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8월 3일 여의도 당사에서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6일 당권도전 결심 이유에 대해 “심장이 정지돼 쓰러진 환자는 웬만해서는 심장이 다시 뛰지 않는다. 전기충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성명서 발표 후 김현식 천안병 지역위원장 등은 8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안 전 대표 전당대회 출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109인의 서명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부 거짓과 왜곡이 개입됐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기운 경기 화성병 지역위원장 외 42명의 지역위원장도 비슷한 시기 성명서를 통해 “출마촉구 서명 확보 과정에서 단순한 의견 피력을 ‘서명’으로 간주하고 임의로 동의자 명단에 포함했다는 의심이 든다”면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당내 의원들도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원외위원장 109명이 지지했다고 하는데 원외위원장 협의회 김기옥 회장이 자기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면서 “제2의 제보 조작”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반대하고 있는 동교동계 원로들은 8월 8일 회동에서 명단 조작 의혹을 당 윤리위에 회부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열고 명단 조작 의혹을 제기했던 김현식 위원장은 법적 조치까지 준비 중이다.
논란이 커지자 출마촉구 서명을 주도한 김철근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당대회를 앞두고 명단을 공개하면 줄 세우기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친필 서명을 받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구두 동의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현식 위원장은 “그런 우려가 있으면 명단을 우리에게만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냐. 김철근 위원장의 해명은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식 위원장은 “8월 8일 오후 2시까지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는데 이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떳떳하다면 왜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냐”면서 “원외 지역위원장들의 여론을 살펴보면 도저히 109명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김현식 위원장과 함께 명단 조작 의혹을 제기한 고무열 위원장은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안철수를 지지하느냐고 묻더라. 그래도 우리 당의 대선 후보였는데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할 사람이 있겠느냐”면서 “이 질문의 답이 기자회견에 쓰인다는 말도 없었고, 전당대회 출마 지지선언에 쓰인다는 말도 없었다. 만약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고 누굴 지지하느냐고 물어봤으면 답변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쪽도 당시 통화 녹취록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무열 위원장은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녹취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원외 지역위원장 42인과 함께 성명서를 내고 명단 조작 의혹을 제기한 한기운 위원장은 “우리 쪽 위원장들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라. 지지선언에 사용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안철수를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면서 “전화를 각각 다른 사람이 걸어서 질문 내용에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다 그런 식이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해명을 듣기 위해 김철근 위원장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를 남겼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명단 조작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지만 김철근 위원장은 8월 4일 언론 인터뷰 이후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김철근 위원장과 함께 안 전 대표 전당대회 출마 요구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이상민 안성 지역위원장은 “안 전 대표 출마를 지지하기 때문에 기자회견에 참여했을 뿐 명단을 어떻게 수집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김철근 위원장이 알고 있다”면서 “저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명단 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출마 촉구 서명은 출마 결심의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다”면서 선을 그었다.
안 전 대표 측은 “문준용 제보조작 사건의 경우 안 전 대표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어도 대선 캠프 내에서 벌어진 일이니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 지지선언은 안 전 대표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일부 원외 위원장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 아니냐”면서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원외 지역위원장은 “당내 상당수가 안 전 대표 출마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출마 촉구 성명조차 없었으면 어떤 명분으로 출마하려 했느냐”면서 “김철근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안 전 대표 측근이다. 조작이 사실이라면 안철수 주변에는 조작하는 사람들만 있느냐는 말이 나올 것 아닌가. 문준용 제보조작 사건이 없었다면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철수 주변인물들이 제보조작 사건으로 당을 위기에 빠트리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은 것이다. 안 전 대표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명단 조작 의혹이 당 윤리위에 제소되고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면 결국 명단이 공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나중에 조작으로 밝혀지면 안 전 대표는 물론이고 우리 당이 또 한 번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가 보기엔 조작이라기보단 명단에 참여할 지역위원장들을 급하게 모으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것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나중에 조사 과정에서 명단이 공개되고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이 반발하면 후폭풍이 더 거셀 수 있다. 문제가 있었다면 빨리 고백하고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