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기덕 사건’은 지난 2013년 김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던 배우 A 씨가 4년 뒤인 지난 달 26일 서울중앙지검에 김 감독을 강요, 폭행, 모욕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A 씨는 김 감독이 영화 촬영 중 당초 계약과 다른 고수위의 베드신을 요구했고, 연기지도를 이유로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이를 이유로 김기덕필름 측과 수차례 상의 후 하차를 결정했으며, 이후에도 피해 사실에 관해 여성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상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태원 기자
공대위 측은 “배우의 감정 이입을 위해 실제로 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이는 연출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명의 영화감독과 한 명의 여성 배우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영화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와 자신이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영화 촬영 현장을 비열하게 이용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계 내에서 연출이나 연기 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끊어내야 한다”라며 서울지검의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와 영화계 내 자정노력 등을 촉구했다. 또 언론의 피해 여성 배우 신상 파헤치기, 사건에 대한 추측성 보도를 중단할 것과, 정부에 대해서는 영화계 내 인권 침해와 처우개선을 위한 정기적 실태조사 실시 및 관련 예산을 적극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피해 여성의 공동변호인단 소속 서혜진 변호사와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이명숙 변호사 겸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참가해 발언을 이어갔다.
여배우를 폭행하고 베드신 촬영을 강요한 혐의로 피소된 김기덕 감독. 영화 ‘뫼비우스’ 홍보 스틸컷.
김 감독의 대응에 대해서도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피고소인들의 답변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판에 박힌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김 감독 측은 “(뺨을 때린 것은)연기지도를 위함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2009년 고 장자연 씨 사건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연예계의 뿌리 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배우들이 겪고 있는 감독에 의한 성폭행을 비롯해 여성 연예인 지망생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라며 “이를 알리고 싶어도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게 하곘다’ ‘너 하나쯤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는 협박을 당한다”고 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보다 사실적인 화면이 영화를 만드는 최고의 미덕이 되고 만드는 과정에서 폭행이나 강요가 발생해도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 뒤로 사라지고, 감독의 연출의도라는 말에 가려지고 있다”라며 “영화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고, 사람의 일을 잘 다루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태도를 저 버린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숙 변호사 겸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촬영 현장에서 사전이나 사후에 아무런 양해도 없이 수차례 사력을 다해 뺨을 강하게 내리치는 것이 연기지도가 될 수 없고, 시나리오 대본에 없는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는 것이 연출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이 드러난 뒤 솔직한 자기반성이나 진솔한 사과는커녕 ‘연기지도’ ‘연출’ ‘무단이탈’ 등의 단어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세계적인 유명 감독이나 그 측근의 처신으로는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또 다른 범죄를 구성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 사진=연합뉴스
이 변호사는 당초 이 사건의 2차 피해를 우려, 모든 조사를 마치고 기소 단계에서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를 배부할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 보도 이후로 추측이나 사실과 다른 해명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침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급히 기자회견을 결정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사건과 관련한 당부도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는 4년 만에 어렵게 용기를 내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가 상당한 증거들을 보유하고 있고 아직 많은 사실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사실에 반하는 해명이나 주장을 하고,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행위를 자제하길 바란다.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라도 법적으로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영화 촬영 현장에 있던 스태프가 폭행 사실을 증언한다면 제 잘못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김 감독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안 위원장은 “연기지도에 몰입했다고 인정한 것을 보면 결국 폭행을 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확인됐으므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되는데, ‘스태프가 증언한다면’ 이라는 단서를 단다는 것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명숙 변호사도 “행위가 인정되면 사과를 해야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과를 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김 감독이) 이 사건을 너무나 안일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이고, 영화계에서 얼마나 이런 일들이 만연하고 쉽게 용서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비판했다.
한편 피해여성 A씨는 김 감독에 대한 형사 고소 외에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은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변호사는 ”당시 A씨에게 민사 소송의 의사를 묻자 ’돈 때문에 (소송)한 거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고 거부했다. A씨에게 쏟아질 2차 피해 등을 생각해서 민사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 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7년 8월 3일 <폭행 혐의 피소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도대체 무슨 영화길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9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