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정은 인기탈랜트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게 연기자들의 삶이었다. 오후 늦게 단역배우 몇 사람과 함께 촬영장 근처의 허름한 국수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게 됐다. 그중 한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오늘 참 좋았어요. 지하철 역원역할을 하는데 대사가 한 마디 있는 거예요.”
인기 없는 재연드라마였다. 그의 역할은 시청자가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는 한마디의 대사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는 지금도 무명이지만 원래부터 연극을 좋아하고 무대에 서고 싶었었다고 했다.
배우들에게 무대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 같았다. 명배우들의 얘기도 들었다. 그들의 평소 모습은 가뭄 속에서 시든 쑥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다가도 대본이 오고 역할을 맡으면 비를 맞은 식물처럼 생기가 솟는 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대는 즐거움이고 삶의 보람이었다. 대사 한마디 있는 그 작은 단역을 맡아 즐거워하는 배우를 보면서 나는 내가 수시로 올랐던 법정이라는 무대를 어떻게 여겨왔나 되돌아보았다.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올라야 하는 답답하고 지겨운 장소라고 생각했다.
높은 의자에 왕같이 앉아 있는 주인공인 판사를 보면서 조역 같은 나의 역할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올라야 할 화려한 무대는 따로 있을 것 같았다. 선거에서 당선되어 오르는 의정단상이 진짜 무대 같았다. 언론의 화려한 스폿 라이트를 받는 자리가 아니면 무대가 아니라고 여겼었다.
무명단역배우의 한마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변호사인 내가 일상같이 서 왔던 법정은 대단한 무대였다. 합판과 각목에 페인트칠을 한 엉성한 연극무대가 아니었다. 금빛을 튕겨내는 법원마크와 태극기가 꽂힌 웅장한 배경 앞에 판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피고인과 증인들이 출연하는 거대한 인생드라마가 전개되는 공연장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작가이자 연기자이고 연출까지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내가 말해야 할 대사를 쓰니까 작가였다. 방청객과 판사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였다. 가슴만 두드릴 뿐 자기의 감정을 표현 못하는 죄인들이 많았다.
그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내뿜게 만드는 연출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 대사에 감사하는 단역배우의 말을 들으면서 망각했던 나의 보물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 나는 법정에 설 때 마다 감사했다. 그리고 한마디 말을 할 때 마다 그 속에 나의 영혼이 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모세가 신발을 벗은 곳 같이 성스러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소중한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단이 그의 무대였다. 의사는 수술실이 그의 화려한 무대다. 요리를 만드는 쉐프는 주방이 공연장이다. 각자 자기의 일터가 무대인 것이다. 그 단역 배우 같은 마음만 있다면 이 지구별은 아름다운 무대일 것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