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6일에 일어난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사건은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이 사건은 2011년 9월 6일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박용철 씨가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면서 시작됐다. 그를 죽인 것으로 지목된 박용수 씨 역시 박 전 대통령 5촌으로, 살해현장 인근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던 박 전 대통령 친척이 연루된 사건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즉각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원한에 의한 사건으로, 박용수 씨가 박용철 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범인인 박용수 씨가 죽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박용철·박용수 씨를 죽인 배후가 따로 있다는 얘기가 정치권과 사정기관 안팎에서 공공연히 오갔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이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려했다.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았고, 이와 맞물려 정권 실세 외압설이 뒤를 따랐다. 지난해 12월 30일 전해철·박주민 등 민주당 의원들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이 사건이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 친박, 대선 전 박용철 특별관리
캐나다 국적으로 알려진 박용철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치열한 경선을 벌였던 2007년 육영재단 사태 때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 편에 섰다. 한때는 박 전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박 씨는 박 전 대통령 측의 ‘궂은 일’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2011년 무렵부턴 그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을 준비하고 있던 친박 측은 박 씨를 껄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대선 레이스에서 언제든 ‘화약고’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박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이었던 한 원로 인사는 “박 전 대통령 개인사였기 때문에 박 씨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핵심 친박이었던 전직 의원이 박 씨를 ‘맨투맨’으로 마크했다. 박 씨가 입을 열 것을 대비해서였다”고 귀띔했다. 박 전 대통령 제부이자 5촌 살인사건 키를 쥐고 있는 신동욱 공화당 총재도 “그 전직 의원이 박 씨를 관리했던 게 맞다”고 했다.
친박 내부에서는 5촌 살인사건 발생 후 그 불똥이 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박 씨를 요주의 인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박 씨가 살해당하기 전 박 전 대통령 측과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는 점도 부담스러웠다. 수사 경과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해서 보고했었다”라고 전했다.
# 박용철, “돈 때문에 살해 위협 느낀다” 토로
박 씨 지인들은 그가 살해 전 위협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지인은 “박 씨는 엄청난 거구다. 운동도 잘한다. 겁을 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죽을 수도 있다’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돈이 잘못된 것 같다’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박 씨가 죽기 전 두 달 전의 일”이라고 전했다.
돈 문제 때문에 박 씨가 두려움을 느꼈다는 얘기에 대해 또 다른 한 지인은 “박 씨가 누군가로부터 ‘해결사’ 업무를 청탁받은 뒤 이를 다시 중국 쪽 청부업자들에게 넘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돈이 중간에 비어 곤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그 청부업자들이 돈을 추가로 요구해와 박 씨가 돈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씨에게 해결사 업무를 청탁한 쪽과 이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귀띔했다.
이는 얽히고설킨 살인사건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박 씨에게 은밀히 해결사 역할을 부탁한 배후가 누군지 밝혀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박 씨가 “(돈을 구하려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할 때가 왔다”는 취지로 주변에 말을 했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 MB 정부 사건 파일 어디에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두 명이 연이어 죽었다는 소식은 정국을 강타했다.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쏠렸고, 언론 취재도 뜨거웠다. 이는 박근혜 당시 의원이 여권 유력 대선 후보였기 때문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에 수사를 끝냈다. 그 이후 여러 의혹이 간간이 제기됐지만 수사 기관이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점 때문에 신빙성은 얻지 못했다.
그런데 공식 수사와는 별개로 정권 차원에서 별도의 진상 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 사정당국 전직 고위 관계자는 “경찰 등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보고 받긴 했지만 자체적으로도 확인 작업을 벌였다. 사안이 워낙에 민감했고, 유력 대선 후보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따로 파일도 만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털어놨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은 현 정권 들어 재조사가 유력한 사안이다. 이 경우 이명박 정권에서 만들었다는 사건 관련 파일은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별도의 조사를 통해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세워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찰과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와 내용이 다르냐는 질문에 앞서의 사정당국 전직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히진 못하지만 새로운 부분도 있긴 하다”라고 답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