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대회 명칭 ‘노사초’는 함양군 출신 사초 노석영(1875∼1945)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시대 30세가 넘어 바둑을 배운 뒤 전국을 유랑하며 평생 바둑을 즐긴 국수로 유명하다. 호방한 기풍으로 내기바둑을 즐겼는데 특히 사석작전과 패싸움에 능해 ‘노패’, ‘노상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1937년 동아일보 주최 제1회 전조선바둑선수권대회에서 7승 2패로 우승했었다.
함양군에서는 그를 기려 지난 2008년 노사초배 전국아마바둑대회를 만들었는데 올해가 딱 10년째 되는 해다. 그런데….
지난해 열린 제9회 노사초배 대회장 전경. 올해는 프로기사들도 대거 참가한다.
최근 기가(棋街)에서는 바로 이 노사초배가 화제다. 이유는 10주년을 맞아 주최측이 최강부를 오픈해 프로기사들의 출전도 허용했기 때문이다. 노사초배의 우승상금은 700만 원, 준우승 300만 원. 프로기전 우승상금에 비하면 많지 않은 액수지만 단 이틀 만에 챙길 수 있다는 것이 다수 프로들의 구미를 자극했고 출전 러시로 이어졌다.
도전장을 던진 프로기사는 30명. 128명이 출전하는 최강부는 첫날 세 판, 둘째 날 네 판을 소화하는 녹아웃 방식의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게 된다.
주목되는 것은 치수다. 이번 대회는 오픈전으로 총 호선으로 겨룬다. 핸디캡이 없다. 그러니까 프로와 아마가 동등한 조건에서 승부를 겨룬다는 뜻이다. 과거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삼성화재배나 LG배 통합예선전에서 아마의 출전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따로 열린 아마끼리의 치열한 경쟁을 뚫은 몇몇에게만 주어지던 특혜였다. 노사초배처럼 다수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이처럼 프로가 몸을 낮추게 된 것은 국내 프로기전 축소와 무관치 않다. 현재 국내기전 대부분은 리그 중심으로 돌아가고 토너먼트 대회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국 경험도 쌓고 상금도 쏠쏠하니 프로들이 아마대회까지 눈독(?)을 들이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회가 열리는 함양군 고운체육관 전경.
참가 기사의 수준도 예상보다 높다. 지난 3일 한국기원에 문의한 결과 출전선수 30명 중 4명이 랭킹 20위권의 현재 국내 최고 무대인 한국바둑리그 소속 선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퓨처스리그 선수들의 대거 참가도 예상됐으나 노사초배와 일정이 겹치는 관계로 퓨처스 소속 기사들은 참가하지 못한다. 이밖에 30명의 프로기사 중 40세 이상의 시니어나 여자 기사들의 참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의 아마대회 출전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기사는 “바둑시장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흐름이므로 억지로 막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간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공간이 없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그런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모 매체는 프로의 아마대회 대거 참가를 두고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통박했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대우해주는 것은 힘든 시험을 통과한 것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내포돼 있는데 스스로 참가비를 지불하고 아마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프로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처사”라는 것이다.
아마추어들의 반응도 신통치 않다. 이들과 겨루게 될 연구생 출신의 한 아마추어는 “진검승부를 통해 한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긴 하겠지만 솔직히 썩 내키진 않는다. 그동안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자신들의 문은 조금만 열어둔 채 이젠 아마추어 무대까지 넘본다”고 지적했다. 아마대회에 출전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열린 제9회 노사초배 대회 모습.
박영철 바둑 평론가는 “프로가 아마추어와 똑같이 참가비를 내고 출전한다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굳이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를 선발할 이유가 없으며 프로기사의 존재 이유도 없다. 이럴 바에는 그동안 바둑계 일각에서 주장해온 것처럼 모든 프로기전을 골프와 같이 오픈하는 것이 옳다. 일정 랭킹 이상은 시드를 부여해 본선에 올려 보내고 출전을 희망하는 하위랭킹 프로나 아마추어는 참가비를 지불케 하여 대회에 참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관계자는 “당장 프로기전의 문을 활짝 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세계대회 통합예선전만이라도 아마에게 문호를 폭넓게 개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가령 체육관에서 많은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통합예선전을 치른다면 볼거리만으로도 바둑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노사초배가 몰고 온 파장은 추진 과정에서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이번 프로의 아마대회 전격 출전은 한국 바둑계 전체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바둑의 양대 축인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는 별다른 의견수렴이나 검토 없이 쉽게 출전을 허용했다. 한국바둑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유경춘 객원기자