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베드신 촬영 강요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시나리오 상의 있는 장면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밝혔다. 영화 촬영은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라 이뤄지고 현장에선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과연 어디까지를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른 예술의 영역이며 어디부터가 불법적인 행위가 되는 것일까. 이 부분이 이번 논란의 진정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를 폭행하고 베드신 촬영을 강요한 혐의로 피소됐다. 영화 ‘뫼비우스’ 홍보 스틸컷.
특히 액션신과 베드신 촬영에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파격’이라는 단어가 자주 달라붙는 이들 장면에서 감독은 더 좋은 화면을 위해 욕심을 내곤 하고 그럴 때마다 배우들은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조금 더 위험하고 리얼한 액션신, 보다 자극적이고 내밀한 베드신을 만들고자 하는 감독의 연출 의도는 현장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 불릴 만큼 감독에게 전적인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한국 영화산업이 급성장했으며 비슷한 시기 연예기획사들 역시 산업화했다. 이 과정에서 스타들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파워도 급성장했다. 이런 분위기는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이어졌다. 액션신과 베드신 등의 디테일을 출연 계약 당시에 모두 조율하는 것. 어느 정도의 액션 촬영이 이뤄지며 노출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할지 미리 정해 둔다. 이처럼 촬영에 앞서 선을 정해 놓고 감독은 현장에서 그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연출 의도를 투여한다. 이런 까닭에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에선 촬영 현장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많지 않다.
반면 독립영화계에선 배우의 권익이 상업영화만큼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스타급 배우들이 즐비한 상업영화 촬영 현장에 비해 독립영화계에선 배우보다 감독의 권한이 더 크다. 독립영화계 역시 촬영을 앞두고 감독과 배우들 사이에 사전 합의가 이뤄지지만 현장에서 그런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출연 계약 과정부터 대형 소속사가 법적인 절차로 세세한 합의를 하는 상업영화와는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 이런 까닭에 촬영 현장에서의 불협화음이 소송으로 비화하는 사례들도 대부분 독립영화계에 집중돼 있다.
상업영화계에선 스타급 출연자가 아닌 신인 배우일지라도 이런 부분을 명확히 짚고 촬영에 돌입한다. 파격적인 노출과 동성애로 화제가 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경우 출연 배우 공개오디션을 앞두고 공고에서 ‘노출 연기가 가능한 여배우, 불가능한 분들은 지원하실 수 없습니다’라며 노출 수위는 최고 수위이며 노출에 대한 협의도 불가능하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런 공고에도 1500여 명이 몰렸고 1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인 배우 김태리가 캐스팅돼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기덕 감독은 대표적인 독립영화 감독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거장이지만 워낙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를 연출해온 터라 김 감독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 역시 극과 극을 달린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이 단순히 베드신은 아니다. 여배우 A는 과거에도 영화에서 베드신을 소화한 바 있다. 감독의 베드신 촬영 강요를 거부해 영화에서 자진 하차하고 소송까지 제기한 단순한 사건은 아니다.
영화 ‘뫼비우스’ 포스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노조)에 따르면 2013년 3월 촬영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문제가 됐다. 당시 김 감독이 A에게 남자 배우의 성기를 만지도록 강요했다는 것. ‘남편의 외도에 분노한 부인이 아들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으로 설정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다. 이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이미 A가 시나리오를 통해 해당 장면이 존재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나리오 상의 있는 장면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는 김 감독의 해명 가운데 ‘시나리오 상의 있는 장면’이라는 언급이 나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A 측 역시 이 부분을 인정했지만 문제는 사전 협의 내용이었다. A는 남자 배우의 성기가 아니라 ‘모형 성기’를 만지도록 돼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들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이라는 설정을 사전에 인지하고 촬영 현장에 왔지만 현장에서 갑자기 모형 성기가 아닌 실제 남자 배우의 성기를 만지도록 김 감독이 강요하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A가 주저하자 김 감독은 독촉했고 그 과정에서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도 했다고 한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한 김 감독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는 김 감독의 공식적 언급은 일정 부분 A의 주장(모형 성기를 현장에서 실제 남자배우의 성기로 바꾼 부분)을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로 풀이되기도 한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모형 성기와 실제 성기 논란보다 현장 분위기가 더 중요한 포인트로 언급되고 있다. 모형 성기 논란을 김 감독의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가 충분한 협의를 거쳤는지, 결국 배우가 이를 거부할 경우 감독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등이다. 갑작스런 감독의 요구에 주저하자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과 감독의 이성적인 설득에도 배우가 이를 거부하고 잠적해 정상적인 촬영에 지장을 초래한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장에서의 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문제의 핵심이다. 폭행 문제 역시 김 감독은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자칫 김 감독의 현장 연출 스타일이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고 연출자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배우를 폭행하고 원치 않는 연기를 강요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김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를 휩쓰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렇지만 그가 만들어낸 영화의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장면들이 이처럼 배우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연출 방식으로 완성된 것이라면 후폭풍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
[18금연예통신] 촬영 현장에서 생긴 일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촬영 현장에서 생긴 분쟁이 법원으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이제는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아마 최근 몇 년 새 관련 소송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법원은 어떤 입장을 보여 왔을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배우 곽현화의 노출 장면 관련 소송이다. 곽현화는 이수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전망 좋은 집>에 출연했다. 극장 개봉판과 VOD 출시 버전은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2013년 11월 VOD 시장에 공개된 <전망 좋은 집 감독판>이었다. 애초 극장 개봉판에선 뒷모습만 나왔던 곽현화의 전라 정면이 감독판에선 앞모습까지 나왔다. 그 장면에서 곽현화의 상반신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 이에 곽현화는 자신의 동의 없이 감독판을 유료로 배포한 이 감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영화 ‘전망 좋은 집’ 포스터 1심에서 패소한 곽현화는 페이스북에 심경을 담은 글을 게재했고 이수성 감독은 이를 문제 삼아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최근 모두 불기소로 처분됐다. 이처럼 맞소송까지 간 곽현화와 이 감독은 한 차례 장군과 멍군을 외쳤다.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온 이 감독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피소 사건의 항소심이 이달 안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곽현화 사건은 촬영 현장에서의 구두 약속이 문제가 됐다. 곽현화는 촬영 현장에서 이 감독이 “일단 촬영해 보고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제외할지 정하겠다”며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첫 영화였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났고 나중에 빼달라고 하면 빼주겠다고 한 감독의 약속을 믿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심에서 법원은 “구두 약정만 믿고 촬영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곽현화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베드신 촬영을 두고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 2015년 7월 한 영화 촬영 현장에선 가정 폭력 장면이 촬영됐다. 당시 남자 배우 A가 촬영 전 합의한 수위를 넘어선 행위를 했다며 여배우 B가 강제추행치상죄로 고소를 한 것. 이에 대해 1심 법원에선 남자 배우 A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원지법 부천지원(제1형사부)이 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A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결한 것. 재판 내내 양측은 팽팽히 맞섰다. A는 “시나리오에 나온 그대로 감독과 상의하고 한 연기로 카메라가 돌아가는 도중 강제 성추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 데 반해 B는 “촬영을 앞두고 감독과 두 배우가 만나 합의한 수준을 훨씬 넘어선 연기로 이는 촬영을 빌미로 한 성추행”이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배우 A는 영화 시나리오에 나온 콘티와 감독의 지시를 토대로 연기를 했다”며 “촬영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의 증언을 미루어 보아 A는 배우라는 직업에 맞게 연기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1심 판결을 두고 한국여성민우회,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 ‘찍는페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등 10여 개 여성단체는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되지 않은 연기는 ‘배역에 몰입한 연기’가 아니라 ‘연기를 빙자한 폭력’임을 항소심 재판부가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조] |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