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대부분 보수단체들은 후원금이 크게 줄어들어 직원들을 줄이거나 임대료가 싼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의혹과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작성 등으로 기존 보수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진 탓으로 풀이된다.
자유주의 이념과 민주질서 수호를 표방하는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는 최근 상근직원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사회는 진보단체인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비교되는 대표적인 보수단체다.
바른사회 관계자는 “우리 단체 상근직원이 몇 명 줄었다느니 여러 말들이 많은데 상근직원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몇 명이 줄었는지 정확한 숫자를 외부에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면서 “현재 우리 단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존에 해왔던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때문에 사정이 나빠졌다고 콕 찍어 말할 수도 없다”면서 “우리 단체는 기업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보다는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어 왔는데 후원금이 많이 줄었다”고 답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관계자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단체 운영에 직격탄을 맞았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탈북자 단체는 고사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위원장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예위원장을 맡아 지난 2000년 설립한 탈북자 단체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의혹이 불거진 이후 탈북자 단체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당시 야당 의원들이 탈북자 단체에 후원한 기업, 독지가들 리스트를 만들어서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 이미 후원금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찍히면 정말 (정권이 후원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겠다면서 그나마 후원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가 떨어졌다”고 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탈북자 단체들이 북한 인권 운동 등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온 것 아닌가. 과거에는 그래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사무실 임대료나 운영비 정도는 걱정 안 해도 됐는데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은 거의 무일푼 봉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시대정신은 최근 심각한 자금난으로 격월간 <시대정신> 발간을 잠정 중단했다. 시대정신은 화이트리스트 사건의 당사자인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이 사무국장으로 근무했던 단체다. 시대정신 관계자는 “허 전 행정관이 몸 담았던 단체라고 해서 특혜를 받은 것이 전혀 없는데 마치 우리 단체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악의적인 보도에 시달렸다”면서 “시대정신을 발간하면서 광고를 실었는데 우리 단체에 광고를 실은 기업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가 되니까 기업들이 광고 내기를 꺼려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사태를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이나 독지가들의 후원금도 거의 중단돼서 책을 제작하던 부서 인원들을 모두 정리했다”고도 했다.
관제데모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어버이연합은 현재 개점 휴업 상태다. 어버이연합은 이화동 사무실에 입주한 지 1년 만에 또 다시 다른 지역으로 사무실 이전을 준비 중이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어버이연합의 향후 계획을 묻기 위해 접촉을 시도해봤으나 추 사무총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인사들도 현재 추 사무총장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버이연합과 함께 극렬한 친정부 시위에 앞장서 논란이 됐던 엄마부대도 최근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활동을 중단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끝까지 활동할 거다. 그런 것을 물어보려고 하면 대답하지 않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몇몇 보수단체 출신 인사는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한국당) 당 대표를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향후 한국당에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공식 직책을 갖고 당에 합류한 인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보수단체들이 궤멸 직전의 상황까지 몰린 것에 대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보수단체들이 건강한 시민단체로서의 역할보단 관제데모 등에 협조하며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왔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냐”면서 “보수단체들이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보단 정부와 기업 등의 지원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현재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보수단체들이 일반 시민들의 깨끗한 후원금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체질 개선에 성공하지 못하면 보수단체들은 또 다시 관제데모 유혹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보수단체의 한 관계자는 “시민단체 활동에 있어서는 오래전부터 (진보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수단체가 모두 문을 닫으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진보 진영의 독주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일부 보수단체가 문제를 일으켰지만 모든 보수단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나라에 진보 성향을 가진 국민이 50이면 보수 성향을 가진 국민도 50이 있다. 보수 성향 국민들을 대변할 단체들도 꼭 필요하다. 정치권이 나서서 보수단체 지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