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로고 사진
‘오보청’이란 오명 덕분에 기상청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상청은 체육대회를 할 때마다 비가 내린다”는 소문입니다. 기상청 직원들이 자신들이 참여한 체육대회 날씨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웃픈 얘깁니다. 기상청이 오보를 반복할 때마다 이런 질문은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곤 합니다.
구글 검색창 캡처 화면.
실제로 ‘기상청, 체육대회, 비’라는 키워드를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면 많은 게시물이 나옵니다. “기상청 체육대회 때 비가 왔다는데, 사실일까요”라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키워드 검색으로는 정확한 ‘팩트’를 알 수 없습니다. 과연 이 소문이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그래서 직접 <일요신문i>가 나섰습니다.
기상청은 최근 10년간 자체 체육대회를 총 3번 개최했습니다. 기자가 단독 입수한 ‘기상청 본청 및 지방기상청 야유회 및 체육대회 등 야외행사 현황’에 따르면 2007년 4월 28일 기상청과 소속기관 직원 약 820명은 (가족 포함) ‘기상가족 한마음 대축제’라는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장소는 ‘대전 대덕 연구단지 내 운동장’이었습니다.
기상청 제공 자료.
2011년 10월 27일 기상청은 족구대회를 열었습니다. 기상청 직원 약 80명이 기상청 본청(서울시 동작구) 내 테니스장에 모여 족구를 했습니다. 2013년 4월 27일, 기상청과 소속기관 직원 약 410명은 충남 계룡시 종합운동장에서 ‘기상청 한마음 화합의 장’이라는 체육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일단 “기상청이 체육대회를 열었다”, 여기까지는 ‘팩트’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기상청이 체육대회를 개최한 날, 정말 그날에 비가 왔을까요?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기상가족 한마음 대축제’가 열린 2007년 4월 28일, 이날 날씨는 ‘맑음’이었습니다. 족구대회가 열린 2011년 10월 27일도 ‘맑음’이었습니다. ‘기상청 한마음 화합의 장’이 열린 2013년 4월 27일도 ‘맑음’이었네요.
기상청이 직원들 체육대회 날씨를 맞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상청 관계자는 “국가 데이터 센터에 확인을 했어요. 문서로 남아있는데 우리가 체육대회를 개최한 날의 날씨가 언제나 맑았다고 나옵니다. 최근 10년간 체육대회 날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말을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과연 기상청이 제공한 자료를 믿을 수 있을까요? 기자는 ‘빅데이터’를 근거로 소문의 진위를 한 번 더 추적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국내 기후 자료를 살펴봤습니다. ‘1960년~2017년’까지 날씨 상태를 전부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먼저 2007년 4월 28일 ‘기상가족 한마음 대축제’가 열린 ‘대전 대덕 연구단지 내 운동장’엔 비가 내렸을까요? 날짜를 입력하고 지역에 ‘대전’을 입력한 뒤 날씨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일강수량은 ‘0’이었습니다. 정말 비가 내리지 않았네요. 2011년 10월 27일, 족구대회가 열린 기상청 본청(서울시 동작구)은 어땠을까요? 이날 날씨도 ‘맑음’이었네요.
2013년 4월 27일, ‘기상청 한마음 화합의 장’이 열린 충남 계룡시 날씨는 기후 자료에 나타나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가기후데이터 센터에 확인한 결과 이날 계룡시와 인근 대전광역시의 날씨는 ‘맑음’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상청이 자체 체육대회를 열 때마다 비가 내렸다”라는 말은 기상청 말대로 ‘거짓’이 맞습니다. 적어도 최근 10년 동안에는 그렇습니다.
기상청 직원들도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직원들 입장에선 그런 소문을 들으면 좀 억울합니다. ‘이제는 안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기엔 또 다른 빌미를 줄 수 있어 그동안 해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문의 진원지는 어디일까요? 기상청 체육대회와 관련된 유일한 기사는 1993년도 <연합뉴스> ‘기상청 금년 체육대회날에도 비’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1994년 5월 3일 기상청은 이날 예정대로 봄철 체육대회를 강행해 직원 250여명이 각 과별로 도봉산과 북한산, 관악산 등지로 산행을 떠났지만 오후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전 중에 서둘러 행사를 끝마쳤다고 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국내 기후 자료를 살펴본 결과 1994년 5월 3일엔 26.8mm의 비가 내렸습니다. 전날인 5월 2일 날씨는 ‘맑음’이었습니다. 이튿날 비가 쏟아진 것이지요. 기상청 관계자는 “비가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20년 전과 지금의 기상기술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비가 내린 기억은 없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기상청이 예보를 잘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마다 “기상청 직원들이 자신들의 체육대회 날씨도 못 맞춘다” 조롱 섞인 소문은 수십 년 동안 떠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소문이 퍼지는 걸까요?
황상민 연세대 전 심리학과 교수는 “기상청 체육대회 관련 소문은 가짜뉴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민들이 진짜로 믿고 싶은 뉴스입니다.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기상청 상황도 딱하다’라는 뜻을 담아 소문을 재미삼아 퍼뜨리는 것입니다. 기상청이 근본적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으면 가짜뉴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상청은 이번 장마철에도 어김없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충북 청주 지역의 시민들은 7월 16일 ‘물폭탄’ 세례를 받았지만 기상청의 강수량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기상청은 7월 말 수도권 지역에 내린 폭우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기상청의 날씨 예보가 틀리면 틀릴수록, 날씨를 못 맞추면 못 맞출수록 이런 ‘웃픈’ 소문은 끊임없이 기상청 직원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기상청 직원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