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안 전 대표는 “안중근 의사의 심정으로 당을 살리겠다”며 승부수를 던졌다. 전대 출마를 통해 당 입지를 구축, 내년 지방선거를 넘어 차기 대권을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이로써 국민의당 전대 구도가 출렁이는 것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정계개편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마지막까지 반신반의했다. 안철수 전 대표 당권 도전설이 유력하게 나돌자 정치권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국민의당 의원은 기자들에게 “누가 봐도 악수를 두는 것인데, 설마 출마하겠느냐. 안 전 대표가 이제 ‘초짜’는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8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결코 제가 살고자 함이 아니다.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7월 12일 선거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대선 패배에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안 전 대표가 당분간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최측근들도 여러 차례 “적어도 올해는 의정활동에만 힘을 쓸 것”이라며 여기에 힘을 보탰다. 그랬던 안 전 대표가 갑자기 당 대표 도전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안 전 대표는 기자회견 직전까지 당 관계자들을 만나며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안계로 꼽히는 박선숙 의원과 초선의원들, 박지원 전 대표, 이미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천정배 의원 등과 연이어 회동했다. 이들은 안 전 대표 출마를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노갑·정대철 상임고문 등 당 원로들은 박지원 전 대표를 통해 “출마하면 당이 깨질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도 보냈다. “당도 죽고 안철수도 죽는다”며 출마를 반대하는 인사도 있었다.
이는 안 전 대표가 조기에 등판할 경우 명분과 실리 그 어느 것도 챙기지 못할 것이란 우려와 맞닿아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일 뿐 아니라 제보 조작 사건의 최종 책임자이기도 한 안 전 대표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다고 나서는 것 자체부터가 성급하고 무모하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지금과 같은 기류에서 전당대회에 출마한다고 당선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마저 대두됐다. 앞서의 국민의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당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 당이다. 안 전 대표는 당의 창업주이자 대주주다.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에게조차 졌고, 또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제보 조작으로 측근들이 구속된 상태다. 안 전 대표가 책임을 안 지면 누가 진단 말이냐. 새정치는 무너졌다. 백 번 양보해서 차기 대선 행보 때문이라고 치자. 안 전 대표 알람이 차기 대선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 않느냐. 그런데 정권 초기인 지금 안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더라도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의정 활동에 집중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출마를 강행했다. 기자회견 전에 안 전 대표를 만났던 이들 중에서는 “어차피 출마를 결심해놓고 왜 우리 의견을 들었느냐”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한 국민의당 원로 인사는 “안 전 대표가 중요한 현안을 결정할 때마다 당은 들러리 신세였다. 대선 때도 그랬다. 비선 논란이 왜 끊이지 않았겠느냐”면서 “이번에도 내가 알기론 대부분 출마를 말렸다. 도대체 누가 자숙하고 있는 안 전 대표를 부추긴 것이냐. 그런데 결국 안 전 대표는 이런 의견들은 무시하고 당권에 도전한다고 했다. 당 관계자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했던 것은 보여주기식 ‘쇼’였을 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안 전 대표가 출사표를 던지자 국민의당은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자회견 직전 국민의당 의원 12명은 출마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호남 세력들은 집단 탈당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동교동계의 이훈평 전 의원은 “고개를 들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당을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친안계로 꼽히는 김경진 의원은 “여러 측면에서 부적절하다.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국민의당에 대한 신뢰는 불신으로 변질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이 혼란에 빠지자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민주법치국가의 민주공당에서 참정권이 있는 분은 누구든지 경선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하는 것은 당을 위한 사명감과 책임 하에 출마한다고 생각해 환영할 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지원 전 대표도 한 라디오에서 “당과 당원, 그리고 안 전 대표 자신을 위해서라도 출마를 재고해 달라는 노력을 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당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지켜본 친안계의 한 의원은 “당을 살리겠다고 안 전 대표가 나섰지만 오히려 당은 더 어수선해졌고, 내홍에 휩싸였다. 안 전 대표가 당을 맡더라도 과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측은 일단 ‘소방수론’을 들고 나왔다. 5당 중 지지율이 바닥이고, 제보 조작 사건으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안 전 대표 외에 누가 당을 구할 수 있느냐는 논리다. 안 전 대표 출마로 전대가 흥행할 것이란 주장도 내놓는다. 안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안 전 대표는 당을 만든 사람이다. 그런 당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뒤에서 지켜보는 것보단 직접 수습을 하는 게 진정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 개인의 손익을 따졌다기보다는 선당후사의 절박한 심경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전 대표는 본인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 대표 출마가 더 이익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도 “자신을 토사구팽하려는 호남 세력에 맞서 대표에 출마했다고 본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위기 때문에 본인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라고 되물었다. 안 전 대표 출마를 철저하게 계산된 행보로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안 전 대표 측은 전당대회에서 사실상 호남세력이 당권을 잡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 전 대표의 출마를 친안계와 호남 의원들이 중심이 된 비안계 간 파워게임으로 보는 배경이다. 국민의당의 한 보좌진은 “친안계와 비안계의 주도권 싸움이다. 안 의원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선 일단 당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호시탐탐 민주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을 노리는 호남 의원들에게 당을 맡길 수 있겠느냐. 또 제3지대 창당을 노리는 안 전 대표로선 호남당이라는 지역정당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도 우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나선 것”이라고 했다.
채진원 교수도 “호남계가 당권을 거머쥔다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도 갖게 된다는 의미다. 지방 의원엔 안철수계가 거의 없다. 안 의원으로선 지분을 넓히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다시 기회가 안 올 거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했다. 전계완 평론가는 “친안과 비안계의 협력은 물 건너갔다. 안 전 대표는 본인이 아닌 누가 되더라도 이 당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찌됐건 창업주인 본인이 직접 나와서 결판을 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을 못 믿는다는 것으로도 이해된다”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측이 호남 세력 반발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집단 탈당에 대해서도 친안 진영에선 “현역 의원들은 탈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설령 나간다 하더라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더 큰 그림을 그리면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앞서의 안 전 대표 측근은 “대선 때 안철수 캠프가 모래알 조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도 인정한다. 호남 의원들에게 로열티를 기대하긴 어렵다면 안 전 대표로선 새로운 당을 꾸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이 나간다면 당장엔 안 전 대표가 비난을 받겠지만 장기적으론 나쁘지 않다. 어차피 그들이 당권을 잡으면 민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 전 대표의 설 자리가 없다. 이번 전대 출마는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계개편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털어놨다.
측근들에 따르면 안 전 대표는 호남 의원들이 추진해온 민주당과의 통합보다는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의원 등까지 포함한, 중도 성향의 제3지대 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 전 대표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이른바 ‘극중주의’를 주창하기도 했다.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대해서도 “너무 앞서나간 부분”이라면서도 “우리당이 지향하는 방향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향을 잡고 정책에 따라 많은 다른 정당들을 설득하는 것이 순서”라며 여지를 남겨뒀다.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제3지대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