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깃든 유산은 곧 예술입니다. 미래유산이 예술의 가치를 간직한 이유입니다. 일본 최고의 화가 오카모토 타로는 “예술은 폭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래유산도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요신문i>는 ‘서울미식가’의 맛집을 둘러봤습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주에는 ‘서울예술가‘들이 즐겼던 문화와 예술을 체험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옛날 그 시절, ‘서울 예술가’들은 어디서 문화를 즐겼을까요. 어떤 책을 읽고 사색에 젖었을까요.
구하산방 전경 사진(왼)과 구하산방으로 들어가는 본지 기자. 최준필 기자
기자가 처음 방문한 장소는 ‘구하산방’입니다. 구하산방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입니다. 종이 붓 먹 벼루의 문방사우와 서화재료를 파는 필방입니다. 구하산방은 질박한 모습을 간직한 채로 인사동 어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석채 사진
구하산방에 들어선 순간 오색빛깔의 가루들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구하산방의 한 점원은 “돌가루들은 석채입니다. 석채는 돌가루로 만든 물감 분말이에요. 화가들은 아교에 돌가루를 풀어서 사용합니다. ‘석채로 그림을 그리면 천년을 간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석채를 한 번 확대해볼까요? 곱게 빻은 석채의 빛깔은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석채 사진
구하산방은 1913년 일본인 상인이 개업한 가게였습니다. 우당 홍기대 선생이 1935년에 점원으로 들어가 광복 이후에 인수한 필방입니다. 구하산방을 현재 운영 중인 홍수희 대표는 홍기대 선생의 조카입니다.
홍 대표는 “1970년부터 제가 가게를 맡았어요. 당시 문방사우를 살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박수근 천경자 등 유명한 화가들이 자주 드나들었어요. 붓을 가늘게 만들어달라고 하면 기술자들에게 부탁을 해서 화가들에게 팔았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구하산방의 대표 상품은 ‘붓’입니다. 인사동 필방 사이에선 “품질 좋은 물건만 가져다 놓아 고종, 순종도 구하산방 붓을 썼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구하산방의 대표상품 ‘붓’.
빽빽하게 전시된 붓들이 보이시나요? 오른쪽 사진에 있는 붓 가격은 무려 50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장인들의 기술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100년 전 그 시절, ‘서울 예술가’로 변신하기 위해 붓을 들었습니다. 붓을 들고 ‘최선재’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서예 연습 중인 본지 기자.
마치 조선시대 ‘선비’로 돌아가 임금님께 서신을 쓰는 마음으로 붓을 꾹꾹 눌러 글씨를 썼습니다.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 본지 기자.
제 이름을 썼으니 이제는 다른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엔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 본지 기자.
아주 얇고 가는 붓으로 ‘빽투더’를 썼습니다. ‘빽’자가 흐려지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글씨가 쓰인 종이는 물로 붓글씨를 쓰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중국에서는 이 종이를 ‘신기포’라고 부릅니다.
기자가 쓴 ‘최선재’와 ‘빽투더’라는 글씨가 차례로 없어지면서 손님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구하산방의 매력이 흠뻑 취했을 무렵 기자는 기묘한 물건을 또 찾았습니다.
거대한 벼루를 들려고 하는 본지 기자.
바로 거대한 벼루입니다. 벼루의 무게는 상당했습니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벼루는 크기도 어마어마했습니다.
구하산방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배 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술가는 배고프다”라는 말이 있지만 근처에 있는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호남집 전경. 최준필 기자
‘호남집’ 간판이 보이시나요? 종로 5가 동대문시장 안쪽엔 연탄불 생선구이 가게가 몰려 있는 골목이 있습니다. 이곳 역시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유산입니다.
생선구이 원조로 알려진 ‘호남집’을 포함해 ‘삼천포집’ ‘전주집’ 등 생선구이 가게가 빼곡히 들어찬 장소입니다. 은은한 생선구이 냄새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골목입니다.
호남집 생선구이 초벌구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갈치, 삼치, 고등어들의 속살이 보이시나요? 가게 입구에 들어선 순간 연탄불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생선들이 유혹의 손짓을 보냈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고등어구이와 삼치구이를 주문했습니다.
고등어구이와 삼치구이 한상.
드디어 음식이 나왔습니다. 푸짐한 생선구이와 정갈한 반찬, 10첩 반상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기자는 부드러운 생선살을 흰 쌀밥에 올려 먹고!
생선구이를 먹는 본지 기자.
손으로 고등어 한 마리를 집어 또 먹고!
생선구이를 먹는 본지 기자.
또 먹었습니다. 자, 이제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니 서울 예술가들의 발걸음을 뒤따라가야지요!
공씨 책방 전경. 최준필 기자
큼지막한 초록색 간판과 잔뜩 쌓인 책이 보이시나요? 44년 역사를 지닌 ‘공씨책방’입니다.
공씨책방은 고 공진석 씨가 1972년 경희대 앞에서 처음 문을 연 국내 1세대 헌책방입니다. 지금은 신촌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공씨책방 내부 모습.
공씨책방엔 소설책과 만화책 등 약 10만 권이 15평 남짓한 공간에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기자의 나이보다 더 많은 세월을 품었을 듯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1970년대 출판된 잡지에 실린 비누 광고.
1970년대 잡지의 광고 사진입니다. ‘예뻐진 얼굴보고 다시 찾는 크림비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로로 쓰인 문장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선고등법원이 발행한 고서적.
이 책은 언제 나왔을까요?
책에 쓰인 한자를 풀이하면 ‘조선고등법원(朝鮮高等法院)’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대정(大正) 10년, 9월 25일 발행’라는 문구도 보입니다. ‘대정 10년’은 1921년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연도 표기 방식입니다. 책의 역사가 약 100년 가까이 됐다는 뜻입니다.
성문종합영어책.
‘성문종합영어’라는 제목의 책도 보였습니다. 성문종합영어는 1970~80년 당시 대학생들의 ‘영어 바이블’로 불렸던 참고서입니다. 성문종합영어책의 눅눅한 종이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공씨책방엔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씨책방 안 LP 전시 사진.
LP판입니다! 공씨책방엔 1984년 데뷔한 ‘국민가수’ 이선희의 1집 음반이 있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LP판들이 가득했습니다.
공씨책방은 최근 폐업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지난해 바뀐 건물주는 월 130만원이던 임대료를 300만원으로 올리지 않으면 건물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고 공진석씨 처제 최성장 씨는 “임대료가 세 배나 올랐어요. 지금은 건물주가 명도 소송을 걸어서 재판 중입니다. 속상한 마음뿐입니다”고 전했습니다.
공씨책방에서 책을 읽는 본지 기자.
기자는 최 씨의 말을 듣고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어 책방 이곳저곳을 살펴봤습니다.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한 공씨책방이 없어진다니요?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이번 시리즈엔 ‘서울 예술가’ 답게 가수 이선희의 히트곡 가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아름다운 사연들
구름 속에 묻으리 모두 다 꿈이라고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그날이여.“
서울 예술가들이 다시 환생한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