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청년이 글자를 용접하고 있다. 왜 주소를 글자로 만들까.
어두워지는 저녁, 집으로 돌아옵니다. 골목길을 도는 모퉁이에는 철공소가 있습니다. 말이 철공소지 그냥 마당에 쇠를 깔아놓고 용접 등을 합니다. 젊은 청년은 자주 쇠붙이로 동글동글한 미얀마 글자를 만듭니다. 마당에 만든 글자를 펴놓고 자음과 모음을 용접합니다. 불이 탁탁 튀며 글자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 글자들은 이상하게 주소들입니다. 그런데 주소만은 아니고 뒤가 짧게 이어집니다. 이 주소에 사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이 기증한다는 내용입니다. 기부문화가 일상화된 이 나라의 누군가가 사원이나 건물을 기증하는 현판입니다. 자식이 기부하지만 아버지를 내세운 것입니다.
한적한 시골 숲속의 아베마리아 식당. 언젠가는 올 손님을 기다리며.
이 나라 청년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합니다. 효심이 대단하다지만 아버지 주소부터 쓰는 게 참 낯섭니다. 문구 거의가 주소니까요. 잠자리에 누워 주소를 생각합니다. 누구나 이름처럼 주소가 있습니다. 현주소. 참 중요한 겁니다. 그 주소에서 태어났거나 부모님이 자식을 키웠으니까요. 이사를 잘 하지 않는 이 나라에선 더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요. 떠나 있더라도 그 주소는 남아 우리의 현주소와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시 주변의 동굴, 폭포, 농장으로 나들이하는 사람들. 오른쪽은 족발을 푹 고아서 곁들인 족발국수.
여기 사람들도 나들이를 갑니다. 하지만 땅이 넓어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습니다. 바다는 먼 탓인지 보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가끔 더위도 식힐 겸 가족들과 인근 농장이나 동굴, 폭포를 찾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며 부러워하는 게 있습니다. 가족들 모두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한국 드라마에는 이 모습이 많습니다. 가족애가 강한 이 나라 국민들에겐 정서적으로 통하는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대도시에 모여 살기보단 일을 찾아 흩어져 살기에 그 드라마들이 더 마음에 다가오는 듯합니다. 가족끼리의 한 끼의 식사. 제가 사는 타운 뒷골목에는 국수 파는 집이 있습니다. 족발국수, 생선국수 등 오래 삶아낸 족발과 생선을 곁들인 국수입니다. 푹 고아서 아주 맛있습니다. 시골 농가에 가면 빵을 만드는 재래식 화덕들이 아직 가동하고 있습니다. 길가에는 노란 망고와 수박, 그린 메론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팝니다. 수박은 800원 정도로 싼 과일입니다.
길가에서 파는 멜론과 수박들.
교육열이 높은 미얀마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학교를 가지 못한 소년소녀들이 많습니다. 관광객에게 다가가 토속품을 팔거나 젖소에게 먹일 마른 풀들을 주우러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기도 합니다. 모든 가족들이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가족에 대한 사랑, 순종, 기다림에 익숙한 삶의 모습들입니다.
밍군에서 토속품을 파는 소녀.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모르겠어, 개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아냐,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밤의 가지에서,/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또는 혼자 돌아오는데/그렇게, 얼굴 없이 그것이 나를 건드리더군. (하략)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