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3일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검경 수사와 비교되는 공정위 조사 기간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독점 및 불공정 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설립된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자 합의제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을 포함한 경제법 위반 사항에 대해 조사를 전담하고 있다. 또 공정위만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고발을 할 수 있다. 공정위를 제외한 주체가 고발을 하게 되면 기업인의 경제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미스터피자에 대한 조사를 2년 전부터 진행해왔지만 검찰은 2주 만에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죄의 정도가 무겁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특별히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뒤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는 과정에 이르기 전에 검찰이 예외적으로 고발 요청권을 행사한 것이다. 검찰이 수사를 서두른 데는 정권 교체 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갑질 처벌 강화 기조가 한몫했다는 전언이다. 정 전 MP그룹 회장이 구속되면서 검찰과 경찰 내부에서는 기업 갑질 관련 범죄 첩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정위가 장시간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갑질 의혹 기업들의 사례가 있다. 공정위는 조사 내용을 두고 법에 저촉되는지에 대한 심의와 의결을 거친다. 보통의 갑질 조사는 개시 이후 1~2년이 걸려 가맹점주들의 피해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3월 가맹점주들을 울린 바르다김선생은 당시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위에 신고돼 큰 파장을 불렀지만 2년째 조사만 진행되고 있다. 공정위 심의와 의결이 있기 전까지 어떤 혐의가 인정됐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점주들은 갑질 피해에 대한 회복이 전혀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가맹계약서와 운영매뉴얼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당한 점주들은 공정위 조사 결과만을 기다리다 1년만인 지난달에야 다시 가맹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본사는 가맹점주들이 개별적으로 담배진열대 임차계약을 맺던 것을 단체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점주들은 개별 협상을 하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사례는 불공정거래로 공정위에 신고가 접수됐지만 3년 동안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 피자헛과 피자에땅의 경우에도 본사의 불공정거래와 관련 공정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정종열 가맹거래사는 “공정위 가맹거래과 직원이 8명뿐이기 때문에 공정위 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지기 힘들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며 “이들은 불공정거래 조사뿐만 아니라 정책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는데 이들이 살펴봐야 할 가맹점은 30만 개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에 서울시, 경기도와 같은 광역지자체 경제과에서 이를 분담해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갑질 분명한데 현행법 저촉 안돼
신선설농탕이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는 부분은 다소 예상 밖이었다. 지난 1981년 기사식당으로 시작한 신선설농탕은 27년 만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했고 지난 2007년 쿠드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또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때 대표적인 중소기업으로 지목돼 만찬행사를 맡으며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맹본부에서 10년 계약이 만료된 가맹점들을 상대로 순차적으로 계약을 해지하자 가맹거래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주들의 불만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신선설농탕 가맹점을 10년째 운영하던 A 씨는 계약이 끝나기 세 달 전에 서면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A 씨는 “나를 포함한 다른 점주들은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이 얼마 안 남았을 때가 돼서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10년 동안 가맹점을 관리했는데 세 달 만에 다른 것을 준비할 여력이 없다”며 “가맹본부에서 10년 계약을 보장해주는 가맹사업법을 역이용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어 “기껏 10년 동안 열심히 일해 단골을 만들고 운영 노하우가 생겼는데 계약해지를 당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13조 2항에 따르면 가맹점사업자의 계약갱신 요구권은 최초 가맹계약기간을 포함한 전체 가맹계약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가맹계약을 통상 2년 내지 3년 단위로 체결하고 최대 10년까지 갱신할 수 있다. 계약을 해지당하는 점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이지만 이 법 조항 때문에 되려 점주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 가맹본부에서 10년이 됐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또 일부 점주들은 새롭게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신선설농탕의 보복출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라고 주장했다. 가맹점에서 개인음식점으로 바꿔 영업을 시작한 B 씨는 200m 거리에 신선설농탕이 새로 들어와 설렁탕을 싼값에 팔고 있으니 속수무책이라고 한탄했다. 다른 점주 역시 그동안 관리했던 단골손님들도 다 빼앗겼다고 하소연했다. 이 점주는 “인근에 신선설농탕이 들어와 설렁탕으로는 아무래도 프랜차이즈와 경쟁이 안 될 것 같아서 돼지국밥으로 메뉴를 바꿨다”며 “단골손님이 꽤 많아서 이를 믿고 메뉴도 바꾼건데 본사에서는 이미 기존 지점이 폐업했으니 인근 다른 가맹점을 찾아달라는 메시지까지 손님들에게 다 보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기존 가맹점의 폐점 안내가 나와 있었다. 한편 쿠드 관계자는 “10년 동안 가맹점이 관리하던 영업점들의 고객 서비스가 좋지 않다는 의견을 많이 들어서 이제 본사가 직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며 “보복출점은 말도 안 된다. 본사 직원이었던 사람이 개인적으로 가맹점을 낸 것이지 본사 차원의 의견이 개입된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낯설지 않은 갑질이다. 10년 동안 가맹계약을 유지할 수 있게끔 법조항이 개정된 시점은 2007년이다. 개정된 지 10년이 넘어가는 올해 특히 많은 가맹점주들이 가맹계약 해지로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정종열 가맹거래사는 “10년 전에 가맹계약 보장이 없었을 때 가맹점 매출이 잘 나오면 본사에서 직영화를 하려고 했던 문제가 있었고 이 때문에 10년 보장이 됐던 것”이라면서도 “오랜 기간 가맹점을 관리하면 직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본사 측에서도 가맹점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유리해 가맹계약을 해지하기보다는 계약조건을 변경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점주들은 그동안 당했던 갑질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이들은 가맹계약대로 식자재뿐만 아니라 주물, 볼펜, 냅킨까지 신선설농탕 글자가 새겨있는 물품을 사다 썼다. 점주들은 “원가율이 낮아 부당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얼마나 부당한지 계산을 해볼 여력이 없었고, 가맹계약을 지키기 위해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점주들이 공정위에 신고한 상태다. 그러나 세부적인 불공정 거래 정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지 않는 이상 점주들이 내역을 확인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공정거래법, 노동법 위반 혐의로 조사가 진행되더라도 시정조치는 과징금을 내는 정도에 그친다는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불법행위일 경우 민사재판을 통해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사재판은 시일이 길어져 영세한 자영업자들에게 여전히 불리하다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