 등 많은 한국 선수들이 활약했지만 대부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일본 독립리그로 향했다. 추신수 외엔 마이너리그의 단계를 밟아 빅리그에 올라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에 아예 미국을 포기하거나 KBO리그를 거쳐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 아마추어 유망주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롤모델이 거의 없는 셈이다.”
지난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배명고의 김경섭 감독은 스카우트들의 의견에 일부 공감을 나타냈다.
“고교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보단 KBO리그에 더 관심을 두는 배경에는 미국에 도전한 선배들 중 성공보다 실패한 케이스가 많았다는 사실과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먼저 프로 경험을 쌓은 후 도전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산에 1차 지명된 우리 학교의 곽빈이란 투수도 미국 야구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 한국에서 배울 게 더 많다며 메이저리그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 야구의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당장은 제2의 추신수, 류현진이 나오기 어렵겠지만 이번에 프로에 입단할 예정인 고교 예비 졸업자들 중에 유독 유망주들이 많다. 그들의 활약이 분명 큰 흐름으로 이어져 한국 야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켜봐주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메이저리그 대신 KBO 선택한 나성범과 하주석 현재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가 누구일까. 최근 미국 매체 <스포팅뉴스>에선 ‘메이저리그를 빛낼 한국인 다음 주자로 나성범이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NC 다이노스에서 활약했던 에릭 테임즈가 메이저리그 복귀 후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는 상황이 KBO리그 선수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나성범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좌완투수로 활약했던 나성범은 최고 구속 150km대의 속구를 던지는 등 투수로 성장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선수로 지목됐었다. 그러나 나성범은 메이저리그 진출 대신 KBO리그를 택했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NC에서 최고의 선수가 된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NC 다이노스의 나성범 선수 그러나 최근 기자를 만난 나성범은 메이저리그 진출 계획이 수정되고 있음을 털어 놓았다. 그 배경에는 가족이 존재했다. “싱글이었을 때는 야구선수로서의 목표와 꿈을 앞세웠지만 결혼 후 아이가 있는 상황에선 나 혼자만의 욕심을 내세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족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고생할 생각을 하니 무조건 미국 진출만 고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FA 선수로 풀리려면 시간이 있으니 미국 진출 문제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나성범은 인터뷰 말미에 “박병호, 김현수 등 선배들이 메이저리그에서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조금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가족들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자리 다툼을 벌이며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인다면 과연 내가 갖고 있는 실력을 제대로 펼쳐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를 꿈꾸는 한화 이글스 하주석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프로에 입단한 케이스이다. 신일고 1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하주석은 아마추어 시절 텍사스, 시애틀, 시카고 컵스 등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하주석은 2012년 1라운드 1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최근 만난 하주석은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한국에 남은 걸 후회하지 않느냐”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잘하는 선수로만 알았다. 그러나 프로 와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은 선수인지를 깨달았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에 갔더라면 굉장히 큰 혼란을 겪으며 적응도 못하고 돌아왔을지 모른다. KBO리그에서 프로 경험을 쌓고 보완해서 나중에 기회를 노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 |
‘베이징 키즈’들, KBO 찍고 메이저리그 갈까 지난 6월 26일 한국야구원회(KBO)는 10개 구단 1차 지명자를 발표했다. 올해 1차 지명은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웠다. 145km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많아 ‘투수 풍년’이란 얘기가 나왔을 정도이다. 10개 구단에서 롯데 한동희(경남고 내야수), KIA 한준수(동성고 포수)를 제외하곤 8개 팀에서 투수를 1차 지명으로 뽑았다. 넥센이 서울권 최대어 휘문고 우투수 안우진(18)을 선택했고, 두산은 배명고 우완 곽빈(18), LG는 선린인터넷고 투수 김영준(18)을 낙점했다. 예전 3학년들에 비해 평균 구속이 4~5㎞ 이상 늘어난 선수들이 많다 보니 KBO리그 스카우트들은 “2008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의 금메달 획득을 보고 야구를 시작한 아이들이 지금 선수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고3이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그 스카우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일명 ‘베이징 키즈’들 덕분에 한국 야구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은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까. 특급 유망주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넥센 유니폼을 입은 휘문고 안우진은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투수로 꼽힌다. 한때 156㎞의 구속을 찍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청룡기대회 최고 영웅으로 떠오른 배명고 곽빈은 두산의 1차 지명 선수이다. 고등학교 1, 2학년을 야수로만 활약하다 고3 올라가면서 투수로 나서고 있다. 강속구도 빼어나지만 제구는 더욱 일품. 곽빈을 지명한 두산은 그의 무한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고 강백호는 8월에 열리는 2차지명 1라운드에서 각 구단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교급’ 투수로 꼽히는 그는 우투좌타로 1학년 때부터 투수, 포수, 1루수를 오가며 활약했다. 2015년 고척스카이돔 개장 첫 홈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차지명 유력 후보로 꼽혔던 덕수고 에이스 양창섭의 꿈도 메이저리거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 마이너리그가 아닌 KBO리그의 신인 선수로 프로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점이다. 베이징 키즈들 중 메이저리거가 탄생할 수 있을까. 배명고 김경섭 감독의 말처럼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