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분법’ 아닌 ‘삼분법’, 역사 왜곡 논란 불렀다
무엇보다 영화 <군함도>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역사 왜곡 논란’이다. 일제강점기 말기(1944년~1945년)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화 <군함도>는 일본에 의해 ‘지옥섬’ 군함도(하시마 섬)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기를 시놉시스의 큰 줄기로 삼고 있다. 시대 배경이 배경인 만큼 ‘반일’과 ‘국뽕’이 적절히 조화됐다면 어지간해서는 관객들의 반감을 살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봉 직후부터 불거져 지금까지 심각하게 불타고 있는 ‘역사 왜곡’ 논란에 제작사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제작 당시만 해도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라는 것이 제작사의 입장이다.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이지 않는 관객들에 대한 억울함을 비치기도 했다. 영화적 장치나 가상 설정에 대해서까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이야기다.
군함도에 OSS(미국 전략 사무국, 조선 광복군을 훈련시켰다) 독립군 소속 박무영(송중기 분)이 혈혈단신으로 잠입해 민족 배신자를 처단하고, 조선인들을 봉기시켜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뒤 생존자들과 함께 군함도를 탈출하는 것은 당연히 실제 역사와 다르지만 ‘대체역사물’ 영화에서는 용인된다. 절망적인 실제 역사에서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의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현실과 다르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다.
그러나 관객들의 역사 왜곡에 대한 또 다른 분노는 감독과 제작사를 정확히 겨냥한다. 류승완 감독은 개봉 전 언론시사회에서 “그 당시 나쁜 일본인만 있는 것도, 좋은 조선인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런 시대 배경을 다룰 때 이분법적으로 접근해 관객들을 자극시키는 방식은 왜곡하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과 일본이라는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객들이 <군함도>에서 가장 분노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친일파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절대 악’인 일본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것.
더욱이 류 감독과 제작사 측이 밝힌 제작 의도와는 달리, 실제 영화에서 이분법적 프레임을 성공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군함도>는 단지 선한 조선인(식민지)과 악한 일본인(제국주의) 사이에 완충재처럼 악한 조선인(친일파)을 넣어 단순하게 분류를 하나 확장시키는 선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완충재는 영화 내에서 보여주는 존재감이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악랄함에서 악한 일본인을 압도한다. 결국 일제강점기라는 배경 아래 군함도에서 벌어지는 선한 조선인과 악한 조선인의 군상이 스토리텔링의 주된 골자가 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류 감독은 “그런 인물들(친일파)이 영화 안에서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나온다. 친일에 대한 청산과 척결이 명백하게 있는데 이를 확대 해석해서 마치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데 그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면서 그들에게 부역했던 친일파의 문제를 단순히 일본 대 조선의 선악 구도를 위해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류 감독의 입장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군함도>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논란은 스크린 독과점이다. 개봉 첫날인 지난달 26일, <군함도>는 국내 개봉 영화 최초로 스크린 2000개를 돌파했다. 상영 횟수는 1만 174회에 이르러 점유율 55.2%를 기록했으며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3사 모두 <군함도>의 스크린 편중이 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매머드급 스크린 독과점에 우스갯소리로 “경의중앙선보다 <군함도>가 더 자주 방영된다”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전국 총 2758개의 스크린 가운데 <군함도>가 상영되는 곳만 2208개에 달한다. 교차 상영을 포함해 정확한 스크린 점유율은 37%로 첫날 관객 수만 97만 명을 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교차 상영 횟수가 늘어나면서 전체 상영 횟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렇다 보니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하고 하루 종일 <군함도>만 틀어주는데 1000만 관객이 넘지 않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나 대형 제작사·배급사에서 성수기마다 내놓던 ‘텐트 폴 무비(각 영화 스튜디오에서 내놓는 흥행 보증 수표의 간판 영화)’에도 적용됐던 바 있다. 실제로 <군함도> 직전까지 흥행 몰이를 했던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당시 최대였던 1965개의 스크린을 점유했다. 2016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역시 최고 1991개의 스크린을 점유해 비판을 받았으나 지금처럼 큰 논란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군함도>의 스크린 독과점만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앞선 <군함도> 영화 자체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 정서에 있어 가장 예민한 시대적 배경을 소재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원하는 방향대로 스토리를 풀지 못했다는 것은 흥행에 치명적이다. 여기에 관객이 매긴 작품의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다한 스크린을 점유하고 있다는 ‘괘씸죄’가 작용한 것이다.
‘스크린 2000개’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지난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아슬아슬하게 1965개로 1900선에서 멈췄음에도 다소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던 가운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한국 영화가 2000개의 스크린을 점유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CJ E&M이라는 거대 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비호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기록할 1000만 관객이 과연 영광으로 남을 지는 미지수다. 논란 속에서도 2일 기준 개봉 8일 만에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어 흥행 면에서 <군함도>는 거의 ‘신드롬’ 수준으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만들어진 ‘DIY 신드롬’에 대한 비판 역시 류승완 감독과 제작사가 함께 지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군함도>와 관련한 논란은 결국 “이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류승완 감독과 제작사는 “정당한 비판은 받아들인다. 그러나 전혀 다른 허위 사실이나 모욕적인 발언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바 있다.
그런데 개봉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군함도>와 관련한 비판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한 이용자가 “<군함도> 제작사 측으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게시글 삭제 요청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 이용자는 “유럽에서 아우슈비츠 영화가 나왔는데 나치만 나쁜 건 아니고 수용소 들어갔던 사람들도 지들끼리 나쁜 짓 했다는 영화 나오면 참 볼만하겠다”라는 트위터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 글이 <군함도>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대리 단체로부터 명예훼손 등 권리 침해로 인해 삭제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온라인상에서 퍼지면서 “대체 얼마나 찔리길래 관객이 남긴 일반 감상평까지 제작사가 직접 나서서 지우냐”며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제작사와 감독이 직접 비판 글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라며 이를 영화 관람 보이콧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유내강 측은 “오해가 있었다”라며 해명했다.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는 “제작사나 배급사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비판 글에 대해서 직접 제재를 가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요청하는 일은 결코 없다”며 “다만 제작에 참여한 분들에 대한 모욕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댓글에 한해서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댓글 모니터링을 하는 업체에게 부탁했는데, 업체 측의 실수로 댓글과 관련 없는 게시글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오해를 빚은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개봉 직후부터 예상치 못했던 논란과 극심한 비난에 직면한 강 대표는 남편인 류 감독과 아이들, 그리고 영화 제작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에 대한 모욕적인 댓글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들까지 이번 영화로 힘겨워하고 있다. 어른들의 일로 아이들까지 고통 받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며 “다만 정당하고 자유로운 비판을 제재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런 댓글이나 게시물을 쓰신 분들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결국 오해로 인한 해프닝으로 종결됐지만 네티즌들 역시 일방적인 비난과 비판의 경계를 지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