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주의를 표방하는 동호회 회원들이 충북 제천의 한 시골마을 펜션에서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돼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마을 뒷산에 위치한 펜션 전경. 최준필 기자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찾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 묘재마을은 누드펜션 문제로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마을 초입에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이날 오후에 있을 ‘펜션 폐쇄’ 촉구 집회 준비 때문이다. 마을 반장 박운서 씨(82)는 “누드펜션인지 뭔지 마을 망신 다 시킨다. 이번에야말로 누드족들 쫓아낼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문제의 펜션은 마을 뒷산에 위치한 곳으로 마을 주민들의 거주지와 약 15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가는 길목엔 “농촌정서 외면하는 누드펜션 물러가라”는 플래카드와 “너희집 가서 맘껏 벗어라”는 문구가 바닥에 쓰여 있었다.
나무 사이로 가려있던 펜션이 눈앞에 나타날 즈음 또 다른 주민을 만났다. 바로 펜션과 가장 가까운 집 주인 김원중 씨(59)다. 김 씨의 집은 펜션과 불과 50m 떨어진 곳이다. 마침 김 씨 옆에 있던 삽살개도 외지인의 인기척을 느낀 듯 수차례 짖어댔다. 김 씨는 “우리 집 개가 목이 다 쉬었다. 주말이면 꼭 이 길을 따라 (누드족들이) 올라가니까”라며 “집 안에 있어도 개가 짖어대면 ‘아 이 사람들(누드족) 또 왔구나’ 했다”고 전했다.
김 씨의 집을 지나 도착한 펜션의 외관은 여느 펜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49㎡ 규모의 이 펜션은 2층 규모에 주변 경관을 훤히 볼 수 있는 발코니와 뒷마당의 취사·물놀이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듯 창문과 출입문은 굳게 닫힌 채 먼지가 쌓여 있었고 우편물보관함엔 세금 관련 고지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건물 옆엔 파란 천막이 설치돼 있는데 이는 마을 주민들이 동호회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천막이 위치한 곳은 펜션 앞집 주민 김 씨의 땅이다.
총 12가구 30여 명이 살고 있는 묘재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60~80대 노인들이다. 이 가운데 약 60%가 천주교 신자다. 이 마을에서 8㎞ 떨어진 곳엔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든 ‘배론성지’가 위치해 있다. 또 이 마을엔 조선말 천주교 순교자인 남종삼 성인의 생가도 있다.
지난 3일 오후 충북 제천시 봉양읍의 누드 펜션이 위치한 마을 도로에 누드 펜션 폐쇄를 촉구하는 글귀가 적혀 있다. 최준필 기자
마을 반장 박 씨는 “주말마다 벌거숭이 남녀가 섞여 마당에서 춤추고 술 마시고 게임하는데 시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이 아무개 씨도 “조상 묘를 가려면 펜션 옆 산길을 지나야 하는데 갈 때마다 눈꼴사나워 혼났다”며 “조상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참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가 되자 봉양읍 주민 30여 명이 묘재마을 진입로에 모여 ‘누드펜션 즉각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주도한 윤기원 봉양읍 북부노인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누드펜션이라는 게 외래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이해가 안 갈 것 같아 설명하자면 남녀가 알몸으로 함께 자연주의라는 이유로 산책을 하거나 집밖을 알몸으로 활보하는 것을 말한다”며 “이는 신성한 윤리문화, 윤리도덕을 망각하고 있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문제의 펜션은 지난 2008년 문을 열었다가 2010년 한 차례 주민들과 갈등을 겪으며 영업을 중단한 바 있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다시 회원들의 발길이 이어져 동네를 발칵 뒤집어놨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펜션은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동호회 회원들이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펜션은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전화상담도 하지 않는 등 운영을 중단했다. 이 펜션 등기부 정보를 조회한 결과 펜션 소유주는 40대 여성으로 확인됐다. 등기상에 나타난 이 여성의 주소를 다시 추적한 결과 50대 남성 김 아무개 씨가 소유주로 나타났다. 이 남성은 지난 2009년 한 방송에 출연해 나체주의 동호회의 존재와 필요성을 역설했던 인물로 펜션의 실제 운영자다. 당시 김 씨는 “순수 나체주의 표방하며 성적 요소와 연관짓는 시선을 거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씨가 운영하는 동호회 소셜 미디어를 보면 ‘순수 자연주의’를 외치는 김 씨의 주장에 의문이 가는 상황이다. 현재 인터넷엔 동호회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과거 글과 사진 등이 끊임없이 전파되고 있다. 주방에서 두 명의 벌거벗은 여자와 함께 상의를 입은 남자 한 명이 설거지하는 사진부터 나체로 배드민턴을 치고 남녀가 손잡고 캠프파이어 하는 사진까지 운영자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퍼졌다. 아울러 수위 높은 음란 메시지도 버젓이 올라와 있다. 현재 이 계정은 운영 중단된 상태다.
마을 주민들도 “남자들은 50대 정도 돼 보이고 여자들은 누가 봐도 20·30대 젊은 사람들이 함께 벌거벗고 담배 피고 술판 벌이고 하는데 의심을 안 할 수 있나”라고 입을 모았다. 펜션에 들어가본 적이 있다고 밝힌 마을 주민 A 씨는 “집 수리 때문에 며칠 신세질 수 없을까 하고 펜션에 문의하러 들어가본 적이 있다”며 “근데 방 구조가 흡사 업소같이 돼 있어 일반적인 집 구조와는 확실히 달라 그냥 나왔다”고 전했다.
3일 오후 충북 제천시 봉양읍 한 마을에서 봉양읍북부노인회 회원과 마을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누드펜션’을 즉각 폐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한편, 이날 보건복지부는 누드펜션에 대해 ‘미신고 숙박업소’라는 해석을 내놨다. 제천경찰서가 지난달 31일 다세대 주택으로 등록된 이 시설을 미신고 숙박업소로 처벌할 수 있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한 데 따른 결과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 펜션은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해 있었고 그 이후엔 일반 다세대주택 건물로 등록했을 뿐 숙박업 등록은 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회원을 모집·운영해왔다.
복지부 조사 결과 숙박업은 불특정다수인(공중)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펜션은 정회원에 한해 회비를 걷어 숙박 시설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던 것이다. 누드펜션 운영자는 동호회 회원을 모집하며 가입비 10만 원과 연회비 24만 원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이 펜션 정회원 자체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불특정다수인인 ‘공중’으로 볼 수 있고 숙박료를 별도 징수하지 않아도 정회원 가입비 및 연회비에 숙박료가 포함된다고 봤다.
복지부의 결정으로 제천시는 공중위생법 위반 혐의로 펜션 운영자를 고발조치할 방침이다. 현행법상 공중위생영업을 하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시장 등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제천시 관계자는 “숙박업소 신고 대상이라는 복지부 입장에 따라 펜션 운영자를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라며 “숙박업을 하지 말라는 계도장이나 안내문도 발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누드펜션은 폐쇄된 상황에서 운영자가 이를 매각하려 한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에는 인근 주민과 매매를 두고 협의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매매가를 두고 이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펜션 매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주민은 “2010년에도 주민들하고 갈등을 겪어 영업을 중단하고 펜션을 판다고 그러더니 다시 영업을 한 것”이라며 “이젠 확실한 법적 처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