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17년은 아이돌 제작 예능의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Mnet <프로듀스 101> 시즌1을 통해 발굴된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올해 중순 시즌2가 배출한 11인조 보이그룹 워너원은 아직 정식 데뷔조차 하지 않았지만 ‘광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01명의 지원자 중 11명의 최종 멤버를 가르는 과정에서 이미 각 멤버들이 매력을 발산했고 기존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팬덤이 형성됐다. 데뷔 앨범조차 발표하지 않은 워너원이 고척돔에서 여는 콘서트는 일찌감치 매진됐고 암표는 최고 200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에 거래된다. 아이오아이가 8개월간 시한부 활동을 했던 것에 비해 워너원은 18개월 간 활동할 계획이라 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매출은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런 흐름 속에 각 방송사들도 발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KBS가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KBS는 오는 10월 ‘중고 아이돌 재기’를 콘셉트로 내세운 프로그램 <더 파이널 99매치>를 론칭한다. 오디션 열풍 속에 비슷한 내용을 담은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을 선보인 적이 있는 KBS는 <해피투게더3>를 연출한 박지영PD, <인간의 조건>의 원승연PD, <노래싸움-승부>의 손수희PD에게 이 중책을 맡겼다. 이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의 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소위 말하는 ‘대박’ 캐스팅 한 건만 공개돼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Mnet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워너원은 아직 정식 데뷔조차 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워너원 공식 페이스북 캡처.
MBC 역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아직까지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MBC 역시 현재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물밑 작업에 한창이라는 후문이다.
이런 가운데 <프로듀스 101>의 창시자이자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 등을 만든 Mnet 출신 한동철PD 역시 새로운 아이돌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얼마 전 YG엔터테인먼트로 둥지를 옮긴 한 PD의 아이템 역시 아이돌의 재기를 돕는 형식인 것으로 알려져 KBS <더 파이널 99매치>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을 예고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가라 불리는 Mnet도 경쟁 구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후속타를 준비했다. 현재 방송 중인 <아이돌학교>는 각 연예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을 주 대상으로 했던 <프로듀스 101>과는 달리 41명의 일반인 지원자 중 9명을 선발해 걸그룹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프로듀스 101>와 차별화된 점이 눈에 띄지 않고, 과도한 경쟁 때문에 여론과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지만 일단 화제를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이다.
아이돌 그룹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슈퍼스타K> 때와 같은 단순한 콘텐츠 싸움이 아니다. 이는 줄어드는 방송 권력과 점차 커지는 연예기획사 권력이 충돌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매니지먼트연합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등은 방송사들이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공동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과거 방송사와 연예기획사는 갑을 관계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스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보여줄 방법이 없다면 스타가 될 수 없었다. 결국 플랫폼이 부족한 시대에 방송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방송 금지’ 처분은 연예인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대중과 만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지상파 방송사 외에도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이 생겼고, 유명 포털 사이트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릴 기회가 많아졌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SNS까지 범람하니 방송 권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스타 권력은 커졌다. 시청률 혹은 클릭 수 싸움을 하는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는 대중을 모으는 콘텐츠가 필요해졌다. 거대 팬덤을 구축한 스타에게 무게의 추가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런 스타들을 바탕으로 세를 불린 연예기획사는 실력파 PD, 작가 등을 영입하면서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방송사를 거치지 않아도 콘텐츠를 보여줄 플랫폼은 많다.
이는 방송사를 자극했다. 결국 방송사들은 다시금 스타를 직접 키우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과거 공채 탤런트나 개그맨 등이 방송사의 지원 아래 성장했듯,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스타들은 일정 기간 해당 방송사의 전속 스타처럼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소속사가 없는 이들과는 매니지먼트 업무를 볼 수 있는 방송사의 자회사를 통해 정식 계약을 맺고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결국 이는 헤게모니 싸움이다. SM, YG, JYP 등 유명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이 더 빨리 빛을 보고 연예계에도 ‘개천에서 나는 용’이 없다는 편견 속에 방송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를 발굴해내는 것이다. 또한 연예기획사들은 방송사에서 트레이닝된 PD와 작가들을 활용해 자사 스타를 빛내 줄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맞불을 놓는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 싸움에서 이긴 세력이 향후 5~6년 간 방송가에서 주도권을 쥘 것”이라며 “정식 데뷔를 앞둔 워너원의 파급력이 클수록 이 싸움 역시 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