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 다른 말로 생리. 여성이라는 성을 갖고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월례행사입니다. 한 달 중 1주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여성들은 월경을 하며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일부 여성들이 월경을 ‘피임신성자궁내막출혈증’ 또는 ‘월간피바다’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리양이 제발 좀 줄어들었으면…’하는 바람은 만국 여성들의 공통 희망사항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급격하게 생리양이 줄어든 것을 느꼈다면 내 몸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여성의 몸에 ‘적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특정 샴푸를 썼더니 머리카락이 잔뜩 빠진다고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그런데 A 생리대를 쓸 때마다 월경량이 줄어든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SNS와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A’ ‘#생리양’을 검색하면 ‘A 생리대를 사용하고난 뒤 생리 양이 많이 줄었다’는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A를 사용한 뒤 생리 양이 마지막 날만큼 줄어들었다”, “생리 양이 줄었길래 확인해보니 A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A 생리대에서 다른 제품으로 바꾸니 생리 양이 돌아왔다” 등 대부분 비슷한 경험담입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물론 모든 네티즌들이 같은 주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A 제품을 사용했음에도 생리양에 변화가 없었다는 여성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타사 제품과 관련해 생리양이 줄었거나 늘었다는 글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을 미뤄봤을 때 A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들 중 다수가 월경량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A 생리대를 제작하는 B 제조사는 <일요신문i>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사실에 대해 인지하고는 있다. 최근 이와 관련된 글이 온라인에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A 생리대는 타사 제품에 비해 흡수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B 사에 따르면 패드형 생리대는 크게 커버(탑시트)와 뒷커버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기서 흡수층은 탑, 코어(흡수체가 있는 곳), 방수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A 생리대 흡수체의 흡수력이 타사 제품보다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코어 부분에 많은 혈을 담을 수가 있어서 패드 뒷면에도 생리혈이 비치는 정도가 적다는 것이 제조사 B 사의 설명입니다.
즉, 몸에서 나오는 생리양이 줄어든 것은 착각일 뿐 양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비범한 생리대는 그 혈이 나오는 족족 무서운 속도로 흡수해버리는 셈입니다. 넘치거나 새 나가는 생리혈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월경량이 줄었다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트위터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수긍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인 백 아무개 씨(39·여)도 “말도 안 된다. (그런 논리라면) 다양한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흡수체에 따른 차이점을 느꼈어야 했는데 A 제품을 사용할 때만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문제가 있다”며 “이를 사용한 다수가 흡수가 잘 되는 것을 ‘생리양이 줄었다’고 착각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흡수체가 좋아서 오래 사용해도 뽀송뽀송하다고 느끼면 좋은 쪽으로 입소문이 날텐데 생리양이 줄었다고 소문이 났다”며 “신체적 변화와 문제는 본능적으로 나 자신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일부 네티즌들은 ‘양’만 줄어들 뿐이 아니라 ‘기간’도 짧아지기 때문에 흡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한은주 충북대학교 패션디자인정보학과 박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 흡수체가 좋아서 흡수를 해버려 육안으로 혈액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성분에 문제가 있어서 월경양에 감소가 있었을 수도 있다”며 “생리양 뿐만이 아니라 생리 기간이 줄었다면 이는 성분을 의심해봐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월경양 뿐만이 아니라 월경 기간까지 줄어든 여성들이 많은 점을 미뤄봤을 때, 해당 제품의 성분이 여성의 몸에 유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혹시 흡수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B 사가 공개한 흡수체 중 펄프 부분에는 천연펄프(우드 셀룰로오스 섬유)와 순면섬유, PE/PP 섬유, PE/PET 섬유, PP 섬유가 들어갑니다. 이들은 타사 제품에도 들어가는 성분입니다. 흡수체 중 고분자흡수체(SAP)는 관리기준(1000㎎/㎏)보다 적은 수치(500㎎/㎏ 이하)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결국 흡수체 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B 사의 주장대로라면 그 ‘뛰어난 흡수량’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B 사의 A 생리대 중 C 제품(A 생리대 모델 중 하나)과 두 타사의 제품, 총 세 제품의 흡수능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A 생리대의 C 제품 흡수능은 D사의 E 제품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A 생리대 C 제품이 E 제품보다 흡수능력이 두 배나 더 뛰어나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한편, F사의 G 제품은 A 생리대 C 제품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G 제품의 소수점 첫째자리가 조금 더 높긴 하지만 두 제품 모두 근사한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A 생리대와 G 생리대, 이 두 제품이 같은 흡수능을 나타낸다면, A 생리대를 사용하고 ‘월경량이 줄어든 기이한 현상’을 느낀 여성들은 G 생리대를 사용하고도 같은 경험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온라인에서 ‘G 생리양’ ‘G 월경양’을 검색했을 때 이와 유사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B 사 측에서 제공한 흡수량 데이터에 오류가 있는 건 아닐까요? B 사는 검체(생리대 패드) 위에 23℃의 물 1500㏄를 비커로 30초간 붓는 방법으로 흡수량을 측정했습니다.
이와 관련, 한은주 박사는 “흡수량 실험은 물이 아닌 동물 혈액으로 해야한다. 물로 했을 경우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실제 흡수량과 다르게 흡수량이 낮게 측정되거나 높게 측정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식약처 ‘의외약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 중 일부.
하지만 B 사 측은 “흡수체가 물과 동물 혈액 사이에서 다른 결과를 나타내는 건 알고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시한 ‘의외약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에 따라야하기 때문에 동물 혈액이 아닌 물로 실험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동물 윤리 등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물을 사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식약처에서 제시한 ‘생리혈의 위생처리용 위생대’의 흡수량 시험 방법은 동물 혈액이 아닌 물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즉, B 사의 실험 결과는 식약처 기준에 따르기 위한 것일 뿐 순수한 흡수량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 방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따라서 A 생리대 흡수량 결과 수치만 보고 “흡수력이 좋아 혈액을 빠르게 흡수해버린다”라고 단정짓는 것은 조금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어떤 여성은 A 생리대 사용 후 줄어든 월경량을 보며 이유 모를 공포에 떨고있을 수도 있습니다. B 사는 소비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보다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하지 않을까요.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